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더불어 살기 위한 공식적인 제안서

  • 이상영│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sjylee@knou.ac.kr│

    입력2009-05-09 12: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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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살기 위한 공식적인 제안서

    ‘갈등해결의 지혜’강영진 지음/ 일빛/ 396쪽/ 1만6000원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갈등은 있게 마련이지만,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못된 현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갈등을 참지 못하는 유사편집증이 바로 그것이다. 갈등에 집착하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그 병의 증세를 가라앉히려면 최소한 그 갈등으로 인한 안팎의 고통을 충분히 겪은 후 갈등에 무감각해지는 기간을 고스란히 봉헌해야 한다. 망각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갈등을 느끼는 횟수와 강도는 망각의 힘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상이 복잡해지면 질수록 갈등에 대한 고통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다행히 갈등 해결을 위해 학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우리의 문제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이라면서 그 해결방안을 모색한 책이 나와 반갑다.

    저자가 책을 낸 이유는 이렇다. ‘인간은 누구나 갈등을 겪으면서 산다. 갈등 해결 전문가라고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심각한 갈등을 겪은 이들이 더 많다. 그로 인한 상처와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다른 이들이 겪는 아픔을 알고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택한 것이다.’(378쪽)

    갈등을 즐기는 아주 희박한 경우가 아니라면, 갈등으로 인한 심신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갈등을 처리하는 나름의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물론 그 갈등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혹은 그 갈등이 정의로운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갈등을 처리하고자 할 것이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자기방식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갈등 처리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고, 급기야 더 이상 갈등에 대응할 힘을 잃고 무장해제당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다행히 독자는 강영진 박사의 저작 ‘갈등해결의 지혜’를 통해 나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줄기 구원의 빛을 얻으리라.



    강영진 박사는 아마도 국내 유일의 ‘갈등해결 전문가’일 것이다. “인간들 사이의 화학적 과정을 거쳐 갈등이 해결되는데, 그 과정에서 화학적 촉매 역할을 하는 사람(367쪽)”인 것이다. 그는 하버드 법률대학원 분쟁해결과정(PON)을 거쳐 조지메이슨대 갈등해결연구원(ICAR)에서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갈등해결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버지니아 주 대법원 인증 전문중조인(Mediator)으로 미국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한국에 돌아와 2005년 국무총리실 갈등조정 시범사업에서 진행자와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국가 갈등 해결을 위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모든 갈등은 닮았다

    ‘갈등해결의 지혜’는 바로 그 자신의 학문적 지식과 실천적 지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갈등해결을 위한 독본’이다. 책은 모름지기 읽고 익혀서 써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독본이다. 갈등해결을 말하면서 갈등의 종류만 늘어놓거나, 해결을 위해서 개인적 수양이나 집단문화 탓으로만 돌리는 공허한 분석을 나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확한 개념을 언급하며, 까다롭게 설명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나 자신이 갈등해결을 주제로 한 ‘책’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니, ‘책’을 독해할 때 느끼는 갈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난해함과 난삽함의 고통 혹은 허망함 없이 눈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갈등해결의 지혜’를 손에 넣은 사람은 행운아다. 이 책은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갈등해결 전문가가 정겨운 ‘상담자 또는 치료자’로 독자와 함께 성찰한다. 또한 명쾌한 ‘과학자’로 인간과 사회를 분석·설명하고, 아름다운 ‘설계자’로 평화와 정의가 넘치는 앞날을 보여준다. 성찰하고, 분석하고, 그리고 전망하라! 이 책은 제1장부터 제7장과 부록에 이르는 편장의 구조는 물론이고 각 장의 세부 구성에서도 성찰, 분석, 전망이 절묘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이 책을 통독한 독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훌륭한 사회과학방법론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고 경험하고 대처하는 갈등이란 얼마나 다양한가. 그럼에도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조금의 의지라도 있다면 그 갈등을 ‘보아야 할 것’이다. “핵심은 존이구동(尊異求同)이다.”(64쪽)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갈등은 얼마나 많고 다양한가. 아마도 그것은 각각의 사람들의 차이, 각각의 사회의 차이, 각각의 관계의 차이만큼일 것이다.

    그래서 갈등을 겪는 각자는 타인이 겪는 갈등에 신경 쓸 여유가 없거나 자신의 것은 타인 것과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서 서로 닮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족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141쪽) 저자는 가족 구성원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서로 닮았다고 말한다. 나아가 어느 하나도 동일한 것이 없을 것 같이 수많고 다양한 갈등 그 자체 또한 원인과 전개과정, 그리고 영향에서 닮아 있다는 것!

    ‘상처 받은 치유자’

    이 책은 참으로 다양한 갈등의 사례를 보여준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의 갈등, 가족 간의 갈등, 동료와의 갈등, 이웃과의 갈등, 스포츠에서의 갈등, 소비자와 기업의 갈등, 조직에서의 갈등,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 시민사회와 정부의 갈등, 국가 간의 갈등…. 이렇게 제시된 여러 유형의 갈등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갈등을 대상화하고 일반화할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 물론 자신이 경험했던 갈등이 활자화돼 낯이 화끈거림을 느낄 수도 있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고 나면, 이제는 자신의 갈등에 대한 객관적 성찰을 넘어 해결의 답을 얻고자 하는 조급함이 생기게 마련이다. ‘갈등해결의 지혜’는 독자의 이러한 성급함을 나무라지 않고 해답을 향한 길에 이정표를 친절하게 제시한다. 즉, 예시된 다양한 사례가 해결되어가는 과정에서 주인공과 그들의 역할, 그리고 사용된 기법과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한발 더 나아가 독자가 주인공이 되었을 경우에 나타나는 여러 유형을 분류·제공함으로써 가상훈련(문제유형별 해법, 다섯 가지 갈등 대처 스타일, 감성적 반응 대처 방법 등)에 참여하게끔 해준다.

    갈등해결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이렇다. “서로 간의 오해를 해소하도록 하고, 억울한 일을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고민을 덜고 한 생명을 살리고 한 가족을 구할 수 있게 ”(370쪽)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갈등을 해결하면서 사람들은 삶을 견뎌내는 ‘상처 받은 치유자’가 될 수도 있다.

    간과할 수 없는 이 책의 장점이 있다. 임상적 분석, 주장의 논증, 그리고 설득력 있는 대안 등에서 가장 명확하고 적절한 개념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학문적인 분야와 실무 분야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개념에 정확한 용어와 번역어를 애써 찾으려는 성실성, 그리고 중요한 주제어나 문장에 영문을 병기하는 정직성이 돋보인다. 특히 거중조정(居中調停)의 의미로 파악해 mediation을 중조(仲調)라고 번역·개념화한 것(287쪽)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소송 외의 분쟁해결제도(ADR)의 유형으로 중재(仲裁·arbitration), 조정(調停·conciliation) 등과 구분되는 것으로 중조라는 개념을 사용한 연유와 유용성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한 번 더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갈등에서 이기는 전략, 시쳇말로 이기는 법을 전수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양한 갈등에서 나타나는 이해관계와 힘의 움직임을 구경거리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갈등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이런저런 주의, 주장을 선언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평화를 위한 수상록이자 더불어 살기 위한 공식적인 제안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멋진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도저히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에게 ‘갈등해결의 지혜’ 111쪽에 제시된 방법을 사용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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