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 간 ‘시끄러운 외교’ ‘조용한 외교’의 엇박자 이어질 듯
- 한·미·일 vs 북·중·러 대결 가능성 낮아
- 개성공단 사업 중단은 남북 모두에 큰 손해
사진 왼쪽부터 김병로 남성욱 백승주 정형곤
● 장소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 사회 : 백승주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미래연 평화통일전략센터장
● 참석 : 남성욱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
김병로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연구교수/ 미래연 평화통일전략센터 연구위원
정형곤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미래연 평화통일전략센터 연구위원
로켓 발사 이후 북한은
백승주 4월5일 북한이 로켓을 발사했습니다. 일부에선 북·미 대화가 실현되지 않을 경우 북한이 2차 핵실험, 3차 장거리 로켓 실험에 나서리라고 봅니다. 반대로 북·미 간 물밑대화가 이뤄지면서 6자회담이 재개되리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향후 북한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합니다. 남성욱 소장께서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남성욱 북한은 관망하는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외교적으로도 노력할 겁니다. 4월9일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면서 김정일 3기 체제가 출범했습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내부 단속에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내부 단속을 강화하면서 물밑 접촉을 통해 미국의 의도를 떠볼 것으로 예측됩니다. 적어도 6월까지는 외교적 행보에 주력할 겁니다. 미국이 3/4분기 들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북한이 긴장 수위를 높이는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2차 핵실험이라는 단어를 섣불리 거론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핵불능화 합의를 파기, 원상 복구하고 핵물질 제조에 나서는 등 단계별로 긴장을 높일 가능성은 있습니다.
백승주 정형곤 박사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형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북·미 간 대화 재개가 일종의 목표였다고 할 수 있겠죠. 남성욱 소장께서 말한 것처럼 물밑접촉이든, 다른 형태든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시도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대북정책을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의견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일정 기간 북한을 탐색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도 2차 핵실험은 자제할 것 같고요.
김병로 정형곤 박사께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고 했는데 일반적으로는 ‘로켓 발사’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안보리의 북한 제재안 채택 여부에 따라 북한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여겨집니다. ‘미사일 발사’라면 유엔제재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북한의 이번 행동을 ‘인공위성을 탑재한 로켓 발사’라고 공식화하면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안을 채택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중국, 러시아가 바로 그런 차원에서 제재에 반대하고 있고요. 안보리 논의가 흐지브지 끝난 다음에 일본, 미국이 개별적으로 북한을 제재하더라도 북한이 크게 반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기 전에 미국에 인공위성 관련 내용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그런 조치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북한은 당분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추가 조치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백승주 세 분 모두 북한이 단기적으로는 긴장을 고조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군요. 북한의 향후 행보는 오바마 행정부의 태도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띨 것 같습니다. 미국은 지금 유엔제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실제로 제재를 원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한·미·일 공조 틀을 유지하고자 겉으로만 제재를 말하고 있을까요? 미국의 속마음도 궁금합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강력 제재’ 양상을 띨까요? 아니면 대화와 보상을 강조하는 형태로 나타날까요?
남성욱 미국과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게 핵심 목적이었다면 북한이 시기를 잘못 선택했다고 봅니다. 너무 서둘렀어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강경하고 직접적인 외교(tough and direct diplomacy), 핵무기 없는 세계(nuclear weapon free world)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정책을 실행하려면 인물을 정하고 기존정책을 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재까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의 군축 담당 차관보도 그렇고요. 상원 인준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어요. 부시 행정부도 임기 첫해 6월이 돼서야 대북정책에서 대안을 마련했습니다.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에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로켓을 발사한 셈이죠.
미국 민주당이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을 강조하고 있지만, 집권 초기 오바마 행정부를 혼란에 빠뜨린 건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적지 않아요. 오바마는 ‘나를 시험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오바마의 진취적 성향을 볼 때 북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서 문제를 풀려고 할 거예요. 그렇지만 미국의 외교 현안 순위에서 북한 문제는 후순위로 밀려나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선의의 무시정책’, 즉 일단은 관망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상반기엔 대화를 복원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 9~10월은 돼야 북한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의 관점이 나올 겁니다. 물론 그때 가서도 오바마가 북한에 선물을 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신경전, 기싸움이 이어지겠죠. 오바마가 자신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앞서 언급했듯 김정일이 핵물질을 다시 만지작거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백승주 오바마 행정부가 한동안은 북한의 압박에 대해서 일종의 무시정책을 전개할 것이라는 말이군요.
정형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보상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기본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시 행정부와 비교해서 약간의 강도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요. 그런데 미국의 대북 제재 수단이 마땅치 않습니다. 미국의 경제 제재는 그동안에도 별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북한도 그 부분을 잘 알고 있고요. 미국의 고민이 이 대목에 있습니다. 대북정책의 방향이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미·중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가 중요한 변수라고 봅니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 때처럼 미·중이 가까워지면 북한 문제를 풀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지켜봐야겠죠.
김병로 저는 오바마 정부가 대북정책의 윤곽을 어느 정도는 잡았다고 봅니다. 포괄적으로 대화하고 협상하는 방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로켓 발사 때문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거세게 반발하니까 실효성이 없는 걸 알면서도 안보리 제재를 거론하는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그런데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 취임 100일 되는 날 로켓을 발사했더군요. 미국은 비난 성명을 발표하면서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지만 대화로 문제를 푼다는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이 숨 고르기를 마친 뒤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백승주 오바마 행정부가 언제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할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것인가 같은 문제에도 국민의 관심이 클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주변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와 관련해 말씀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로켓 발사 이후 주변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은
남성욱 2006년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직후 중국 외교부가 비난 성명을 내면서 ‘悍然(hanran)’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중국어 사전에 ‘서슴없이, 제멋대로, 난폭하게’라는 뜻으로 나오는 단어입니다. 중국 외교부가 이례적으로 비외교적 표현을 써가면서 북한을 비난한 겁니다. 그러고 나서 중국은 안보리 북한 제재 결의안에 동참했습니다. 사전 협의 없이 핵실험을 한 데 대해 불쾌했던 모양입니다. 북한은 이번 로켓 발사 때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북한 외무성이 전세계 북한공관에 보낸 문서를 보면 “인공위성이라고 선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중국은 사전 협의가 있었기 때문에 유엔결의에 소극적일 겁니다.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6자회담의 재개를 원합니다. 동북아의 강대국으로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거죠. 중국이 로켓 발사와 관련해 미국을 거들어줄 가능성은 낮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관계에서도 초반 ‘기싸움’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해결책으로 제시할 겁니다. 러시아도 중국과 같은 맥락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입니다.
백승주 일본은 어떤 태도를 보일 것 같습니까?
남성욱 ‘일본이 과도하게 호들갑 떤다’ ‘재무장 구실로 삼으려 한다’는 논리가 있는데 일본의 처지도 이해가 갑니다. 일본을 두둔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고 대기권 바깥으로 로켓이 날아갔더라도 북한이 자국을 향해서 쐈다는 점, 자국 앞바다에 1단 로켓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의 대북 제재 움직임과 관련해 우리가 반박할 만한 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일본은 이번 발사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면서 재무장의 빌미로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형곤 주변국들의 대북정책이 로켓 발사 때문에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미국의 대(對)동북아 정책, 그중에서도 대중 정책 기조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각국의 의견이 달라지리라고 판단합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양자 틀보다는 다자 틀을 주로 고려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조정자 구실도 했고요. 그런데 부시 행정부 때는 양자 외교가 강조됐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변수입니다.
남성욱 앞서 말했듯 미국은 일단 관망할 겁니다. 목소리를 높여서 얻을 게 별로 없어요. 보상해야 할 부분이 더 부각될 수 있거든요.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한에 굽히고 들어갈 스타일이 아닙니다. 실무자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겁니다. 6자회담 재개와 힐러리 장관의 방북 같은 이슈도 조용한 외교로 처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북한의 시끄러운 외교와 미국의 조용한 외교가 만들어내는 엇박자가 상반기까지는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3/4분기는 돼야 북미대화가 언론지면에 오르내릴 겁니다. 다만 미국 여기자들이 100일 넘게 북한에 억류되면 미국 내에서 정부가 무능하다는 여론이 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여기자 카드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겁니다. 여기자들은 현재 초대소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북한 당국이 상당히 잘 대해주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북한이 여기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긴 자술서 같은 걸 받아서 공개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매스컴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어요.
김병로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 구도를 고려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도 있습니다. 아직 힘이 부치는 중국은 2012년께까지는 미국과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갈 것입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서로 갈등을 빚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중국의 힘이 지금보다 강해지고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하면 중국은 독자적 발언을 늘릴 겁니다. 2012년 이후 북한이 흔들리면 중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양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백승주 주변국 상호관계와 관련해서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주변국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일부에선 ‘진영 대결’ ‘군비 경쟁’을 우려합니다. 반대로 북한이 말썽을 부리면 협력체제가 오히려 강화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의 양자 및 다자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요?
남성욱 방금 진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단어는 동서 냉전시대에 많이 쓰던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면서 한·미·일 대(對) 북·중·러로 상징되는 진영 대결이 일부 나타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영 대결이 표면화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국 정부가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에 전면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진영 대결이 벌어질 거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동북아에서 일·중 간 대결구도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면의 양상은 조금 다릅니다. 경제협력을 통해 중국과 일본이 상생할 부분이 많습니다. 북한 제재와 관련해서 두 나라의 의견에 온도차가 있지만 그것을 진영 대결이라고 일컫기는 어렵습니다. 주변국들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사안별로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나타낼 것 같습니다.
정형곤 남성욱 소장 말씀에 동의합니다. 겉으론 갈등이 적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관계를 보면 주변국들은 대단히 상호 의존적입니다. 일각의 우려처럼 진영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김병로 당분간 동북아에서 협력체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점엔 저도 동의합니다. 중국도 앞으로 4~5년 동안은 미국에 협력할 겁니다.
백승주 제가 보기엔 일본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요.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이슈를 놓고 서로 다툴 일은 없겠죠. 북한의 로켓 발사는 진영 대결을 일으킬 만한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부터는 남북관계에 초점을 맞춰 말씀해주십시오.
남성욱 긴장적 공존관계와 평온적 공존관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평온과 긴장이라는 말을 함께 쓰기가 뭣하긴 하지만요. 평온적 공존관계는 평양이 워싱턴의 대응이 나올 때까지는 서울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가설입니다. 평양은 서울을 워싱턴의 종속 변수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평양은 구태여 서울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필요가 없습니다. 긴장적 공존관계는 워싱턴의 북한 달래기가 늦어지거나 평양을 무시하는 분위기로 상황이 흐를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2차 핵실험 같은 도발이 아니라 성동격서(聲東擊西) 식으로 서울을 힘들게 하는 거죠. 그런데 북한의 당국자라면 고려해야 할 변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경색시켰다고 비판했습니다. 역설적으로 현 정부는 북한의 도발 덕분에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여론의 물줄기가 바뀌었죠. 이런 상황은 북한이 의도한 게 아니었습니다.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서 도발한다면 그 속내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 기조가 지금보다 더 여론의 지지를 받게 될 겁니다. 따라서 서해에서의 군사적 충돌보다는 현대아산 직원 억류 사건처럼 민간인을 대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략에 대해 북한이 유혹을 느낄 것 같습니다. 개성공단이 위축되는 건 남북 모두에 마이너스입니다. 개성공단이라는 카드를 남북이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는 현 시점에서 중요한 이슈입니다. 북한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보지만 군부의 입김이 강한 상황이어서 잘못된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형곤 북한은 로켓을 발사하면서 경제 제재를 최소화하고자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나름대로 ‘문제아’ 이미지를 지우려고 힘쓴 셈이죠.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군사적으로 도발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죠. 우려되는 것은 경제 문제입니다. 10년 넘게 남북 경제 교류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이번에 학습을 했습니다. ‘정치·군사적 문제가 발생하면 개성공단도 막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개성공단을 둘러싼 갈등은 남북경협에서 트라우마가 될 것 같습니다.
김병로 한국이 어떤 정책을 쓰느냐에 따라 남북관계가 다른 양상을 나타낼 것 같습니다. PSI 참여가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우리는 참여 안 한다’고 국제사회에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고민되는 것은 우리가 앞장서 참여하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PSI는 적절한 수준에서 그냥 보조만 맞추는 식으로 참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PSI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 욕을 실컷 해놨습니다. 이 대통령에게 한 험담을 어느 날 갑자기 거두기는 어렵습니다. 북한 내부의 여론도 있지 않겠습니까? 평양이 서울에 유화 제스처를 내보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남북관계는 상당 기간 갈등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정부 어떻게 해야 하나
백승주 세 분 말씀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켓 발사 이후 서울에선 북한을 경계하는 여론 결집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평양에서도 보수파가 결속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고요. 이런 분위기가 한반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갈등 구조를 해소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사 파견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성욱 2006년 10월6일 북한이 핵실험 한 직후에 PSI에 가입했어야 했는데 노무현 정부가 실기했습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쏘았습니다. 우리도 사거리 500km 미사일을 개발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지나치다고 말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죠. 북한의 군비 증강에 대해 그저 관망만 하는 것은 이상주의적 접근입니다. PSI 가입은 불가피합니다. 남북해운합의에 따라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북한 선박 가운데 의심스러운 배가 적지 않습니다. PSI에 가입한 국가는 90개가 넘습니다. 로켓 발사와 관련해 유엔에 제재를 요청하면서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 다른 나라가 우리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특사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 발언의 의미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동안 총론 차원에서 수차례 대화를 제안했지만 진정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대화 방법으로서 특사를 거론한 것은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특사는 문제의 시작이 아니고 종착역입니다. 접촉의 결과물로서 특사 교환이 이뤄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특사가 현실화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정형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위협으로 여깁니다.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도 우려하고요. PSI는 선언적 측면에서 참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특사는 대북정책의 변화를 전제해야 합니다. 원칙을 강조해온 대북정책을 일부 수정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특사의 효과가 있을 겁니다. 현재로선 북한이 특사를 받지 않을 가능성도 크고요. 미국, 중국을 레버리지로 활용해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게 기존 대북정책에 흠이 안 나는 그런 방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병로 PSI 문제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듯 제 의견이 어정쩡합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청와대도 고민이 많겠지요. 북한이 미사일로 도발했는데 가만히 있는 건 굉장히 무능한 행동으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PSI에 참여했을 때 우리가 어떤 걸 얻을 수 있을까요. 수위를 좀 낮춰서 중간 정도에 줄 서 있는 정도로 PSI 문제를 마무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저는 특사 파견을 주장해왔습니다. 북한 지도자가 결심하면 남북관계는 순식간에 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특사를 파견할 시점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선 남북관계가 너무 악화됐어요. 북한이 격앙돼 있기도 하고요. 따라서 시간을 갖고 지켜보면서 우리도 아직 기분이 안 풀렸다는 점을 평양에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면은 있습니다만 북·미관계 회복을 지원하는 쪽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북·미관계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특사파견 시점을 결정하는 방식이 좋을 것 같아요. 평양은 서울이 개성공단을 닫아주기를 바라는 듯 보입니다. 한국이 개성공단도 닫았다는 식으로 얘기할 빌미를 찾으려고 서울을 압박하는 것 같습니다. 개성공단은 한국에 손해 될 게 없는 경협사업입니다. 2단계 및 3단계 공단 조성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합니다. 그러면 정부의 진정성이 평양에 전달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강경하게 대응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협력, 지원에 나서는 양면전략이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백승주 지금까지 세 분의 패널을 모시고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한반도 어디로 가나’를 주제로 토론했습니다. 저는 2004년부터 PSI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PSI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유엔 회원국에 북한을 제재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아침 일찍 나와주신 패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