- 멀티아티스트 정연두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실현시켜준다. 이를 위한 허구적 장치들이 실재보다 더 생생한 실재처럼 자리를 잡지만 관객에게 일부러 빈틈을 보여주는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 1969년 경남 진주 출생<br>▼ 서울대 미대 조소과 졸업, 런던대학 골드스미스 칼리지 미술석사<br>▼ 제2회 상하이비엔날레 아시아유럽문화상, 2007 올해의 작가상 수상
하지만 희망은 희망으로 그칠 뿐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영영 이뤄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마치 유대민족이 메시아를 기다리듯 그 꿈이 현실로 이뤄지길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정연두(39)는 우리의 아름다운 꿈을 실현시켜주는 마법사다. 물론 그가 이뤄주는 꿈의 실현이 항구적인 것은 아니다. 일시적인 것임에도 정연두를 통해 꿈을 이룬 사람들은 행복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조차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누구에게나 있는 작고 소박한 ‘꿈’이 잠시 ‘이뤄지는 꿈’이 된다면 ‘꿈’이라도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꿈이 현실이 됐다고 하지만 그것은 상상에 불과할 뿐 아니라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정연두는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런 그를 보면 남의 꿈을 실현해주려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리도 동분서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아직 작고 소박한 아름다운 꿈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픽 기술이나 첨단장비를 사용하기보다는 매우 원시적인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꿈을 실현시켜주려는 이와 그 꿈을 가진 이가 혼연일체가 되어 땀을 흘리고 나누면서 이뤄내는 꿈이라야 더욱 빛이 나는 법. 그런 점에서 정연두는 힘들고 어려운 로(low) 테크놀로지를 고집하면서 작업하는 멀티아티스트다.
골드스미스의 ‘넘나들기’
Wonderland “I want to be a Singer” 2004. 가수가 꿈인 어린아이의 그림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에게 유학과정을 물어보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대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잠은 충분하게 잤다”고 하는 것처럼 “별생각 없이 무작정 떠났다”고 답한다. 물론 그의 선배가 쓴 영국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이 영국행을 결정하는 동기가 됐지만 특별히 학부전공인 조소를 더 공부하고 심화시키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골드스미스에 들어갔는데, 매우 흥미로웠다고 한다. 조소와 회화가 큰 구분 없이 그냥 통용되며 강의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의 미술교육은 전공 사이의 넘나들기가 거의 없다. 따라서 자신의 전공분야 안에서 모든 조형적, 기법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반면 이곳에서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나 매체도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어 작업이 수월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사진의 기능에 눈뜨기 시작했다. 서울로 돌아와 작품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사진작가라고 칭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사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결과적으로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과 소통했지만 정작 그는 순간을 포착, 발견하는 사진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직접 만들고 찾아가는,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는 ‘과정’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1998년 ‘영웅(HERO)’ 시리즈는 ‘내 사랑 지니’(Bewitched, 2001)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영웅은 언제나 보통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한 후 평상으로 돌아간다. 그는 남의 꿈 이야기만 채집하다 보통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영웅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주유소에서 기름 넣어주는 아르바이트생에게 포뮬라1에서 우승하는 레이서의 꿈을 실현시켜준다. 아이스크림가게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돈을 모아 남극을 여행하고 싶어하는 여학생을 사냥 나가는 에스키모 여전사로, 허름한 식당에서 서빙하는 소년을 고급 중국음식점 요리사로, 가수로 만들어준다. 고급 옷가게에서 빨간 코트를 입어보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은 교외의 넉넉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되게 한다.
‘Memories of You’ 2007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그는 이렇게 조금은 유치하지만 소박한 꿈들을 현실감 있는 현장으로 이끌어 간다. 그 비결은 그들의 꿈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섬세한 감정변화까지 읽어내는 것. 이로써 ‘호박’으로 아름다운 ‘마차’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듯하다.
빠져들기와 드러냄
1999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엘비스 궁중반점’에서 음식 퍼포먼스를 선보인 정연두는 신대방동에 있는 한 스포츠댄스 교습소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사실 사교댄스라는 것이 유럽의 격조 있는 귀족문화인데도 한국에서는 불륜 또는 바람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하지만 정연두가 사교댄스장에 간 것은 그런 의미 때문은 아니었다. 적당히 세월의 때가 끼여 배도 나오고 머리도 벗겨진 아저씨와 일자형 또는 D라인 몸매를 어찌할 수 없는 아줌마들에게도 꿈과 낭만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꿈이란 젊은이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나이와 몸매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꿈은 있는 법이다.
그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꿈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의 드러내기 쉽지 않은 꿈이다. 그들은 약간은 ‘축축한’ 곳으로 인식되는 그곳에서 그들의 건강한 꿈을 드러낸다(‘보라매 댄스홀’, 2001). 볼품없는 몸이지만 그들은 댄스 교습소에서만큼은 가장 자신만만한 젊은이로 돌아간다. 비록 남루하고 꾀죄죄한 복장이지만 그들은 춤을 추면서 이내 가장 멋진 청춘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춤의 삼매경에 빠져들면 그들은 이미 현실의 그들이 아니다. 현실의 자신을 잊고 춤꾼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춤을 추면서 감춰둔 감정을 표현하고 삶을 표현한다. 정연두는 그들을 포착해 하나의 단위로 패턴화하고 그것을 벽지로 제작한다. 이렇게 단위화하고 익명화한 중년의 춤꾼들은 시각적인 미술작품으로 환생한다.
이런 일상화한 삶의 또 다른 패턴을 발견하고 작업한 것이 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상록아파트’(Evergreen Tower, 2001)다. 아파트는 획일적이고 개성 없는 주거환경이지만 편안하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곳이라 한국 사람들에겐 매우 인기 있는 주거 형태다. 작가는 천편일률적인 구조의 아파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한국 중산층 32가구의 구성원이 각각 거실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작품 제작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우선 똑같은 구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다. 집집마다 가족과 주부의 취향에 따라 가구의 구조와 모양이 다르다. 배치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살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획일화한 기본틀 속에서도 최대한 자율적으로 자유를 즐기면서 남과는 차별화한 ‘나의 다름’ 즉 개성을 구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사진을 촬영할 즈음에는 대부분의 가족들은 전통적(?)이고 통상적인 사진관의 가족사진용 포즈를 취한다. 한껏 정장을 하고 가지런히 앉거나 선 모습은 그들 가족의 행복과 화목을 과대 포장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남이 보지 않는 자신들만의 공간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뜻에 따라 최대한 자유스럽게 살던 사람들이 기록하고 남에게 보여준다는 차원으로 넘어가면 일상적이고 패턴화한 똑같은 구조로 환원된다는 점이다.
판타지를 현실로
‘내 사랑 지니’(Bewitched, 2001)가 세계 각국을 돌면서 보통사람들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프로젝트였다면 ‘원더랜드’(Wonderland, 2004)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꿈을 가상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의 상상력을 빌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했다. ‘원더랜드’는 아이들의 그림을 토대로 그들이 지시한 원전에 최대한 가깝게 세트를 세우고 그곳에 청소년들을 분장시켜 어린이들의 판타지를 현실로 재현한다.
이 작업을 위해 작가는 4개월 가까이 서울의 유치원 네 곳에서 미술교사로 자원봉사를 했다. 5세에서 7세 사이의 어린이들을 관찰하고 대화하면서 그들이 그린 1200개의 드로잉을 수집했다. 그중 17개의 드로잉을 골라 그 의미를 해석하고 그에 맞는 콘티를 짠 후 작업에 돌입했다.
Evergreen Tower, 2001, Multi-Side Projection, 32 Family Portraits.
좌우가 다른 옷소매와 각기 크기가 다른 단추 등 아이들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꿈을 좇기에는 버거운 것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의 지시에 충실하게 따랐으며, 아이들 그림 특유의 비례를 무시하는 태도를 존중해서 그림에 나타난 비례에 따라 세트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원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그들의 꿈을 영화 속 사진 스틸처럼 드라마틱한 사진으로 구현한다. 때로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인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공주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사람 때문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의 상상력이 언젠가 TV광고에서 본 듯 조금은 상투적인 판타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요즘 아이들의 상상력 빈곤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 그림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 재구성해낸 작가의 감수성이 더 순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것마저 계산에 넣었을 수도 있다.
‘원더랜드’는 컴퓨터그래픽 도움 없이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면서 완전히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이를 사진으로 담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판타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간혹 관객과 평자들이 그 사이에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고 멍하니 서 있게 된다. 혹시 작가는 아이들의 그림을 빌려 자신의 어릴 적 판타지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 게 아닐까 하는 의도적인 냄새가 나기도 한다.
‘원더랜드’는 진화를 계속해서 ‘로케이션’(Locations, 2007)에 이른다. 종래의 작업이 허구의 세계 또는 꿈과 판타지의 충실한 재현에 포인트를 뒀다면 ‘로케이션’은 실재하는 존재들이 허구적 장치들을 보조한다. 그래서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
그의 ‘로케이션’은 허구적 장치들이 더 생생한 실재처럼 자리를 잡는다. 이제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은 격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가능한 것은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판타지가 있는 사진, 가상의 이미지와 현실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초현실주의적인 사진을 만들겠다는 그의 원칙 덕분이다. 조금은 무모하지만 나름 나날이 발달한 트릭기술이 경지에 이른 것이다.
완벽한 트릭, 그 틈의 여유
Location 19, 2005, 사진 인화
대표적인 트릭 기법은 ‘로케이션 11’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직에 가까운 암벽사진 앞에 적당히 만든 가짜 스티로폼 암벽을 덧붙이고 그 위에 강한 조명을 때려 완성한 인공미는 자연 그대로에 가깝다. 여기에 근경의 여성 등반가와 원경의 인물은 원근을 통해 화면의 깊이를 주는 한편, 앞에 서 있는 여성의 부자연스러움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화면 우측 하단에 스티로폼 암벽을 설치하기 위해 세운 각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로케이션 19’는 뉴욕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워터택시 비치에서 찍었다. 그곳은 본래 공장지대로 여름에는 시멘트 위에 모래를 깔아 인공해변을 조성해 일하던 노동자들이 잠시 짬을 내서 피서(?)를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한 ‘짝퉁 해변’이다. 이런 일은 파리의 센 강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제 강가에서 짝퉁 바다를 즐기게 된 셈이다.
‘로케이션 1’에선 한 사람이 자연에 취한 듯 산 정상에 앉아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붉은 커튼과 마루와 창틀을 보면 가상의 세트가 분명하다. 게다가 화면 우측 하단에는 매직 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렇게 그는 사진 속 풍경이 가짜라는 사실을 모른 척 알려주고 있다.
‘로케이션 3’에서 과도하게 노란 은행나무 잎은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작가가 색을 칠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강한 조명을 통해 이런 눈속임 장치를 위장하고자 한다. 여기에 고해상도의 인화를 통해 최대한 가짜의 진짜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한계인 가짜가 가짜라는 점을 숨기지 못하는 순진함 또는 순진함을 가장한 고백까지 작품의 완결성을 높이는 장치가 된다. 그리고 그의 고백을 듣기 위해 관객은 모두 셜록 홈스가 되는 즐거움을 맞보게 된다.
그는 이러한 사진기법과 장치기법을 통해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서 우리의 상상과 희망과 꿈을 이뤄줬다. 이제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시도한다.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그는 자신의 향수와 추억을 담은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한다. 70여 분에 달하는 진짜 영화(?)로 제목은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2008)다. 이 영화는 영화와 영화를 찍는 데 동원된 장비와 눈속임을 위한 장치들로 구성되는데 총 6부로 만들어졌다.
70분짜리 노컷 영화
1부는 ‘방안’이고, 2부는 ‘빈 도시의 거리’, 3부는 ‘농촌 풍경’, 4부 ‘들판’, 5부 ‘숲’, 6부는 ‘운해(雲海)’다. 이렇게 6개의 큰 덩어리로 나누어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편집이 없이 영화가 완성됐다는 점이다. 장면과 장면을 이어가기 위해서 보통의 영화는 흔히 ‘끊어간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카메라가 70분 동안 쉼 없이 돌아가고 그 앞에서 20명의 작업자와 5명의 연기자가 세트를 설치하고 열심히 연기하는 과정을 담았다. 즉 70분이 한 컷으로 이뤄진 유례없는 영화가 된 것이다.
어쩌면 영화를 한 편 제작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기록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과정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작업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눈속임용 세트를 설치하는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편집 없이 날것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꿈이자 환상인 영화를 일상으로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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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정연두는 현실과 비현실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를 보여줬고, 다시 이 영화를 통해 가짜의 진실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의 이런 태도는 그가 지금까지 다뤄온 꿈과 희망이라는 인간의 열망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작업을 통해 보통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줬을 뿐 아니라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주인으로서의 자신’을 더욱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리고 가상의 현실을 구현하는 여러 장치를 손쉬운 그래픽 기법을 이용하지 않고 고도의 노동력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수작업 기법을 통해 실현해왔다. 그가 이렇게 일부러 어려운 제작방식을 선택한 것은 작고 예쁜 꿈을 자신의 방패로 삼아 살아가는 많은 소시민에 대한 존경과 그들과 함께하려는 사랑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