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좌)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우)
지금은 청와대를 떠난 박 전 비서관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장·차관급, 나아가 국무총리와 대통령실장 인사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부분과 관련해 “내가 무슨 전횡을 행사한 것처럼 비치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조각(組閣)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 당시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 신분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주어진 역할만 했다는 취지였다.
“대통령께만 보고 드린다”
또한 ‘박 비서관은 재산 및 경력 검증 같은 기초 작업을 마친 인선안(案)을 이상득 부의장에게 보고해 ‘재가’를 받는 절차를 거쳤다’는 대목에 대해선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박 전 비서관은 “이 부의장을 오래 모셨지만 지금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인데 대통령께 보고를 드려야지 어떻게 이 부의장께 재가를 받겠느냐”고 했다.
그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부분은 ‘당시 이재오계나 정두언 의원 측에서 올라온 명단이 박 비서관 선에서 차단되기도 했다’ ‘(이상득계가)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며 새 정부 요직 인선을 독점하다시피 했던…’이란 기사 내용이었다.
박 전 비서관은 통화에서 “청와대 참모 인선 과정에서 정두언 의원은 50명가량의 명단을 (인선 팀에) 전달했다. 나중에 보니 그중에서 30명 정도가 관철됐더라. 정 의원이 추천한 사람이 청와대에 제일 많이 들어왔다. 정 의원이 청와대 인사에서 배제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다.
정 의원이 50명을 추천해 30명을 관철시켰다는 말은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도 정 의원이 평소 인연이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을 청와대에 입성시켰다는 말이 나돈다.
박 전 비서관은 ‘신동아’ 기사에서 ‘(대통령직) 인수위 구성은 이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MB 직계(정두언계)가 주도해 ‘실용적’으로 짰고…’라고 기술한 부분에 대해서도 “뭐가 실용적이란 말이냐”고 되물었다. 기사 내용은 ‘인수위의 경우 어차피 한시적인 기구이므로 인선 과정에선 큰 잡음이 일 정도의 계파 간 힘겨루기는 없었다. 이 때문에 그 시점에 정권 이너서클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정 의원 등이 계파 안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일 위주로 짤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박 전 비서관은 정 의원의 경우 인수위 인사를 공정하게 했고, 자신들은 정부·청와대 인사에서 전횡을 행사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니면 정 의원이 인수위 인사부터 오히려 더 전횡을 부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새 국면 맞은 ‘정두언 사태’
박 전 비서관의 이 같은 발언은 자신과 관련된 기사에 대해 해명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작심’하고 한 발언은 아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자신이 최근 정두언 의원이 촉발시킨 여권 내 파워게임의 첫 희생양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발언은 향후 상당한 파장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이상득 부의장과 박영준 전 비서관을 겨냥해 ‘인사 전횡’을 폭로한 정두언 의원에 대해 “정 의원도 인사에 개입하고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 의원의 폭로에 한나라당 내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진정성이 있다”고 동조했다. 그러나 박 전 비서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 의원이 촉발시킨 사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