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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블레어, ‘영국판 힐러리’ 될까?

‘자서전 정치’로 몸값 올리기…

  • 성기영 신동아 영국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셰리 블레어, ‘영국판 힐러리’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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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블레어, ‘영국판 힐러리’ 될까?

전 총리 토니 블레어(오른쪽)와 현 총리 고든 브라운(왼쪽)은 정치적으로 자주 대립했다.

선정적 보도를 일삼아온 타블로이드 신문 ‘더 미러’조차 셰리를 ‘돈에 굶주린 여자’로 묘사했다. 이 신문은 과거 셰리가 총리실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문제 삼으며 사생활 보호를 내세운 일을 거론하며 ‘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식으로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이른바 ‘자서전 정치’를 통해 과거 자신의 정치적 보스를 비판하거나 권력 무대 뒤편의 비화를 폭로함으로써 막대한 수입을 챙기는 관행은 미국, 영국 할 것 없이 현대 정치에서 일반적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욱이 영국에는 이들 뉴스메이커에게 막대한 현찰을 안겨주며 신문연재를 유혹하는 거대한 미디어산업이 존재하고 있어 자서전 정치’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셰리가 이 책 판매를 통해 대략 100만파운드(약 20억원)가량의 수입은 무난히 거둬들일 것으로 내다본다. 이렇게 되면 블레어 부부는 총리실을 떠난 후 두 사람의 자서전 출간만으로도 수십억원의 수입을 올리며 현역 시절에 버금가는 부와 명예를 누릴 판이다.

“거짓말쟁이!” 발언 파문

물론 셰리의 자서전 출간 목적이 돈뿐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셰리가 의도한 ‘자서전 정치’는 책 출간 및 판매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됐다는 얘기다. 셰리는 이 책에서 고든 브라운 총리와 그의 부인 사라 브라운을 직접 거론하며 듣기 거북한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 이러한 해석에 더욱 무게를 싣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고든 브라운 현 총리 사이의 정치적 암투와 갈등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1993년 노동당 당수이던 존 스미스의 급서로 인해 그의 후계자를 결정하기 위한 당내 권력투쟁에서부터 지난해 블레어 총리의 사퇴 시기를 둘러싼 힘겨루기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정치적 고빗길마다 노동당 지도부 구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막후 경쟁을 벌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암투에서 브라운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선 것이 블레어 본인이 아니라 부인 셰리였다는 사실이다. 영국 유권자들은 2006년 여름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브라운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셰리의 ‘거짓말쟁이’ 발언 파문을 잊지 않고 있다. 당시 전당대회는 이미 임기 중 퇴진을 약속한 블레어가 노동당수 자격으로 참석하는 마지막 전당대회였다. 당연히 노동당 지지자들은 물론 정치권 전반의 관심은 블레어가 언제 브라운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줄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측근들의 입을 빌려 블레어-브라운 불화설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두 사람은 그때마다 이를 부인하는 발언을 되풀이하던 상황이었다.

블레어 총리가 연설에서 브라운과의 불화설을 강한 어조로 부인하며 브라운 장관의 인품과 능력을 한껏 치켜세우고 있을 때였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게 바로 셰리였다.객석에서 연설을 듣고 있던 셰리가 “거짓말쟁이!”라며 혼잣말처럼 비아냥거린 것이 화근이었다. 셰리가 무심코 내뱉은 이 말은 마침 옆에 있던 블룸버그 통신 기자의 귀에 들어갔고, 이 발언은 다음날 아침 대부분 신문의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전당대회를 통해 블레어-브라운 불화설이 수그러들기를 기대했던 노동당 지도부는 발칵 뒤집혔다. 셰리가 발언 내용을 부인했지만 블룸버그가 급히 타전한 이 기사의 파장을 잠재우기에는 이미 늦었다. 공영방송 BBC도 ‘거짓말쟁이’ 발언을 들은 블룸버그 통신 기자를 생방송 중에 인터뷰하며 법석을 떨었다.

“집에 들어올 생각 마세요”

누구보다 커다란 곤경에 빠진 사람은 블레어 총리였다. 블레어는 문제의 발언 다음날, 당시 재무장관이던 브라운의 집무실 겸 공관이 총리 공관 바로 옆에 있는 점을 빗대 “적어도 마누라가 옆집 남자와 눈맞아 도망가는 일은 없게 됐다”는 농담으로 파문의 확산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전력이 있는 셰리가 자서전에서 또 한번 브라운 총리 진영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드러낸 것을 놓고 의도적인 메시지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고 있다. 셰리는 자서전에서 1993년 블레어와 브라운의 차기 경쟁에 얽힌 일화를 생생하게 풀어놓았다. 당시 두 사람은 이른바 ‘그라니타(런던 북부의 한 레스토랑) 회동’을 통해 담판을 짓고 블레어가 먼저 노동당수를 맡은 뒤 브라운이 차기를 보장받는 구도에 합의했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셰리는 자서전에서 이 회동은 두 사람의 밀약을 어떤 방식으로 세련되게 당 내외에 알릴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권력승계에 관한 합의는 이미 몇 주 전에 끝났다고 폭로했다. 그뿐만 아니라 블레어가 브라운과 담판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자신이 남편에게 “다음 총선까지만 당수직을 맡고 넘겨주기로 합의한다면 집에 돌아올 생각을 마라”고 위협한 사실도 털어놓았다. 셰리의 ‘안방정치’가 먹혀든 것일까. 블레어 총리는 결국 10년 넘게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고 브라운 진영을 애태우다가 지난해에야 마지못한 듯 당 대표직을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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