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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사면초가 삼성전자 키 잡은 이윤우 부회장

“뚱뚱한 고양이 안 되려면 ‘Work hard’ → ‘Think hard’로!”

  • 김용석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nex@donga.com

사면초가 삼성전자 키 잡은 이윤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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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세계 D램시장 정상 등극

사면초가 삼성전자 키 잡은 이윤우 부회장

2004년 6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성화봉송 행사에 참석한 이윤우 부회장.

이 부회장이 반도체와 싸움을 벌이던 1982년 12월. 이병철 회장이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사업을 본격 추진하면서 이 부회장은 이 사업 추진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3년 삼성이 공식적으로 반도체 사업 진입을 선언한 뒤로는 말 그대로 전쟁이 시작됐다. 첫 목표는 64K D램 반도체 개발이었다.

“가까스로 집적회로(IC)를 생산하던 당시의 기술과 장비로는 어림도 없는 얘기였습니다. 마치 자전거를 만드는 철공소에서 초음속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달려드는 꼴이었죠.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그 일에 덥석 뛰어들었습니다.”

결국 삼성은 6개월 만에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인텔이 1K D램을 처음 개발한 뒤 1978년 일본 후지쓰 등이 64K D램을 개발하기까지 8년이 걸린 것을 불과 6개월로 단축시킨 것이다.

삼성은 1983년 9월부터 야산을 깎아 6개월 만에 경기도 기흥공장을 짓겠다는 또 하나의 ‘무모한 목표’를 세웠다. 선진기업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인 반도체 공장 건설기간은 약 1년 반이었다. 반도체 설계를 포함하면 2~3년이 걸린다. 설계와 공사를 병행하며 기간을 3분의 1 가량으로 단축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한나절 만에 4km 길이의 포장도로를 만들어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기흥공장 건설은 근로자들이 아오지 탄광이라고 부를 정도로 힘든 공사였습니다. 야산을 불도저로 밀어 정지작업을 하고 그야말로 허허벌판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춘 것 없이 공사를 진행했죠. 창고를 사무실로 개조해 새벽까지 일하다 보면 2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기숙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새우잠을 자기 일쑤였습니다. 연인원 24만명의 현장 동원 인력이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공식 휴가를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내놓은 64K D램은 1984년 반도체 시장 불경기가 오는 바람에 원가 이하에 팔아치우는 등 오히려 회사에 누적적자 1000억원에 이르는 큰 손해를 안겼다. 그러다 1985년 IBM 등 유수 기업으로부터 품질을 인정받고 미국 판매망을 갖추자 사업이 정상화했다.

수요가 살아나 반도체 품귀현상까지 나타난 1987년에는 3억1500만달러, 이듬해에 8억580만달러의 흑자를 낼 정도로 대반전을 경험했다. 삼성은 이어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1년 세계 D램시장 정상에 오르는 등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삼성전자는 1992년 D램 부문, 1993년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세계 시장 1위를 차지한 뒤 지금껏 이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들은 이 같은 성공이 있기까지는 사업이 진퇴양난에 빠진 1987년 당시 기흥공장 공장장이던 이윤우 부회장의 추진력이 큰 힘이 됐다고 평가한다. 그는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대내외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감산(減産)에 나서지 않고 수억달러가 소요되는 신규 생산라인 공사에 착수해 신규 제품을 묵묵히 개발해내는 등 흔들리지 않는 추진력을 보여줬다.

이 부회장은 1991년 반도체총괄 전무(및 기흥연구소장), 1992년 반도체총괄 대표이사 부사장, 1996년 반도체총괄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과 함께 성장했다.

이 부회장은 “이 신화를 창조하기까지 많은 동료의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이 있었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잠시도 마음을 놓은 적이 없었다. 경쟁업체를 압도하는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일념과 대한민국의 희망이 돼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1분 1초를 아끼며 일했다”고 회상했다.

‘뚱뚱한 고양이論’

이 부회장이 신임 CEO에 선임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많은 삼성전자 임직원의 머릿속에는 ‘뚱뚱한 고양이’ 그림 한 장이 떠올랐다. 이 고양이는 30여 년간 이 부회장이 보여준 강한 추진력을 대표하는 상징물 같은 존재다.

1996년 이 부회장은 한 외국 협력기업과 회의를 하던 중 “삼성전자가 뚱뚱한 고양이(Fat Cat)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D램 1위를 구가하는 풍요로운 현실만 탐닉하다가 살이 찌는 바람에 민첩성이 떨어져 쥐를 잡을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상대방은 그렇게 심각한 생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아찔한 충격을 받았죠. 실제로 당시 삼성전자는 반도체 호황에 승승장구하며 조만간 일류기업이 될 것이라는 낙관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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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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