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국방예산 싸움에 뛰어든 까닭

‘돈줄’ 쥐어 軍紀 잡는 MB식 국방개혁 신호탄?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05-08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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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가 칼을 꺼내 들었다.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이해 국방예산을 강도 높게 합리화해야 한다는 권력 핵심인사들의 압박이 군 조직 곳곳에 거세다.
    • 1월 임명된 경제관료 출신 ‘실세’국방차관의 행보에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는 형국. 과연 이명박 대통령은 ‘결심’을 굳혔나.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국방예산 싸움에 뛰어든 까닭

    2008년 3월11일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64기 육사졸업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국방경영 효율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분위기가 가파르다. 이명박 정부가 군에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빠르다. 노무현 정부와 군의 시각차이가 북한의 위협수준을 두고 빚어졌다면 이번에는 돈 문제가 포인트다. 전임 정부 5년 동안 국방예산이 안정적으로 증가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번이 오히려 군 입장에서는 훨씬 쉽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4월초 한 국방부 관계자가 털어놓은 솔직한 속내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앞에서 국방예산을 합리화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가 최근 눈에 띄게 스피드를 내고 있다는 것. 심지어 청와대와 국방부 주변에서는 ‘국방예산 감축 혹은 동결’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도 회자된다. 국방예산과 관련한 중장기 계획이 만들어지는 4월과 5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청와대와 ‘밀리면 안 된다’고 다짐하는 국방부의 시각차가 불거지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방예산 관련 작업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2005년 국방부가 야심차게 발표했던 ‘국방개혁2020’을 수정한 ‘국방개혁기본계획’을 만드는 일이 가장 상위 개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는 두 차례에 걸쳐 이 계획을 조정했지만, 청와대의 보완 지시에 따라 4월말을 목표로 수정작업을 진행해왔다. 기본계획이 완성되면 그에 따라 2010~14년의 예산소요를 다루는 ‘국방중기계획’의 얼개가 만들어진다. 주요 무기도입사업 등 이 기간에 진행되어야 하는 대규모 예산투입 항목을 시간별로 어떻게 배치할지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이 일이 완성돼야 그에 따라 2010년 국방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 관련부처의 조정작업을 거쳐 예산안이 작성되면 국회로 넘어가 심의를 받는 것이 예산안 마련의 기본구조다.

    임기 초 육사 졸업식 치사

    흥미로운 것은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제 수정작업 완료단계에 접어든 국방개혁기본계획부터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는 점이다. 당초 추정됐던 소요예산 621조원 가운데 30조원가량을 줄이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기계획 역시 무기도입사업 일정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중급유기와 고고도 무인정찰기(UAV) 등의 도입일정을 늦춘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역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내년도 국방예산안 역시 이러한 대형사업의 일정조정 등을 통해 상당부분 규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기본구조상 기본계획-중기계획-내년도 예산안이 선후관계로 연결돼있지만, 검토과정이 늦어지면서 이들 작업은 상당부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방부가 육·해·공군본부의 예산소요를 취합해 기획재정부나 청와대와 조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것. 국방부가 그리는 예산안 콘셉트의 소요 근거를 청와대가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는 분위기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 같은 흐름의 가장 큰 배경은 단연 최근의 경제위기다. ‘국방개혁2020’이 처음 확정될 무렵에는 2020년까지 매년 4.6~4.8%의 실질경제 성장률이 실현된다는 가정 아래 2011년까지 국방비가 매년 9.9%씩 증액된다고 보고 소요예산을 산정했지만,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락한 올해 상황에서 이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청와대 논리의 핵심이다. 기본계획 예산부터 줄이고 그마저 상당부분을 향후 5년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내년도 예산에서도 상당부분을 줄이는 방안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올해 수준(28조5326억원) 동결 같은 ‘초강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최소한 7.1%였던 올해 국방예산 증가율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린다는 내부목표를 세워두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상황이 전부는 아니다. 전현직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이미 대선 캠프시절부터 국방예산에 관한 문제의식이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권력 핵심인사들 사이에서 공유돼왔다고 전한다. 이 대통령이 임기 초였던 지난해 3월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치사에서 “국방혁신은 시급한 과제”라며 “세계 안보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구조를 최적화하고 국방 경영을 효율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일은 최근 들어 청와대 관계자들이 부쩍 자주 인용하는 레퍼토리다.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국방예산 싸움에 뛰어든 까닭

    2008년 11월13일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안 심사에 참석한 국방부 관계자들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경영적 합리성’의 관점

    임기 첫해 만만찮은 위기를 넘기면서 구체적인 작업 착수가 미뤄졌지만, 대선 이전부터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을 공유해온 대표적인 인물로는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꼽힌다. ‘특수한 영역’이라는 이유로 정부 전체의 예산을 기획하는 부서의 통제를 상대적으로 덜 받았던 국방 분야에 낭비와 비효율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른바 ‘경영적 합리성’의 관점을 국방 분야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지난해 청와대 일각에서 국방예산 소요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 작업에 착수했던 일은 이를 방증한다. 이들은 그간의 국방예산 운용관행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이나 전 정부 인사들을 폭넓게 접촉하며 의견을 듣고 구체적인 적용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공론화된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방안이나 복지단 등 비전투 분야 아웃소싱 추진방침이 모두 ‘경영적 합리성 제고’라는 기조하에 검토된 아이디어라는 설명이다. 이 무렵 청와대 안보분야 고위관계자의 설명이다.

    2008년 4월의 ‘사건’

    “경제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형 무기도입사업은 대부분 예산이 ‘매몰’되는 항목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지만 국내에 미치는 경제유발효과는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외국 무기업체에 돈 주고 무기를 사오면 그걸로 끝이지만, 국내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투입되면 그 돈이 모두 국민의 임금으로 돌게 된다. 경제 살리기가 시급한 만큼 돈을 일단 국내 효과가 큰 사업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가 청와대 핵심인사들 사이에 공유됐다.”

    임기 초 국방중기계획 보고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사건도 청와대 핵심의 ‘인식 악화’에 기여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07년 말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통과한 2009~2013 중기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준비작업이 2008년 4월 무렵까지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 논란의 발단. 2009년 국방예산안 논의가 시작되는 시기까지 중기계획이 보고되지 않은 것을 발견한 청와대 일각이 ‘진노’했고, 이를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하는 한편 국방부 관련부서를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이 무렵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정권이 바뀐 뒤 새 청와대가 중기계획 수정을 지시할 경우 2009년 예산안 마련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국방부가 아예 보고를 누락하려 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되기도 했다”면서 “청와대 핵심에서는 지휘권 문란에 해당하므로 기무사령관을 불러야 한다는 격렬한 반응도 있었다”고 전했다.

    물론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들의 설명은 다르다. 매년 중기계획 보고가 다음 해 예산안 준비와 비슷한 시기까지 지연돼왔던 것이 그간의 관행이었고, 2008년에도 기본계획 보고가 완료된 5월 무렵에야 보고가 가능한 상황이었을 뿐 의도적인 보고 누락 시도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게 그 골자다.

    분명한 것은 이때의 사건이 국방예산 처리절차에 대한 권력핵심 인사들의 인식을 악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순서대로 이뤄져야 할 기본계획-중기계획-다음연도 예산안 마련 작업이 4~5월 무렵에 동시에 진행되는 그간의 관행이 예산통제 업무의 기본 프로세스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것. 쉽게 말해 국방부가 그간 ‘지나치게 많은 특수성’을 인정받아왔다는 인식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마인드에 자리잡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주변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1월 장수만 국방부 차관의 임명에 반영된 듯하다고 보는 견해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대선 당시 곽승준, 강만수 위원장과 함께 ‘747’로 대변되는 MB노믹스 입안에 참여한 장 차관은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이명박 정부 초대 조달청장에 임명됐다. 이 자리에서 조달행정 개혁의 성과를 인정받아 국방부 차관에 임명됐다는 것이 1월 인사 발표 당시 청와대의 공식설명이었다.

    ‘실세차관’의 등장

    경제기획원 출신의 정통파 경제관료인 그의 차관 임명에 국방예산 개혁이라는 목표가 내재돼 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장 차관이 취임 직후 국방부 출입기자실에 들러 “국방예산 가운데 삭감할 부분을 최대한 삭감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그는 “경상운영비에서 푼돈을 아끼는 방식 대신 ‘큰 사업’에서 눈먼 돈을 깎겠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경제관료의 국방부 차관 발탁이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지만, 장 차관의 강도 높은 발언 수위나 권력핵심과의 탄탄한 친분은 국방부 주변에서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실세 차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차관 임명과정에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의 추천이 결정적이었다는 게 정설이고, 이 대통령도 크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실세를 차관으로 내려보내 조직을 장악케 한 뒤 장기적으로 장관 임명까지 염두에 두는 ‘차관정치’의 상징적 존재”라고 평했다.

    장 차관은 취임 이후 주로 국방부 소유의 토지 이용이나 매각 합리화 사업 등을 중점적으로 챙겼고, 국방개혁실 등을 주축으로 기본계획 수정작업을 위해 꾸려진 TF에도 만만찮은 ‘압박’을 가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예산 합리화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출하라는 지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월에는 예산문제를 담당하는 국방부 기획조정실장(1급)에 역시 관세청과 재정경제부를 거친 경제관료가 발탁됐다. 장 차관의 개혁과제 수행에 필요한 ‘손발’을 마련해준 인사라는 게 국방부 안팎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여기에 3월28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이른바 ‘4+1’ 회의가 알려지면서 장 차관에게 쏠리는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곽승준 위원장을 중심으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장수만 국방부 차관 등 ‘실세차관’들이 매주 수요일 저녁 정기모임을 갖고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는 것이 그 골자다. 당초 3+1의 형태로 운영되던 회의에 1월 취임한 장수만 차관이 합류했다는 것. 이 모임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차관 줄서기’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련의 상황을 맞는 국방부 측 분위기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국방부 정책실장 자리를 두고 빚어진 해프닝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3월초 청와대는 임기가 마무리된 전제국 현 정책실장 후임으로 이 대통령의 대선캠프 참모였던 H교수 임명을 추진했다. 이 자리에 외부인사가 발령받는 것은 사상 최초. 차관과 기조실장에 이어 정책실장까지 외부에서, 그것도 청와대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진 인사로 앉히려 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하마평이었다.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국방예산 싸움에 뛰어든 까닭

    2008년 1월8일 정부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마친 뒤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체회의.

    핵심쟁점은 기동군단?

    그러나 이 인사안은 국방부의 강한 내부반대에 부딪혀 4월 중순 현재까지 공전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기자에게도 “문민통제를 강조하던 노무현 정부보다 더 심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한미군사동맹과 대북군사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실장이라는 자리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 여기에는 정책실장이 외부에서 발탁될 경우 장차관을 포함해 국방부 계선조직 1급 이상의 절반이 외부인사로 채워지는 것에 대한 불만도 깔려 있다.

    거꾸로 청와대 관계자들은 “아직 H교수 임명안이 완전히 백지화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이에 대한 국방부 주변의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부여한 과제를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인사를 발탁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일은 조직이기주의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몇몇 인사는 국방부 수뇌부의 캐릭터를 거론하며 감정적인 반응을 쏟아내기도 했다.

    민감한 쟁점들이 중첩돼 있는 상황이다 보니, 4월말 국방개혁기본계획 보고와 이후 예산관련 업무의 진행과정도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총 소요예산을 30조원 가량 줄이는 등 청와대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됐지만, 과연 대통령이 이에 만족할지 여부는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국방부가 작성한 기본계획에 대해 청와대가 6개월의 시한을 두고 수정작업을 지시했듯 이번에도 쉽게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특히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 ‘칼’을 쥔 쪽에서는 예산소요의 우선순위가 과연 적절하게 설정돼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기본계획 수정작업을 담당한 국방부 TF가 청와대에 제시한 1순위 사업은 국방개혁안의 부대구조 개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육군의 경우 수도방위사령부를 지역 군단급 부대로 개편하며, 현재 8개인 군단을 7개로 조정하는 것이 지난해 11월 공청회에서 공개된 개편방안의 골자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왜 부대구조 개편이 우선순위 1번인지에 대한 소명이 불충분하다”며 그 검증결과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쉽게 말해 쓸 돈이 줄었으므로 어디에 먼저 돈을 써야 하는지부터 다시 캐고 들어간다는 방침이었다는 것.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당혹한 국방부는 육·해·공군에 그 검증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이 역시 각 군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쉽지 않다는 게 군 안팎의 설명이다.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국방예산 싸움에 뛰어든 까닭

    2009년 1월2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장수만 국방부 차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러한 소요 검증 문제는 ‘한국군의 전력구조가 현재의 안보상황에 과연 적절한가’라는 질문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주로 외교안보수석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 같은 문제의식은 북한은 탄도미사일과 핵 등 비대칭전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데 한국군은 여전히 재래식 지상전 대비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로 요약된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4월말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질 국방예산 논쟁의 초점으로 기동군단 창설 문제가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8개인 육군 군단을 7개로 줄이면서 이 가운데 2개 군단을 K-2(흑표) 전차 600대가 배치된 기동군으로 편성한다는 내용이 지난해 11월 기본계획 수정안의 기본 틀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개 군단 창설이 기본 콘셉트였던 기동군은 노무현 정부 시기였던 ‘국방개혁2020’ 입안 당시 1개 군단 창설로 축소됐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뀐 뒤인 지난해 국방부가 2개로 늘려 발표했던 것. 이처럼 2개 기동군단의 창설은 최근 수년간 육군을 중심으로 군이 강하게 요구해온 핵심사업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핵과 미사일로 전쟁을 벌이는 시대에 수십조원을 들여 지상전력 강화에 집중하는’ 국방부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권력 핵심에서 만만치 않다 보니, 이번 예산논의 과정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명분 對 명분

    그러나 청와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당초의 방침이 그대로 진행될 것인지는 여전히 변수가 많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의 도발 조짐 등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최근 분위기가 첫 번째 장애물이다. 악화된 환경에서 군사비 투자에 섣불리 손을 대다가는 ‘안보가 흔들리는데 돈이 문제냐’는 보수여론이나 예비역 단체 등의 반발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의 로켓 발사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국방부가 준비 중인 기본계획 수정안에도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와 차기유도무기(SAM-X) 사업 등 그에 대응하는 전력의 조기확충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가 그간 예산투입 우선순위 문제를 주로 거론해왔음을 감안하면, 예산 자체를 줄이기보다는 지상전력에 배정됐던 예산을 뒤로 미루고 비대칭전 대비 전력 예산을 당겨쓰는 ‘타협안’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방부 핵심에서 일했던 외부 출신 전직 관계자의 말이다.

    “숫자 싸움에 능한 경제관료들이 처음 국방예산을 들여다보면 손댈 곳이 많다고 자신하게 마련이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사관학교 통합만 해도 두 곳을 완전히 없애 하나로 합치기보다는 조직체계만 바뀐 채 3개 캠퍼스 형식으로 유지될 공산이 더 커 보인다. 아웃소싱도 마찬가지다. 현재로서는 민간이 맡는 게 경제적이겠지만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면 민간이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논리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따지고 보면 국방예산에 관한 논의는 북한이 정말로 위협적인지, 어떤 부분이 가장 위협적인지부터 따져본 뒤, 남은 부분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의 논리는 그런 근본적인 검토가 없이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접근은 군이 ‘전쟁상황을 전제로 한 검토’를 들고 나오면 흔들리기 십상이다. 군의 근본적인 목표가 전시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보니 이런 반론을 탓하기도 어렵다.”

    남북 긴장고조가 적신호라면 사상 최악의 위기라는 세계 경제환경은 국방예산 합리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미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이 군사비 투자를 재조정하고 있는 현 시점이 아니면 국방예산 합리화를 강도 높게 추진할 명분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벌써 임기 2년차 아닌가. 올해 그냥 밀려서 넘어가면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더욱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말했다.

    국정원의 전례

    국방예산을 둘러싼 논쟁이 4월말 국방개혁기본계획의 청와대 보고 이후에 더욱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연습이었고, 진짜는 날이 더워지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소요부처인 국방부와 예산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 사이에 갑론을박이 오갈 것이고, 이후에는 청와대와 국방부가 본격적으로 이견을 드러내는 모습도 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인사의 말이다.

    “임기 첫해를 흘려보낸 청와대로서는 마음이 급하다. 그간 일반 공무원 사회는 물론 국가정보원 같은 특수조직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개혁작업이 진행돼왔다. 남은 것은 군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을 장악하는 방법은 인사 아니면 예산이다. 청와대는 군을 개혁하는 작업의 첫 번째 카드로 예산을 골랐고, 이제 출발선에 섰다고 보면 된다.

    청와대는 임기 초반 ‘중량급 원장, 대통령 측근 기조실장’이라는 조합으로 국정원 수뇌부를 꾸렸지만, 두 사람이 삐걱거리면서 국정원 조직의 효용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청와대 내부에서 제기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결국 이 대통령은 원장 역시 핵심측근으로 임명하는 강수를 두며 ‘국정원 혁신’을 공식화했다. 장수만 차관의 발탁은 ‘중량급 장관, 대통령 측근 차관’이라는 점에서 1기 국정원 수뇌부 구성의 반복이다. 이 조합이 잘 돌아가는지에 따라, 특히 이상희 장관이 이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국방부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이나 이 장관의 향후 인사 문제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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