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조선해양 전경.
하지만 최근 들어 세계 철강시장은 대규모 M&A열풍이 불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수많은 철강회사가 인수합병을 통해 업계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도의 무명 철강회사이던 미탈은 2006년 유럽이 자랑하는 철강 기업 아르셀로를 적대적 M&A를 통해 인수하는 데 성공하며 단숨에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섰다. 락시미 미탈 회장의 공격적인 행보에 놀라 다른 업체들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M&A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덩치 키우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해 러시아 2위 철강 기업 에브라즈는 24억달러에 미국 오리건스틸을 인수했고, 인도 타타스틸은 영국 브리티시스틸에 뿌리를 둔 유럽의 철강 명문 코러스를 손에 넣으며 단숨에 세계 순위 51위에서 6위로 뛰었다. 러시아 1위 세베르스탈은 미국을 대표하는 US스틸을 넘보고 있고, US스틸은 미국 3위 철강업체 AK스틸 인수를 위해 물밑 작업을 벌이며 물고 물리는 치열한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철강업체 고수냐, 사업 다각화냐
하지만 포스코는 덩치 키우기에 상대적으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에서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혁신을 통해 수익성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뛰어 올랐지만 인수합병이 아닌 ‘자체 사업확장’ 전략을 고수하면서 성장이 제한됐던 것이다. 특히 지난해 포스코는 신일본제철, JEF와 함께 미탈그룹의 피인수합병 후보로 거론되며 경영권조차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기도 했다.
이 같은 세계적인 흐름에 포스코는 더 이상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 정책’을 외면할 수 없었다. 문제는 방향 설정이었다. 해외 유력 철강업체를 인수해 수직계열화를 가속화할 것인가 아니면 사업다각화를 통해 덩치를 키우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최종 결론은 ‘사업 다각화를 통한 안정적 성장’.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사업은 경기변동에 매우 민감한 업종이다”며 “현재와 같은 호경기가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고 불경기가 왔을 때 대규모 손실을 초래할 수 있어 철강사업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사업 다각화로 선택한 대우조선과의 궁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포스코는 아시아 시장에서 철강업체와 조선업체 간의 합종연횡이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인수전 참가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 올해 초 바오산강철과 중국해운그룹이 중국선박공업과 공동으로 광저우에 있는 룽쉐조선소를 중국 남부지역 최대 조선소로 키워 나가기로 합의했다. 칭다오해운총공사와 창강그룹도 공동으로 45억위안을 투자해 칭다오에 대형 조선 기지를 세우기로 하고 합작 계약을 맺었다. 일본 3위 철강업체인 JEF스틸은 지난 3월 300억엔을 들여 히타치조선 산하 유니버설조선의 경영권을 획득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들 철강회사들이 경기 사이클 하강에 대비해 안정적인 공급처를 마련하기 위해 조선업체와 제휴하는 만큼 포스코가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특히 해양 플랜트 분야의 미래 사업성과 이를 통한 양사 시너지 효과도 강조하고 있다. 해양플랜트 산업은 석유나 LNG(액화천연가스) 등 화석에너지 수급과 관련된 해저 석유 시추 및 생산용 구조물의 설계, 생산, 설치와 관련된 산업으로 대우조선은 이 분야에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철광석 등 자원개발에 나선 포스코에 대우조선의 해양 플랜트 기술은 반드시 요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코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경쟁업체들은 비판적이다. 세계시장 점유율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조선업체들을 주요 고객으로 이미 확보하고 있는 포스코가 공급처 불안을 이유로 조선업에 진출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조선업체들이 최소 3년치 일감을 확보한 이상, 선박용 철판인 후판의 경우 공급부족 사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포스코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포스코가 가장 강력한 인수후보인 것은 분명하지만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벽 또한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포스코의 대우조선 인수의 최대 관건은 ‘오너가 없는 기업’이라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말한다. 포스코가 ‘실탄’은 풍부하지만 원하는 만큼 베팅할 수 있는지, 그리고 경영진의 의지를 이사회가 액면 그대로 승인해줄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포스코는 2006년 경영진과 이사회의 분리를 추진한 후 이구택 회장 등을 중심으로 한 경영진과 이를 감시 감독하는 이사회로 역할분담을 했다. 경영진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대우조선 인수는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