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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

CEO들이 열하(熱河)로 간 까닭은?

경제난국 돌파구는 인문학에… 대륙으로 가라! 연암을 느껴라!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CEO들이 열하(熱河)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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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저성장, 비전 부재…수렁에 빠진 한국경제

서울대 인문학 최고지도자과정 CEO들, “아드 폰테스(원천으로)!”

골프, 쇼핑, 한식당 없는 3박4일 공부여행

험준한 고북구 만리장성에서 심신을 씻어내다

건배사 “인사불성!”…‘인문학 사랑하면 불가능이 성공으로’



이구동성 “생애 가장 보람 있는 해외여행”

한국경제가 어렵다. 고물가, 저성장 소식에 온 국민이 우울하다. 기업의 운명을 책임진 최고경영자(CEO)들의 어깨는 또 얼마나 무겁고 그들의 고뇌는 오죽 깊으랴. 이맛살을 찌푸린 채 앉아 있기만 해서는 해법을 찾지 못한다. 그렇다. 드넓은 대륙으로 달려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자. 200여 년 전 연암 박지원 선생이 남긴 ‘열하일기’에서 창조성과 실용정신을 배우자. 인문학으로 경영 화두를 풀자. 이런 각오와 열정을 품은 CEO 20여 명이 중국 청더(承德·열하의 현재 지명)로 답사여행을 떠났다. 고승철 전문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CEO들이 열하(熱河)로 간 까닭은?
최고경영자(CEO)들이 열하(熱河)로 간 까닭은?

이 물음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를 연상시킨다. 1989년 제42회 로카르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이 영화는 여러 평론가에게서 ‘한국 영화사상 최고 명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배용균 감독의 이 작품은 구도를 향한 승려들의 치열한 수행 과정을 환상적인 영상미로 구현했다.

한국의 CEO 및 CEO급 인사 28명은 5월29일~6월1일, 3박4일 일정으로 중국 청더를 찾았다. 조선이 낳은 불세출의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발자취를 찾아서…. 1780년(정조4년) 연암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1711~99)가 머무는 열하를 방문하고 역대 최고의 기행문이라는 ‘열하일기’를 남겼다. 열하일기는 ‘거대한 북’과 같은 책이다. 자그마한 북채로 두드리는 사람은 작은 소리만 듣지만 큼직한 북채로 힘껏 때리면 웅장한 소리로 화답한다. 그 속엔 경제, 외교, 국방, 생활, 문화 등에 관한 온갖 방책이 담겼다.

CEO들은 연암의 고뇌를 가슴으로 느끼고, 연암의 지혜를 머리로 받아들이려 열하 순례에 나섰다. 연암의 정기를 이어받아 험난한 경영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불태웠다. 오늘날 경영 여건은 어떤가. 국제 원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지 않는가. 철광, 알루미늄, 곡물 등 다른 원자재 값도 춤춘다. 원화 약세가 지속돼 원자재 수입대금을 결제하는 업체는 허리가 휜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사태의 여진(餘震)도 만만찮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이 지났건만 경제정책에선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애써 마련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미국산 쇠고기 회오리바람 때문에 허공으로 날아갈지 모른다. 일상적인 방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계 상황이라 할 만하다. CEO들은 이런 내외 변수로 가슴이 옥죄어진다.

“연암의 눈으로 돌파구 찾자”

“예서 머무를 수 없다. 국제경제 탓만 할 게 아니다. ‘기업 프렌들리’를 외치는 정부 말만 믿고 팔짱을 끼고 기다릴 수 없다. 우리가 나서자. 아이디어를 짜내자. 대륙에 가서 한국을 쳐다보며 돌파구를 찾자. 우리에겐 위대한 스승 연암 박지원 선생이 있다.”

CEO들은 이렇게 외치며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제2기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 수강생들이다. 2007년 하반기에 제1기 과정이 개설되자 경영인들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이색적인 모습 때문에 이목을 끌었다. 오래전부터 경영인들을 사갈시(蛇蝎視)하는 학풍을 지닌 서울대 인문대에서 이 과정을 열었다는 점도 파격이었다. 인문대 교수 상당수는 ‘인문학의 위기’가 돈을 좇는 풍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새 과정의 명칭은 중세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1466~1536)가 갈파한 “아드 폰테스(Ad Fontes·원천으로)!”란 명구를 빌려 AFP(Ad Fontes Program)라 붙였다.

제1기 수강생으로 김우식 한석수력발전 회장, 김인철 LG생명과학 사장, 백경호 우리CS자산운용 대표, 유문선 유진기업 사장, 이민화 기술거래소 이사장,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 주장건 ㈜세종 회장 등의 CEO들이 등록했다.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한갑수 전 농림부 장관, 허상만 전 농림부 장관 등 전직 장관 3명도 인문학 공부에 동참했다.

매주 화요일 오후 6~10시에 진행되는 강의가 문·사·철(文史哲)을 골고루 아우르는 알찬 콘텐츠이며 “이를 통해 경영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2008년 상반기의 제2기 수강생 모집 때는 쟁쟁한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경쟁률이 3대 1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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