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김녕만 사진집)’ 김녕만 찍음 / 사진예술사/ 99쪽/ 3만원
정작 그가 열창하는 모습은 뒷표지에 자그마하게 실려 있다. 시간의 흐름상 앞뒤 표지가 바뀐 것 같다.
“저는 노래 부르는 앞모습으로 하자고 했는데 장 선생이 이 사진을 고집했지요.”
‘장사익(김녕만 사진집)’(사진예술사)을 펴낸 사진작가 김녕만의 말이다. 찍은 이는 책의 주인공에게 공을 미루지만, 표지는 탁월한 선택이다. 정비소 직원, 보험 설계사, 태평소 연주자, 실업자 온갖 직업을 전전하다 마흔다섯에 데뷔해 올해로 환갑에 이르기까지 지난 15년 동안 장사익은 100석 소극장 공연이든 3000석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이든,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에서도 공연 때마다 좌석이 늘 매진되는 기록을 세워왔다. 10년 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허허바다’ 공연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소리꾼으로 불러주면 지는 너무 고맙지유. 딱 부러지는 국악도 대중가요도 그 무엇도 아닌디….” 예나 지금이나 그는 한결같이 “고맙지유”다. 무대 뒤에서 카메라는 주인공도 모르게 그 마음을 찍었다.
사진에 담아낸 ‘고맙지유’
처음부터 사진집을 염두에 두고 찍은 것은 아니었다. 김녕만 작가는 장사익의 노래를 좋아하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사진집까지 냈다. 그가 장사익에게 빠진 것은 ‘한결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무대 위에서나 무대 밖에서나 노래가 한결같고, 카메라 앞에서나 카메라 밖에서나 표정이 한결같고, 말과 행동이 한결같다. 도도한 무표정이었다가 카메라만 보이면 입가에 주름을 만드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잘 웃고 떠들다가도 카메라 앞에 서면 어색하게 굳어버리는 장삼이사를 무수히 보아왔지만 “사진을 한 지 40년이 되었지만 카메라 앞에서 그렇게 자연스러운 사람은 처음 봤다”고 감탄한다.
“박식한 지식인은 많지만 장사익처럼 아는 그대로 행동하며 사는 자연 그대로의 사람은 드물다. 자신의 모습을 원형 그대로 드러내는 장사익의 매력에 빠져 나 역시 사진작가로서의 욕심을 잊고 사람이 좋아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공연하기 전 리허설과 무대 뒤에서의 준비,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 공연 뒤 뒤풀이에서 정겨운 모습, 무대에서 내려와 평범하고 소탈하게 사는 일상의 모습 등을 촬영하면서 상황에 개의치 않는 한결같은 그의 평상심에 감동을 받았다.”(장사익 사진집을 내면서)
어떤 노래든 장사익류가 된다
장사익은 충남 광천, 김녕만은 전북 고창, 둘 다 서해안 시골에서 태어난 자칭 ‘촌놈’에다 동갑내기다. 요즘말로 하면 ‘절친’이다. 그래서 입담 좋은 김녕만 작가는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고 ‘장사익 에피소드’를 풀어낼 수 있다. 하지만 사진집은 말을 아낀다. 아쉬우리만큼 말이 적다. 글의 행간을 읽듯 사진의 여백 속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할 뿐이다. 사진집의 길잡이는 사진작가의 아내인 윤세영 ‘월간 사진예술’ 편집장이 쓴 머리글 ‘우리의 삶과 정서를 노래하는 장사익’뿐이다. 그는 장사익의 정체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노래든지 장사익이 부르면 장사익류가 된다. 폭발하듯이 내지르고 부드럽게 꺾고 애틋하게 잦아들고 힘차게 뻗쳐오르는 그의 소리는 자유롭고 변화무쌍하다. 그가 부르면 노래는 확장되고, 그는 소리를 불러들여 또한 노래가 되게 한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트롯이나 록이나 팝이라는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 그저 ‘장사익의 노래’가 된다. 박자에 얽매지이 않고 길게 빼고 싶은 대목에선 한없이 느긋하게, 박자와 박자 사이를 치고 들어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박자를 벌려서 그 사이로 능청스럽게 비집고 들어선다. 그러니 얼마든지 노래에 감정이입이 자유로워서 그것이 청중과 함께 호흡하며 소통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그에게 노래는 음악이기 전에 먼저 삶을 이야기하는 내러티브이고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한풀이이며 기를 북돋워주는 활력소이다. 따라서 그는 음악적인 완성도 이상으로 노래에 삶의 진정성이 얼마나 진득하게 들어 있는가에 더 집착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첫 사진, 눈은 감기고 입은 한껏 벌어진 장사익의 클로즈업은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길게 빼고 싶은 대목에선 한없이 느긋한’ 노래를 들려준다. 두루마기 옷고름을 매고 무대에 오르기 직전 스태프들과 함께 손과 마음을 모으는 모습에서 “인생은 즐겁게, 우정은 길게, 음악은 아름답게, 지화자 좋다!”가 울려 퍼진다. 이제 김형영의 시 ‘꽃구경’은 장사익의 노래가 되어 관객들은 눈물을 훔친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중략) 어머니, 지금 뭐 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 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타고난 풍각쟁이와 사진쟁이
공연 뒤 뒤풀이 장소에서 장사익은 새납(태평소)을 불며 흥겹게 논다. 그는 소리꾼 이전에 태평소 연주로 이름을 얻었다. 1993년 전주대사습놀이 ‘공주농악’과 전국민속공연대회 ‘결성농요’에서 태평소 연주로 각각 장원과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런 그가 소리꾼으로 변신한 것은 뒤풀이에서의 노래 실력이 계기가 됐다.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술 담배 못하고 숫기 없는 그가 뒤풀이 때 장사익 스타일로 부른 ‘뽕짝’이 좌중을 압도했다. 동료, 후배들의 권유에 못 이겨 처음 무대에 오른 1994년 ‘장사익 소리판-하늘 가는 길’이 큰 인기를 끌면서 그는 태평소 연주 대신 노래를 부르며 살게 되었다.
이처럼 ‘장사익 사진집’의 여백을 읽다 보면 슬슬 그의 ‘찔레꽃’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뉴욕 시티센터에서 열리는 ‘장사익 소리판 꽃구경’ 공연(4월18일)을 앞두고, 4월4일 그는 조촐한 동네 무대에 섰다. ‘평창동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릴레이 공연’에 아랫동네(서대문구 홍지동) 사람으로서 찬조 출연한 것이다. 차가 달리는 대로변 가설무대에서 벌어진 무료 공연이었지만 그는 “동네 분들을 한꺼번에 만나니 오늘이 장날 같다”며 분위기를 띄운다. 천생 풍각쟁이다. 그 곁을 김녕만 작가의 카메라가 그림자처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