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1452년경, 나무에 유채, 94×85cm, 벨기에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 소장
특히 성공한 남자와의 섹스는 여자에게 특별한 삶을 제공한다. 이 경우 섹스는 남자에게는 육체적 쾌락이지만, 여자에게는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여자는 권력을 움켜쥐고 싶을 때 사랑을 배제한 채 섹스를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쥔 남자 곁에 아름다운 여자들이 불나방처럼 모여들었던 것은 육체적 쾌락보다 더 좋은 권력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베개 밑 송사로 권력을 움켜쥔 대표적인 여자 중에 프랑스 샤를 7세의 정부였던 아그네스 소렐이 있다. 아그네스 소렐은 무기력한 샤를 7세를 사로잡은 지 1년 만에 작위와 재물을 선사받으면서 궁정의 숨은 권력자로 등장한다. 소렐은 나약한 샤를 7세를 치켜세워 프랑스 국토를 침입한 영국군을 몰아내게 했다. 당시 프랑스 최고의 미인이라는 찬사를 듣던 소렐은 젖가슴이 다 보일 정도로 파인 옷을 즐겨 입었는데 그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장 푸케(1415 혹은 1422~1480년)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다. 이 작품은 프랑스 왕실 재무상이던 슈발리에가 아내 카트린 부드의 무덤에 걸기 위해 의뢰한 것으로 그가 짝사랑하던 아그네스 소렐을 모델로 했다.
이 작품에서 높은 이마, 깨끗한 우윳빛 피부, 잘록한 허리의 성모 마리아는 담비를 덧댄 망토를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당시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이마를 드러내는 것이 유행이었다.
‘가브리엘레 데스트리스와 자매’ 1590년경, 목판에 유채, 95×125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왕비보다 더 내조를 잘해 왕을 만족시킨 여인이 프랑스 앙리 4세의 정부 가브리엘레 데스트레다. 앙리 4세는 평생 56명의 정부(情婦)를 두었지만 가브리엘레를 가장 사랑했다. 그녀는 앙리 4세의 침실만 뜨겁게 해준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가브리엘레는 앙리 4세가 전장에 나가 있을 때에도 함께 생활하면서 정치 외교문서에 서명을 했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목욕하는 여인’ 1550년경, 패널에 유채, 91×81cm,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공동목욕탕 안에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양쪽으로 걷어 올린 커튼 뒤로 거실 벽난로 옆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하녀가 보인다. 커튼은 침실의 캐노피를 연상시킨다.
앙리 4세의 기호에 맞추어 여성의 누드를 세심하게 표현한 이 작품을 제작한 화가의 이름이나 제작 연도를 알 수 없으나 1599년 가브리엘레가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나기 전으로 추정된다.
‘마릴린 캘린더’ 1952년 제작
아름다운 가슴으로 유명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클루에의 ‘목욕하는 여인’이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에는 원추형의 작은 가슴을 최고로 쳤다.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성은 유모로서 사랑받았을 뿐이다.
붉은 커튼을 걷어 올린 욕실 욕조에 몸을 반쯤 담그고 앉아 있는 여인 앞에는 과일 접시가 놓여 있다. 화면 왼쪽에 한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고 열린 창문 밖으로 하녀가 물항아리를 들고 있다.
프랑수아 클루에(1515~1572)의 이 작품에서 앵두는 성적 욕망을 상징하는 과일로 여인이 앙리 2세의 정부라는 점을 암시한다. 소녀의 손이 과일을 향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귀한 과일을 먹고 싶다는 욕망과 여자와 같이 왕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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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권력을 쥔 사람은 대중이다. 과거에는 권력자 한 사람에게 보여주면 성공했지만 지금은 대중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성공의 열쇠가 달렸다. 아름다운 여자가 대중에게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면 줄수록 성공한다. 섹시한 그녀들은 삶에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보다는 섹시한 모습을 연출해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 성공한 여성이 마릴린 먼로다. ‘마릴린 캘린더’는 당시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던 먼로의 누드로 제작한 달력이다. 붉은색 배경으로 인해 먼로의 볼륨이 있는 몸매가 강조되고 있다. 먼로는 1950년대 초반 미국의 사진작가 프랭크 포월니가 찍은 상업광고 덕에 핀업 걸에서 벗어나 섹시 스타로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