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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촛불의 나라

촛불시위 연행자들의 辯 ‘내가 거리에 나간 까닭’

“국민은 (주)대한민국 투자자,‘CEO 대통령’이 왜 주주를 무시하나?”

  • 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촛불시위 연행자들의 辯 ‘내가 거리에 나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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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연행자들의 辯 ‘내가 거리에 나간 까닭’

미술작가인 김홍기씨는 “책임감 때문에” 집회에 나왔다.

“수입이 예전의 10분의 1로 떨어졌어요. 몇 달째 임대료도 못 내는 상황입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데 눈앞이 캄캄해요. 당장 한우를 갖다 팔기도 어렵습니다. 한우를 팔려면 새김질도 하고 부위 분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애초에 수입고기 다루는 걸 배워 기계로 써는 방법밖에 몰라서요.”

그는 5월25일 퇴근길에 광화문을 지나다 처음 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청계광장에서 대치 중인 시위대와 경찰의 중간지점에 서 있었다.

“시위대가 경찰에게 맞았다는 소식에 화가 치밀어 ‘스톱하라’고 그냥 소리만 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잡혀갔어요. 연행된 후 배후가 있느냐고 경찰이 묻더라고요. 그때도 그렇게 말했지만 저는 정말 쇠고기 문제 때문에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제대로만 수입하면 내가 거길 왜 갔겠습니까. 저는 컴퓨터 켜고 끌 줄도 몰라요. 사회활동이라고는 성당 레지오(기도모임) 활동밖에 한 게 없습니다.”

그는 떳떳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민변인지 민선인지 와서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도 거부했습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사람 중 나만 거부했죠. 죄인이 아닌데 내가 왜 그런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경찰이 수갑을 안 채운 것도 경찰이 나한테 죄가 없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 아닙니까. 저는 쇠고기 문제만 해결되면 집회에 다신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건축설비 사무소장을 맡고 있는 이영희(57·서울 강서구 가양동)씨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집회에 나온’ 생계형 연행자다. 6월1일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경찰에 붙잡혔다. 그전에도 서너 차례 촛불집회 구경을 한 적이 있다는 이씨는 “원자재 가격이 너무 뛰어 도저히 먹고살기 힘들어 집회에 나갔다”고 털어놨다. 그는 건축 기자재 구입이 어려워 일손을 놓고 있다. 건물 짓는 일을 하려면 파이프, 시멘트, 철근 등이 필요한데 값이 워낙 오르기도 했고 자재도 부족해 물건을 도통 구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약서 쓸 때 가격과 실제 견적서 낼 때의 단가가 다르니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손해를 보고 구입하려 해도 물건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주로 3층 이하의 작은 건물을 짓는 그에게 100만원의 손해는 곧 직원 한 사람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촛불집회에 나왔다. 좀 먹고살게 해달라고 외치려고.

“7% 경제성장 시킨다고 할 때가 언제인데 물가 오른 것 좀 보세요. 기름값 안 올리겠다고 했지만 감당 못하고 있고 소비자 물가는 13%나 올랐습니다. 라면, 음료수 같은 공산품은 20% 올랐고요. 꼭 통계치를 들이대지 않아도 장사하는 사람은 몸으로 느껴요.

더 두려운 건 민영화죠. 민영화 이후엔 물가가 더 오를 거예요. 의료보험 민영화다, 수돗물 민영화다, 가스 민영화다…모두 물가 올리는 것들 아닙니까. 수입 쇠고기 문제도 크지만 저는 민영화 이후 오를 물가가 걱정돼 나왔어요.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정책 전체가 잘못됐다는 거죠. 촛불집회 선동자는 시민이 아니라 대통령입니다.”

“모범을 보이고 싶었다”

김홍기(37)씨는 VIP 블로거다. 최근 ‘샤넬, 미술관을 가다’란 미술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하루 400~500명의 중·고등학생과 미술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멘토 생활도 하기 때문에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는 애들도 꽤 있다. 뉴욕이나 런던에서 미술 공부하는 ‘수양딸’도 여럿이다. e메일로 연락하는 친구도 있고, 소포로 과자를 보내주는 학생도 있다. 평범한 블로거이던 그가 집회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부 언론과 단체들이 집회에 참가한 자신의 딸들을 ‘좌빨(좌익 빨갱이)’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나는 컵라면을 먹으면 그만이지만 애들은 선택권이 없죠. 급식으로 나온 거 먹을 수밖에. 그런 애들이 안전한 음식 먹겠다고 길에 나왔는데 좌빨이라니…. 그애들은 ‘바이오폴리틱스’입니다. 생활정치인인 거죠. 그 여린 애들이 나가는데 당연히 나도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92학번인 그는 단 한 번도 집회에 참여한 적이 없다. 대학시절 틈만 나면 현대 발레 보러 다니고 미술관 다니느라 바빴다. 그는 학생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회 나가서 세금 내는 시민이 됐을 때 국가에 얘기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그를 친구들은 ‘무개념’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그가 5월25일 집회에 참가했다 연행되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놀랐다.

대통령이 다녔다는 소망교회에서 청년부 활동을 하는 그는 “이 대통령이 정말 백성을 섬기는 리더가 될 줄 알고 뽑았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CEO일 수는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주식회사로 볼 수도 있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국민)가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사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베스터, 투자자인거죠. 그렇게 따지면 우린 대통령의 비전을 보고 대한민국 주식회사에 투자한 거죠. 선거를 통해서요. 주주들이 (경영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못 바꾸겠다’고 버티는 CEO가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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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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