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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책결정 받으면 아무런 피해 없어
흔히 파산선고를 받으면 면책을 받더라도 자녀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원조회 결과로 부모가 파산자라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신입사원 채용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과연 그럴까.
“그렇진 않아요. 부모의 파산으로 자식이 피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되면 공무원도 될 수 있어요.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의사도 될 수 있어요. 다만 이런 사람들이 파산을 신청했다가 면책허가를 받지 못하면 그 자격을 잃을 뿐입니다. 그밖에도 사회적 제한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은행에서 특수채무자 목록을 7년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은밀히 파악하는 경우는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신원증명서에 기재되지는 않아요. 최근 신문 공고 대신 일정 기간 인터넷 공고가 이뤄지기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가 드물어요.
법원이 7년간 기록을 보유하는 것은 보존연한 때문이지 일반적으로 열람은 허용하지 않아요. 파산선고를 받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정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도 공공의 질서에 위반한 것으로 무효라는 취지의 판례가 있어요. 반면 파산선고를 받고도 면책결정을 받지 못하면 달라요. 신원증명업무를 관장하는 등록기준지에 통지되고 파산선고 사실이 신원증명서에 신원증명사항의 하나로 기재될 수 있어요. 파산선고만을 받았다면 취직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요.”
소비자파산 1호는 2억6000만원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1997년 5월30일 서울중앙지법 합의 50부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은 현모(당시 43세)씨다. 1962년 제정된 파산법에 소비자파산제도가 명시되어 있었지만 법원이 개인의 파산 신청을 받아들여 선고한 건 처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채무 원리금을 탕감받는 파산은 기업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채무자를 구제하는 개인채무자회생법이 국회에서 제정된 건 2005년. IMF 금융위기에 이어 신용카드 대란이 벌어지면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각종 범죄와 가정불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이 커지자 국회는 기존의 도산법, 회사정리법뿐 아니라 개인채무자회생법을 제정했다. 법원이 신용불량자의 사회적 재기를 도와주는 제도를 마련한 셈이다.
개인회생은 채무자의 경제 능력에 비추어 채무액을 조정해 채무자가 채무의 일부를 갚으면서 재기하게 하는 제도다. 개인채무자회생법으로 법원은 채권자의 사정보다는 채무자의 재기에 치중하게 됐다.
정 판사는 “개인파산의 매력은 면책결정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파산선고는 채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최후의 응급처방이지만 면책결정까지 받아야 사실상 채무변제의 책임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정 판사는 “요즘 재산이 하나도 없는 파산 신청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생계비만 남기고 전 재산을 채권자에게 돌려주고 빚 전액을 탕감받아야 하는데, 개인파산 신청자의 90% 이상이 빚잔치해야 할 재산조차 없는 딱한 채무자라는 것이다.
숨겨둔 재산을 찾아라!
숨은 재산을 찾는 건 파산부 판사들의 힘든 과제 중 하나다. 신청자들은 재산이 무일푼이라고 하지만 재산을 차명으로 돌려놓고 파산을 신청하는 파렴치족과 얌체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파산관재인의 임무가 더욱 무거워졌다. 앞으로 파산관재인들이 채무자 재산심사에 더욱 더 철저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파산관재인은 채무자의 재산관계와 소득 등에 대한 심리와 검증을 맡고 있다. 채무자의 재산을 점유하고 관리하면서 처분할 수 있다. 법원의 허가를 얻어 채권의 순위에 따라 채권자들에게 배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