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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MB 대북정책…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쓴 소리

“北 버릇 고치겠다고? 게도 구럭도 다 놓칠라…”

  • 송문홍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songmh@donga.com

꽉 막힌 MB 대북정책…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쓴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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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MB 대북정책…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쓴 소리

정세현 전 장관은 북측에도 인정받는 협상 파트너였다. 2004년 5월8일 남북장관급 회담장에서 정 전 장관(왼쪽).

▼ 이명박 정부의 초기 100일간 대북정책의 근저에는 ‘전 정권과 무조건 차별화해야 한다’는 강박의식 같은 게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차별화를 내세우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옳고 그름을 떠나 선거전략으로선 충분히 가능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거에서 이김으로써 끝냈어야 했어요. 지난 10년 동안의 남북관계를 인수인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면 그게 다 이명박 정부의 공이 될 텐데, 이 정부는 처음부터 ‘과거 방식으로는 안 하겠다’ ‘검토해보고 결정하겠다’ 이렇게 말했거든. 남북 간의 합의는 상대가 있는 문제입니다. 일방적인 자세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옆에서 보기에 ‘저렇게 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텐데 왜 저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남북관계에는 일반적인 대외관계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어요. 외교상의 보편성을 유일한 잣대로 북한을 다루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요즘 실용주의를 많이 얘기하는데, 그 안에 ‘우리가 북쪽에 실리를 주면 북한은 우리말을 듣게 되어 있다’라는 판단이 개재돼 있다면 그런 실용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남북대화란 게 명분에서나 실리에서 양쪽에 모두 윈-윈이 돼야 합니다. 다만 실리 면에서 우리가 북쪽에 주는 실리와 북쪽이 우리에게 돌려주는 실리가 똑같을 수는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 쌀 지원, 비료 지원 과정에서 북쪽이 남쪽에 내놓은 것이 단순히 이산가족 상봉만 있는 건 아닙니다. 2001년 이후 쌀·비료 지원이 시작되면서 북측이 비무장지대 바로 북쪽의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개방한 것은 우리의 대북 지원과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한 덕분 아닙니까.

또 하나 예로, 2004년 6월4일로 기억하는데 설악산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장성급회담에서 서해상에서 남북의 해군 함정들끼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무선교신에 합의했습니다. 그 합의는 지금도 지켜지고 있어요. 그게 바로 그 시기에 평양에서 열린 경추위 회담에서 쌀 40만t을 지원하기로 한 덕분에 이뤄진 겁니다.”



남북대화 깨지면 北도 손해 커

▼ 북쪽도 드러내놓고 상호주의를 말하지는 않지만, 그런 식으로 암묵적으로 주고받는 게 있다는 얘기지요?

“그렇지. 2004년 장성급회담에서 양측은 명분을 잡은 겁니다. 우리는 북측으로부터 무선교신을 받아내고, 북쪽은 비무장지대에서 남측의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약속받는 식으로 서로 명분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북측은 쌀지원이라는 실리를 챙기고, 우리는 또 거기에 상응해 이산가족 사업을 받아낼 수 있었어요.

남북대화라는 게 이렇게 명분과 실리를 주고받는 것인데, 이런 측면까지 감안한 실용주의가 된다면 이 정부에도 앞으로 국제 정세 흐름에 맞게 남북관계를 업그레이드시킬 기회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이명박 정부 100일을 되돌아보면 지난 10년간 어렵게 쌓아올린 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수 있겠구나, 이런 걱정은 안 듭니까. 북측은 요즘도 남쪽 정부를 거칠게 비난하고 있잖아요.

“우리 쪽에서 계속 실수를 하다 보면 성과가 유실돼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북쪽의 속내가 남북관계를 완전히 끝장내버리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그들도 지난 10년 동안의 남북관계 개선 결과가 떠내려갈까봐, 어떻게 보면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이 유턴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그런 강수를 두는 것이 아닌가…. 말로는 ‘우리는 남쪽과 등지고 살 수 있지만 남쪽은 우리를 등지고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해도 사실은 ‘이거 깨지면 우리도 손해가 크다’ 이런 판단을 하고 있을 겁니다.

내가 지난 5월 초 ‘겨레의 숲’이라는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평양에 갔다 왔는데, 북쪽에선 ‘혹시 남쪽 정부가 나를 통해 무슨 얘기를 간접적으로 전하려고 하지 않는지’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이 정부에 미션을 달라고 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때 내가 북쪽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새 정부는 이전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식으로 해서 선거에서 이겼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마치 대북정책에서 앞으로 기대할 것이 없는 것처럼 계속 비난하는 것은 나중에 퇴로를 없애는 일이다, 퇴로를 없애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 또, 당신네가 통미봉남(通美封南)을 해서 득 될 게 뭐가 있는가. 미국이 작년 가을부터 쌀 50만t을 주겠다면서 협상했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가겠느냐, 남쪽은 매년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지 않도록 여유를 좀 주는 게 좋겠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지금도 계속 남쪽 정부에 대고 욕을 하니까,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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