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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세대와 장기하 세대

‘시대유감’했지만‘별일 없이 산다’

  • 구가인│동아일보 신동아 기자comedy9@donga.com │

서태지 세대와 장기하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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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세대와 장기하 세대

최근 인디문화를 접할 수 있는 대안문화 공간도 늘고 있다. 서울 홍대 주변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1층에 문을 연 자주출판서적 전문 서점 ‘더 북스’.

서태지의 스무 살과 장기하의 스물일곱

장기하는 ‘인디계의 서태지’라고 불린다. 재미있게도 1972년 2월21일생 서태지와 1982년 2월20일생 장기하는 꼭 10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서태지가 스무 살이던 1992년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해 자신의 곡 ‘난 알아요’를 들고 화려하게 데뷔한 반면, 장기하는 2008년 UCC를 통해 세상에 존재를 알린 후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현재 장기하의 나이는 스물일곱. 20대 초반 이미 ‘문화대통령’자리에 등극한 서태지가 1996년 팀 해체와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가 1998년 솔로로 컴백했을 때 나이가 스물여섯이었으니, 스물일곱 신인 장기하는 서태지에 비하면 한참 늦어 보인다(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앞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고 장기하 역시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로 활동한 바 있지만 대중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장기하와 얼굴들’부터다).

그렇다고 당시 서태지의 출발이 빨랐던 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가요계에는 서태지 또래의 20대 초반 스타 싱어송라이터가 많았다. 신승훈은 1989년 22세의 나이로 데뷔했으며 1994년 데뷔한 박진영 역시 22세였다. 이 밖에도 015B, 듀스, 신해철, 유희열, 김현철, 윤종신, 이적, 김동률 등 1990년대 인기를 얻은 많은 싱어송라이터가 20대 초반에 데뷔해 당시의 대중문화를 이끌어갔다. IMF외환위기 이후 이들은 자기 색을 가진 뮤지션으로서 남아 있거나, 산업적인 측면을 파악하고 연예산업을 발전시키거나(JYP의 박진영, YG 양현석) 두 갈래로 나뉘었다. 결국 1990년대 20대로서 목소리를 내던 그 ‘오빠’ 스타들은 30,4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인기스타, 혹은 기획사 사장님으로서 문화권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현재 대중음악계의 중심에 있는 아이돌 스타들의 나이는 채 스무 살이 되지 않는다. 기획사의 상품으로서가 아닌 작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이 전달하는 20대 스타는 찾기 힘들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연예기획사가 치밀한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는 젊은 뮤지션들이 대중문화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비단 가요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계 역시 마찬가지다. 박찬욱, 봉준호, 김기덕, 홍상수, 김지운 등 이름이 알려진 스타감독들은 대부분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 생이며 1990년대 중·후반에 데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는 “2000년 이후부터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진출하며 영화가 산업화되다 보니 감독보다는 프로듀서 중심의 시스템으로 변하게 됐다”면서 “제약이 많은 기획영화에서는 앞 세대 감독들에 비해 신인 감독이 드러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88만원 세대의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디문화와 DIY 예술가들

최근 ‘인디’문화가 관심을 받는 것, 이곳이 많은 젊은 작가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인디펜던스(Independence·독립)의 줄임말인 ‘인디’는 제작(또는 유통)에서 상업적인 거대자본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한, ‘주류(Major) 문화’에서 벗어난 문화를 의미한다. 장기하의 인기와 함께 ‘워낭소리’ ‘낮술’ ‘똥파리’ 같은 저예산독립영화들의 전례 없던 흥행 성적은 인디문화의 저변 확대를 증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 불황으로 대중문화계가 위축됨에 따라 문화적 선택 폭이 좁아진 상황에서 문화 소비자로서 대중이 ‘새로운 문화’로 인디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해석한다. 문화비평 웹진 ‘가슴’의 박준흠 대표는 장기하의 인기를 “장기하 자체의 스타성 못지않게 인디문화에 대중이 호응하고 받아들일 시점에 이르렀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음반시장이 2000년경 4000억원대로 정점을 찍은 이래 지금까지 줄곧 하락해서 500억~600억원대로 줄은 데 반해 인디음반시장은 점차 확대되는 편”이라면서 “1990년대 50장 정도에 그친, 한 해 발매되는 음반수가 최근에는 250장 정도로 계속적인 증가세”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이상용 평론가는 “시장이 축소되면서 상업영화 제작편수가 줄어드는 것에 반해 독립제작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의 제작편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일반 관객의 인지도나 수용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인디음악 | 인디음반이나 독립영화의 제작편수가 증가하는 것은 기술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음반 제작의 경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PC)의 발전에 힘입어 녹음뿐 아니라 믹싱, 마스터링을 포함한 전 과정을 집에서 할 수 있는 ‘홈레코딩 시스템’을 통한 제작이 가능해졌다. 장기하의 소속사인 붕가붕가레코드는 홈레코딩과 더불어 판매하는 모든 CD를 직접 컴퓨터 CD라이터를 통해 굽고 라벨을 손으로 붙이는 ‘수공업 소형음반제작’방식으로 유명하다. 1만2000장이 팔린 ‘싸구려 커피’ 싱글 앨범도 “모든 임직원이 총동원돼” 찍어낸 결과물이다(‘싸구려 커피’는 밀려드는 주문에 한동안 품절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후 ‘장기하와 얼굴들’ 정규 1집은 기계제작을 했다).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28) 대표는 “수공업 소형음반제작방식(이하 수공업 제작)은 음반의 홍보 콘셉트였다”면서 “기존 제작방식과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 음반이 유통망을 타고 들어갈 때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공업 제작방식이) 무엇보다 목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공장에서 한 번 앨범을 찍어내는 데 150만원 정도 드는데 ‘싸구려 커피’ 싱글 나왔을 때만 해도 불확실한 상황이라 최대한 싸게 만들어야 했어요. 수공업 제작은 재료비로 CD 한 장 가격 1000원만 드는 거죠. 그렇게 아낀 돈으로 다음에 또 정규음반 낸다는 게 목표였습니다.”(고건혁)

▶ 독립영화 | 영화 역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어느 정도 노하우만 습득하면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거주하는 옥탑방을 세트 삼아 좀비영화를 만든 4인 영화 창작집단 키노망고스틴의 오영두(34)씨는 “5~7년 전만 해도 스태프가 많이 필요하고 필름영화를 찍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독립장편영화를 찍기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접근이 쉬워진 덕분에 너무 쉽게 찍어 문제가 될 정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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