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관계에서 위기를 맞는 중년의 남자들에게

  • 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입력2009-05-08 16: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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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회사와 가정을 위해 희생했건만, 누구 하나 내 편이 돼주는 사람은 없다. 회사에선 후배에게 언제 밀릴지 몰라 불안하고 집에서는 소외감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게 된다. ‘알고 보면 불쌍한’ 한국의 40, 50대 중년 남성들을 위해 정신분석전문의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혜남씨의 따뜻한 카운슬링을 연재한다. ‘편집자’
    관계에서 위기를 맞는 중년의 남자들에게
    한국은 여자들이 살기 힘든 사회다. 유교의 영향과 가부장적인 가족구조에서 자신을 죽이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여자들은 자신의 감정과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가정에 쏟아 부었다. 그 와중에 남편으로부터의 소외감과 시집으로부터 받는 압력, 여자가 아닌 주부로서 살아오느라 제 감정을 돌보지 못한 많은 여성이 나이 들면 전세계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다는 화병이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된다. 이러다 보니 남자들은 권위만 앞세워 집에서는 손 하나 까닥하지 않으려 하고, 여자를 힘들게 하는 이기적이고 유아적인 존재로 매도당한다. 여자들의 고된 삶이 다 남자들의 잘못인 양 그 죄를 덮어 쓰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한국은 겉으로 큰소리치는 남자들도 살기 힘든 구조로 돼 있다. 사실 이 사회에서 남자들이 지고 살아야 할 심리적, 경제적 부담감과 소외감, 불안 등은 상상외로 크다. 거기에 갱년기가 돼 남성호르몬이 감소하면서 남성들은 더욱 우울하고 위축된다. 남자도 여자처럼 갱년기를 앓는다.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면 40~50대의 한국 남성 사망률이 여자보다 3배나 높고, 미국 등 다른 선진국보다 2배가 높을까. 이것이 그동안 권위적이라고 매도됐던 한국 중년 남성의 현주소다.

    인생의 정오에서 다시 맞는 사춘기

    여자는 감정 표현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남자들은 감정의 억압을 미덕으로 삼고 강하게 보여야 한다고 배우며 자란다. 울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남자들이 불안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때 고작 할 수 있는 행동이란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 내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과 사회적인 분위기는 남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에조차 무지하게 만든다.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남성들을 참을성 없고 자기만 아는 동물로 만들어버리고, 더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동안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져야 했던 경제적 심리적 압박은 실로 잔인했다.

    언제나 가정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울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사람들. 부인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가장으로서의 능력이 평가되는 사람들. 부인은 아이와 한덩어리가 돼 움직이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도 시간도 없어, 가정에서 아웃사이더로 배회하는 사람들. 아이와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고, 밤낮 할 것 없이 열심히 일한 대가가 가정에 무심한 아버지라는 비난으로 되돌아오는 사람들. 직장에서도 후배들에게 밀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이 전쟁인 사람들.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준비해놓지 못한 채 다가오는 노년이 두렵기만 한 사람들. 이래저래 들이켜는 술과 끊지 못하고 피워대는 담배에 젊어서부터 혹사당한 몸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성기능도 예전 같지 않아 남성으로서의 자존심은 뭉개진 지 오래된 사람들. 이것이 어쩌면 현재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갱년기가 되어 아이들로부터 해방되나 싶으면 연로하신 부모님이 기대어 온다. 즉 부모님의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봐도 온통 돌보고 책임져야 할 사람과 일뿐이고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그래도 여지껏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대부분 잘못했다는 소리만 들릴 뿐 누구도 따듯한 격려나 위로의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중장년층 남성들은 외로움과 자신에 대한 회의, 자신이 살아온 시간,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한 불안으로 방황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 부담이 없더라도 40세란 나이는 인생의 딱 반을 산 나이다. 즉 인생의 후반부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사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발전하는 동물이다. 예전에 사람의 성장은 사춘기 때 완성되고, 사춘기를 지나면 더 이상 인격이 발달하지 않는 걸로 생각했으나 최근의 정신분석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숙하고 그가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적응하고 성장한다고 밝혀지고 있다. 통념과는 달리 우리의 IQ도 계속 바뀌고 영양이 잘 공급된다면 80세까지 10정도 더 증가한다고 한다.

    일찍이 공자는 “吾 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入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니라(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독립했고 마흔 살에 망설이지 않게 되었고 쉰 살에 천명을 알게 되었고 예순 살에 남의 말을 순순히 듣게 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 내키는 대로 좇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게 되었다)”고 설파하며 나이에 따라 시기를 구별해 성취해야 할 과제들을 제시했다. 공자님의 시대에는 40은 불혹의 나이로 웬만한 유혹에는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중심을 잡는 나이였나 보다. 하긴 그때는 평균 수명이 60이 안 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40세는 ‘제2의 사춘기’로 불린다. 청장년에서 중년의 시기로 넘어가는 시점, 젊음을 보내고 늙음을 맞이해야 하는 시점, 자기가 살아온 길의 결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되는 시점, 이 시점에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동안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거쳐 사람들은 다시금 자신을 추슬러 삶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앞으로 나가게 된다. 이는 에릭슨이란 심리학자가 말한 ‘생산성이냐 아니면 정체냐’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제4의 분리-개별화 과정’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을 거세당한 남성들의 비극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길러진다”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말했다. 이것은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남성으로 길러진다. 넘어져서 울려고 하면 어느 새 어른이 달려와서 털어주며 말한다. “뚝, 남자가 이런 것 갖고 울면 안 되지. 그건 계집애나 하는 짓이지.” 밖에서 친구들과 싸우다 분해서 울고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내자식이 어디서 맞고 들어와서 울어! 맞지 말고 가서 때려!” 밤에 화장실 가기 무서워해도 또 ‘사내자식’을 들먹인다. 여자애들과 곰살갑게 소꿉장난을 하고 놀면 당장 듣는 말이 “고추 떨어진다”다. 남자는 강해야 하고, 울면 안 되고, 무서워해서도 안 되고 곰살가워도 안 된다. 이런 위협과 인격적 모욕을 받으며 성장한 남자들은 당연히 감정을 느끼는 일과 표현하는 일에 서투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특히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지역에 유교의 영향이 가장 많이 남아 있고, 가부장적이며 남성 우월주의의 분위기에서 사내아이를 키우고, 또 아이의 감정을 극도로 억압시킨 결과다. 집에 들어와서 고작 세 마디 말밖에 안 한다는 경상도 남편에 대한 우스갯소리도 결국은 감정을 거세당한 남자들의 슬픈 이야기일 뿐이다.

    공중화장실을 가면 남자 변기 앞에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써 있다 한다. 나야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그렇다고 믿을 뿐이다. 세상에 소변을 볼 때조차 울면 안 된다고 세뇌시키다니 남자들이 새삼 불쌍해진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조차 억압하고 표현하지 못하고 자란 남성들은 따라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서투르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이 냉혹한 정글 같은 현실에서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고 배워온 남자들은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창피하거나 미안한 감정이 들면 우선 화부터 낸다. 그들은 화를 내서 자신의 약한 감정을 숨기고 강한 척하려 든다. 이러다 보니 답답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 괜한 담배만 빨아대고 술을 들이켜 마음을 진정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런 해결 방법은 건강을 해치고 가족 내 갈등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지금의 40~50대 남자들은 말 그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세대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6·25전쟁의 혼란과 폐허, 아니면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적 용틀임의 과정에서 태어나 새마을노래를 들으며 자라고 한강의 기적과 함께 성장한 세대, 1970~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세대, 1980년대의 경제성장과 88올림픽을 준비한 세대, 성공과 성장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다. 개인은 무시되고 희생된 세대들이고 따라서 집에서 남편이나 아버지의 역할은 방기된다. 남자들은 그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많이 벌어 집에다 가져다주면 된다. 아침 일찍 나가서 아이들이 다 잠든 밤늦은 시간에 지친 몸으로 귀가하던 아버지는 부인이나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도 없고 교육은 온전히 부인의 몫이었다. 혼자서 아이들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부인은 부인 나름대로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리고 아이들에게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는 소원한 존재이자 그들 옆에 없는 원망스러운 존재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외롭고 고독한 가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 겉돌고만 있는 풍경이 많은 집의 창문에 비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죽기 직전 뱉는 세 가지 ‘껄’

    사람은 “껄, 껄, 껄” 하며 죽는다 한다. 호탕하게 웃으며 죽는 게 아니라 “~할 껄”하고 후회하면서 죽는다는 말이다. 첫 번째 ‘껄’은 “더 베풀고 살걸!”이다. 죽는 마당에 자신이 왜 그렇게 인색하게 살았는지, 더 베풀고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하는 통한의 후회인 것이다. 두 번째 ‘껄’은 “더 용서하고 살걸!”이다. 죽음 앞에서 자신이 미워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결국은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나는데 용서하고 떠날걸!’하는 후회다. 허나 이미 화해하기엔 시간이 없다. 세 번째 ‘껄’은 “아, 좀 더 재미있게 살다 갈걸!”이다. 이렇게 죽을 걸, 왜 그렇게 먹고살기에 급급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살았던가 하는 후회다. 죽을 때가 되니 자신이 가졌던 것들과 그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지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미 시간은 다 흘러가고 돌이킬 수 없는데 말이다.

    여기서 세 가지 ‘껄’인 베풂과 용서, 재미는 모두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은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과 친구 같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다. 그런데 이 관계 맺기는 여자들의 강점이고 남자에겐 태생적으로 그리고 발달학적으로 약한 부분이다.

    관계에서 위기를 맞는 중년의 남자들에게

    지금의 40~50대는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다.

    여자와 남자는 성장과정에서 차이를 보인다. 어머니는 딸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며 키운다. 따라서 딸과 충분히 교감하고 동지애를 느끼며 양육한다. 반면 아들은 자신과 분리된 독립된 대상으로 대한다. 유치원이 끝날 때 엄마와 아이들의 재회를 지켜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여자아이들은 “엄마”하고 달려가서 엄마 품에 안긴다. 그러면 엄마들은 딸을 꼭 안아준다. 그러나 사내아이들은 “엄마” 하고 달려가서 엄마 손을 잡는다. 그러면 엄마들은 아들을 내려다보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묻는다. 이렇게 자란 남자아이들은 자율성을 중요시하게 되고 누군가가 자신을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여기서 친밀한 관계를 중요시하는 여성들과의 끝나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무뚝뚝하고 가정에 관심이 없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비난받고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것이다.

    여자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고 따뜻한 스킨십을 원한다. 그러나 남자는 ‘뭘 그런 걸 말로 하느냐’란 태도를 취한다. 사랑의 표현에서는 유치원생 수준만도 못한 게 우리나라 남성이다. 여성을 따뜻하게 대하고 배려하는 것이 영 어색한 남성들은 그 어색함을 괜한 권위로 얼버무리려 한다. 나 역시 결혼 초의 시집살이와 육아 그리고 직장 세 가지 일에 허덕이다 푸념 좀 했더니 남편으로부터 돌아오는 말이 “누가 여자로 태어나래?”였다. 남자란 동물은 대부분 그렇다. 어색하고 미안하고 어떻게 할 바를 모르면 고작 한다는 게 화를 내거나 이런 말을 해서 결국은 부부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금이 가거나, 부인으로 하여금 마음이 차갑게 돌아서게 만든다. 그러고는 관계 맺기에 둔감한 남자들은 자신이 무슨 행동이나 말을 했는지조차 모른다. 부인의 마음이 닫히는 것을 보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못하고 전전긍긍하면서도 권위를 잃어버릴까봐 사과에 인색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남자다.

    중년에 맞는 부부 갈등

    그러나 이제 여자들도 예전의 여자가 아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 여자들의 이런 변화를 남자들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이런저런 가정 내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호르몬의 변화가 오는 갱년기가 되면서 더 증폭된다.

    중년이 되면 부부 사이에도 이전의 관계가 재편성된다. 내외적으로 중년은 위기의 시기인 동시에 새로운 변화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남성은 직업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이 성취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지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진정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직업을 바꾸기도 한다. 이제 그의 가슴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개인적 관심이나 사회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다. 혹은 성공이나 권력에 대한 경쟁적 욕구가 감소함에 따라, 아랫사람을 돌볼 줄 아는 관대한 조언자가 되기도 한다.

    반면 여성들은 아이들을 다 키우고 가사에서 벗어남에 따라 집 밖으로 향하게 된다. 이제 비로소 사회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시작한다. 즉 남자들이 비로소 가족과 여가의 중요성을 느끼고 집으로 들어오려는 시기에 여자들은 밖으로 나가 일을 가지려 한다. 여기서 많은 남성은 버려지고 소외된 느낌을 받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이 문제를 ‘불일치’ 혹은 ‘경력의 궤도’문제로 부른다. 50대에 남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집에 들어왔을 때 곰국 끓이는 냄새가 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집으로 들어오려는 남자와 밖으로 나가려는 여자들의 갈등이 시작되며 이전에 사이가 안 좋았던 경우는 황혼이혼이라는 말까지 오고갈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변화는 중년기에 찾아오는 호르몬 변화에 기인하기도 한다. 즉 여성은 폐경기가 가까워옴에 따라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줄고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늘어난다. 반면 남성은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줄고 여성호르몬이 증가한다. 즉 여성은 좀 더 남성화하고, 남성은 공격성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줄고 좀 더 여성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혼생활의 균형을 깨뜨린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우리 자신과 이후의 인간관계에 유익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즉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수정하게 되고 다른 성(性)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년이 주는 선물

    남자들은 늦게 철이 든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중년기가 다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데서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돈과 행복은 어느 정도까지는 비례한다. 그러나 일정수준을 넘으면, 곧 5만달러를 버나 9만달러를 버나 행복을 느끼는 데는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가족에게 남편과 아버지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젊은 시절엔 성공만을 향해 돌진했다. 나이 들어 가족에게 돌아와 본들 이미 낯설어진 부인과 아버지와는 대화하기가 귀찮은 듯 문 닫고 힐끗 한 번 눈길을 주는 자식들뿐이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큰 불행이다.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아이 키우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었는데, 뒤처질까봐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이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즉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을 놓쳐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자들은 이제 자신을 둘러싼 틀을 과감히 깨뜨려야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울자. 부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실컷 울어보자. 하루에 한 번 이상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그들을 꼭 안아주자. 스킨십은 친밀감을 더해주면서 서로의 체온을 통해서 마음을 나누는 중요한 행위다. 남자나 여자나 외롭고 사랑을 갈구하고 행복을 추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남자나 여자나 다 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존재다. 아무리 강하게 보이려고 철갑을 두른다 해도 눈동자 안에 비치는 외로움과 불안감은 감춰지지 않는다.

    관계에서 위기를 맞는 중년의 남자들에게
    김혜남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現 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희대, 인제의대 외래교수

    저서: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왜 나만 우울한 걸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 말하기. 미안하다 말하기. 외롭다고 말하기. 무섭다고 말하기.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으면 입을 크게 벌리고 웃기. 이것이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이다. 그래야 죽을 때 조용히 미소 지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 고맙다’며 눈을 감을 수 있지 않겠는가.

    ● ‘신동아’에서는 중장년층 남성들의 고민을 듣고자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담은, 그렇지만 쉽게 풀지 못하는 고민들을 comedy9@donga.com으로 보내주십시오. 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혜남씨가 카운슬링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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