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시장에 불확실성 가득”
- “솔직 안 하면? 며칠 못 가서 들통 날 텐데…”
- ‘깽판 국회’ 소신 발언 화제
- 안정적 성장 정책에 무게
- 외평채 발행 성공, 외환시장 한시름 놓아
● 1946년 경남 마산 출생<BR>● 서울고, 서울대 법대 졸업<BR>● 1971년 행정고시 10회, 금융실명제실시준비단장,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2004~07),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BR>● 現 기획재정부 장관
최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언급한 뒤 큰 화제를 불러온 발언들이다. 게으른 입법부에 대한 비판, 고용문제에 대한 솔직한 예측, 서비스산업 고도화를 위한 규제 완화 시도, 환율 안정에 크게 기여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 30억달러 발행 성공, 부동산시장을 살리기 위한 조치…. 위기의 대한민국호(號)를 풍랑에서 구해내기 위한 그 나름의 노력이 깃든 말들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해 ‘할말은 하는 관료’로 알려진 윤 장관은 2월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은 이후에도 소신 발언을 이어왔다. 물론 4월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깽판 국회’ 발언에 대해 사과하면서 살며시 꼬리를 내리긴 했지만 그의 과감한 행보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시장도 어느 정도 신뢰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환율 국제수지 등 거시경제 지표들이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윤 장관은 G20 금융정상회의 직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제 역할을 해낸 데 대해 공개적으로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대외 변수는 불투명하고, 실물경기의 침체는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또 ‘경제 수장’이지만 영리 병원 허용 여부를 두고 보건복지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노후차 교체시 세금감면’을 두고 지식경제부와 엇박자를 낸 점 등 타 부처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한국은행과 전망치 다른 이유
윤 장관을 만난 4월10일은 한국은행이 ‘2009년 경제전망 수정’을 발표한 날이다. 모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했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경제성장률과 고용 전망이었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2.4%에 이르고, 연간 취업자 수가 13만명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런 전망이 앞서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전망치와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윤 장관은 8일 국회 답변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 2% 안팎, 고용은 8만명 늘 것으로 보았다.
3월14일 윤증현 장관이 G20 재무장관회의가 열린 런던에서 알리스테어 달링 영국 재무장관과 양자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재정부가 고용을 적극적으로 전망했다면 한국은행은 조금 보수적으로 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결국 추경예산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집행되느냐, 경제가 어떤 속도로 얼마나 회복되느냐는 문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측은 언제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측치가 똑같으면 기관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지요.”
▼ 그러나 경제 핵심 부처와 중앙은행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 시장의 신뢰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본다면 재정부와 한국은행의 예측치가 모두 같아야 하는데, 저는 서로 견해 차이도 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 전망치를 두고 다시 조정되는 게 자연스럽지요. 사실 중앙은행은 조금 더 보수적으로 보는 관행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측면에서 전망치에 일정 부분 정책의지를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과도 해선 안 되겠지만요.”
▼ 장관께서는 취임 직후 경제성장 전망치를 객관적으로 하향 조정해 시장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었습니다. 시장에선 그런 솔직함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하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거짓말은 며칠 안 가서 금세 들통 날 텐데요. 중요한 것은 투명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투명성이란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국민과 시장에 전달하는 것이지요. 제가 장관에 취임한 뒤 우리 경제의 전망치를 객관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일관성이란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일단 결정된 정책은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내 경제팀 간의 팀워크를 강화해 불협화음으로 인한 시장불안을 차단하고 시장에 한목소리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정책에 반영하고 수요자 입장에서 면밀히 점검하는 것도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전임자를 밟고 싶진 않다’
▼ 취임한 지 석 달째입니다. 재정부를 이끄는데 전임 장관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전임자는 그 나름대로 고생도 많이 했고, 또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 큰 역할도 했고요. 전임자에게 누가 되거나 부정적인 얘기는 안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전임자의 잘못을 짚어나가다 보면 직전 전임자뿐 아니라 그전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4월8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는 윤증현 장관.
“옛말에 정책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제는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로 귀결되거든요. 경제의 여러 변수는 서로 갈등적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마의 삼각관계라고 하는 ‘성장, 물가, 국제수지’를 놓고 봐도 특정한 시점에서 정부가 어느 부분에 더 중점을 둘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예컨대 성장도 달성하고, 국제수지도 균형을 이루고, 물가도 안정시키는 것, 즉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상충관계, 혹은 ‘트레이드 오프(trade off·교환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가 성장하려면 원자재 등을 많이 수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장에만 치중하면 국제수지가 적자가 되거나 물가가 오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물가를 포기하면 인플레이션이 옵니다. 또 어느 정도 이상으로 성장을 지속하지 않으면 고용에 문제가 생깁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없습니다. 대외적으로 계속 적자가 나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경제정책은 어려운 겁니다. 또 특정한 시기에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이냐, 또 정책 수단은 어떤 것을 쓸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세분화해서 보면 사람에 따라 그 방법이 다 다를 수 있거든요.”
‘마의 삼각관계’
▼ ‘마의 삼각관계’ 가운데 지금은 어느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지요.
“간단히 얘기한다면 ‘안정적 성장’입니다. 불경기에는 첫째가 성장입니다.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취할 수 있는 목표나 선택 수단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성장을 제일 우선해야 일단 이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고 고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성장을 할 때는 대외변수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제수지 적자가 나면 가뜩이나 불안에 떨고 있는 외환시장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환율 등 금융시장이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국제수지도 굉장히 중요한 변수입니다. 올해는 우리의 대외신인도가 향상되면서 외평채 발행까지 성공적이어서 외환시장이 아주 빠른 속도로 안정돼 갈 겁니다.”
▼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더 하강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엄밀히 말하면 아직도 전반적으로 어려운 경제흐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출과 내수가 부진하고, 2월엔 고용도 14만2000명이나 줄었습니다. IMF가 1월에 세계경제 전망을 0.5%에서 3월에 ▼ 0.5~1.0%로 줄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 2.7% 성장을 전망했습니다.
반면 경제지표에 일부 긍정적 신호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들어 광공업과 서비스업 생산이 전달보다 늘어나고 있고, 2월 경기 선행지수도 15개월 만에 소폭 상승했습니다. 또 수출 감소폭이 2월 이후 크게 줄어들면서 경상수지는 2월 37억달러 흑자에 이어 3월에도 45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3월 중순 이후 환율 주가 등에서 안정세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부정적 요인과 긍정적 요인이 혼재하고, 선진국 경기는 예상보다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대외 여건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세계경제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경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국제적 금융거래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G20회의에서 독일 프랑스 등이 글로벌 금융규제 신설 등 금융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 같습니까?
“미국은 공공분야에서 수요를 일으켜 그것을 유효수요로 연결시켜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가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는 거지요. 반면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선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금융의 지나친 행태, 실물과 괴리된 금융의 팽창, 과잉유동성 등의 문제들이 금융감독의 부재로 인해 생겨난 것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선 금융상품 등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가 우선적으로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융 감독 기능 강화될 것’
유럽 각국은 감독을 규제하고 강화하기 위해 헤지펀드를 등록하게 하고, 신용평가기관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시키는 방안을 찾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IMF의 가용재원을 위기 이전보다 3배 정도 더 늘리자는 컨센서스가 이뤄졌습니다. 또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융기관들의 부실자산 정리에 관한 기본 원칙을 부칙으로 합의서에 넣었습니다.”
▼ 최근 전세계적으로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와 관련해 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요?
“최근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무역, 금융, 고용,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호무역주의 조치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EU 등 선진국은 자동차, 반도체 등 자국 주요 산업에 구제금융과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개도국들은 관세인상과 수입제한 등 다양한 조치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보호주의가 배격되지 않으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이 살길이 없습니다. 이런 변화 앞에서 우리 정부는 보호무역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G20 회의에서도 의장국 지위를 활용해 보호무역주의 억제 논의를 주도했습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가 보호무역주의 모니터링 역할을 강화하고, 관련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도록 제안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이번 G20 회의에서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윤 장관은 “외환시장이 상당히 안정돼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환율은 경제의 펀더멘털과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런데 요즘 펀더멘털이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선 수출 하락세가 완화되고 있습니다. 또 수입이 많이 줄어든 탓이기는 하지만 무역수지가 계속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주식시장도 대외여건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또 실물지표를 보면 광공업 지수와 서비스 산업이 전기 대비 플러스로 바뀌고 있어요. 한 15개월만인가 싶은데 경기선행지수도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고, 그런 여러 가지 긍정적인 지표가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의 펀더멘털이 나아지고 대외신인도가 높아져서 결국 포스코가 7억달러, 하나은행이 10억달러의 해외채권 발행에 성공했습니다. 또 정부도 외평채 30억달러를 좋은 조건으로 발행했습니다.
이렇듯 외화 공급 부문이 개선되니까 외환시장은 저절로 선순환으로 가게 됩니다. 외화유동성이 계속 공급되니까 설사 외화유동성 수요가 많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것으로 상쇄돼 외환시장은 일단 한시름 놓고 안정권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물론 잠재적인 외부 리스크 요인이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소 파 소 굿(So far, so good·지금까진 좋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외환시장은 상당히 안정된 길로 들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소 파 소 굿(So far, so good)’
▼ 내수시장을 키우는 방법에는 SOC 투자, 산업체질 개선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시장을 살리는 특단의 대책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인프라 투자도 해야 하고, 부동산시장도 정상화시켜야 하고, 무엇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제조업에 비해 우리는 서비스산업이 아주 약합니다. 서비스산업 육성을 통해 내수시장을 키워야 해요.”
▼ 영리 병원 허용을 주장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정형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4월9일 기획재정부가 서비스 선진화 방안의 주요 과제로 영리 의료법인을 허용하려는 것과 관련해 “윤증현식 방법으로 하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의료는 공익성만 있는 게 아니라 산업적 측면도 있습니다. 영리법인이 의료계에 진입하면 비영리법인의 공공 의료체계가 무너진다고 걱정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유지하되, 현재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부분을 영리법인이 맡는 방식으로 가자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환자의 선택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태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데서는 의료를 산업으로 접근해서 외국 환자를 100만명씩 유치합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전이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의료산업 분야입니다. 의술이 상당한 수준에까지 와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의료산업을 키울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 계속 가면 급이 자꾸 낮아집니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건강보험체계가 다 무너진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기득권을 유지하자는 차원에서 나온 말 아닙니까. 지금도 병원들이 말만 비영리지 실제 로는 영리로 운영되는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게 자신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영리병원 반대하는 이들은 시장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게 싫다는 뜻이죠.”
▼ 고용과 재원조달 등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개발사업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예컨대 모 학자는 수심이 얕은 경기만을 개발해 9억9000만㎡(3억평)의 토지를 확보하고, 분양을 통해 500조원의 자금을 자체 조달하면서 640만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아직 전문지식이 없고 검토를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처럼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 가용국토를 늘리는 길은 바다를 매립해서 면적을 넓히거나 산을 깎아서 가용지를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사업은 경제성을 먼저 따져봐야겠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국토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겁니다. 타이밍도 중요하겠고요.”
‘한-EU FTA 타결될 것’
▼ 이번 G20 회의에서 정상들은 ∇2010년까지 재정지출 5조달러로 확대 ∇보호주의 저지 ∇신흥·개도국에 1조1000억달러 지원 ∇금융규제 개선 ∇국제금융기구 개혁 등에 합의했습니다. 특히 국내 경제 회복과 관련,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내용은 무엇인지요.
“각국이 재정 규모를 확대해 GDP를 4%포인트 상승시키고, 보호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WTO를 통해 이행을 점검하도록 한 것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금융기구 개혁 등도 앞으로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것으로 우리 경제의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 무산됐는데, 앞으로 대응방안은 무엇입니까.
“EU는 세계 제 1위 경제권이자 우리나라 제2위 교역 상대입니다. 그래서 EU와의 FTA 체결은 우리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겁니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가전제품 등의 수출시장 확대가 기대되고,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강화되는 전세계적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이번 통상장관회의에서 합의하진 못했지만 양측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때문에 앞으로 잘 진행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4월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가운데)과 윤증현 장관이 이야기하고 있다.
“당연히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미국이 국내시장에서 EU와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비준을 서둘러야 할 겁니다. 예컨대 한-칠레 FTA가 발효된 뒤 칠레산 포도주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2003년 7%에서 2008년 18%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미국산 포도주는 점유율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16%에서 10%로 줄어들었습니다.”
윤 장관의 말처럼 한-EU FTA 협상 동향이 미국 내에서 한-미 FTA 조기 비준을 촉구하는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3월27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서울의 경고(A Seoul Warning)’라는 사설을 통해 한-EU FTA 협상 진행상황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DDA(도하개발어젠다)협상이 부진한 현 시점에서 FTA는 최선의 선택이며 한국시장 선점을 위해 미 의회가 비준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 3월30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 철저한 구조조정을 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어떤 방식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씀인지요?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이란 결국 인적 자본과 물적 자본, 생산성이라는 세 요소를 개선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인적자본 측면에서는 교육서비스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며,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물적 자본을 늘리기 위해서는 규제완화 등을 통해 기업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적극적인 개방을 통해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유치해야 합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 의료 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육성하고, R·D 투자와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 등 녹색성장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주요 과제가 될 겁니다.”
위기 이후의 대비책
▼ 세계적으로 경기부양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과잉유동성의 함정이 잠재합니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예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위기 이후의 대비책은 무엇인지요.
“세계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확장적 통화 재정정책이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수습되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측면을 감안해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도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에 정책을 집중하되, 장기적인 재정건전성과 물가안정을 고려해 신뢰할 만한 정책기조 전환전략(exit strategy)을 미리 준비하자는 내용이 공동선언문에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정책기조를 적기에 적정한 강도로 전환해나가는 것은 말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책기조의 선택은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간의 상대적인 위험을 평가해 이뤄집니다. 그래서 기조전환을 검토해야 하는 시점에 어느 위험이 얼마만큼 더 큰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요. 특히 정책기조를 확장에서 긴축으로 전환하는 것은 반대의 경우보다 정치적으로도 더 힘든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잠재적 위험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지금의 위기를 20세기 초 대공황 때와 비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공황 이후 20세기 성장의 축을 이룬 자동차 주택 전자제품 등 내구소비재 생산 체계가 정착됐습니다. 지금의 위기 이후에도 성장의 원천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있고, 그게 바로 녹색성장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녹색성장 정책이 너무 단기처방에 머무르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습니다. 유동성 공급과 유효수요 증대 등이 위기 처방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녹색 성장정책은 성장 패러다임을 완전히 달리하는 것인데, 여기에 걸맞은 실천방안은 무엇인지요.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단순히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단기처방이라는 견해는 녹색성장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녹색성장은 환경과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통해 양자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장기 성장모델입니다. 에너지와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환경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녹색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2월 기존산업 녹색화 및 녹색경영 확산 등 녹색성장을 위한 10대 정책방향을 제시했고, ‘녹색성장 국가전략과 5개년계획’을 수립해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갈 예정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녹색성장을 뒷받침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녹색뉴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총 36개 과제에 추경 2조3000억원을 포함, 올해만 11조6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일자리 나누기 성공적’
▼ 녹색성장을 이루려면 국민의 동참도 필수적일 것입니다. 특히 에너지 과소비구조를 바꿀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있는지요?
“에너지 절감은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첫째 산업, 가정, 수송, 공공부문 등 각 부문에서 에너지 효율을 2030년까지 47% 개선할 계획입니다. 산업면에선 에너지 고효율 시설투자를 확대하고, 서비스산업 등 에너지 저소비 산업구조로 전환토록 하겠습니다. 그린카와 경전철 등 에너지 절약형 교통수단을 확대해서 일상에서 에너지 절약이 생활화되도록 유도하겠습니다.”
▼ 기축통화 논쟁이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장관께서는 이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고, 어떻게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하시는지요.
“기축통화 관련 논의는 국제금융 시스템의 안전성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으므로 성급하게 추진할 사안은 아닙니다. 현 시점에서는 각국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에 더 많은 역량을 집중해야 하며 기축통화 논의는 중장기 과제로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일자리 나누기’는 현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요?
“최근 시작된 ‘일자리 나누기’는 나눔과 베풂, 고통분담을 통해 공동체의 따뜻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것이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처럼 국난 극복을 위한 국민운동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자리 나누기’ 성공사례를 언론이 적극 소개한 것도 그 확산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고용 여건을 개선하는 데 어느 정도는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여건에 따라 임금 조정, 근로시간 단축, 교대제 전환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나누기가 이뤄지고 있으며,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절감 등 고통분담을 통해 신규채용을 확대하는 기업도 늘고 있습니다.”
최근 임금조정으로 인턴 등을 채용한 회사는 우리금융(2000명), 삼성(1만8000명), LG(4600명) 롯데(7300명), GS(2500명), KT(1400명), 신한지주(500명) 등이다.
‘분노 아니라 희망 전달해야’
▼ 28조9000억원의 추경예산과 관련해 55만개 일자리 창출 및 22만개 일자리 지키기는 언제 가시화되는 것입니까?
“이번 추경으로 55만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28만개이며, 추경으로 유발되는 간접고용효과(4만~7만개)를 감안하면 총 30여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추경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기존 취업자가 이동하여 상쇄하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원래 마이너스 2%로 성장률을 전망하면 취업자 수가 20만명 줄어들지만 전체적으로 취업자 수는 작년보다는 약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물론 추경안이 국회심의를 거쳐 조속히 확정돼야 가능한 일입니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고려해서 여야가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윤 장관은 G20 회의 참석차 출국하기 전 ‘추경예산’과 관련해서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장관 취임 이후 세 번째 편지다. ‘우리의 2009년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 1929년(대공황)은 분노를 전달했지만 지금 우리는 희망을 전달해야 한다’는 요지의 편지였다. 왜 이런 소통방식이 필요했을까.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 먹듯이 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고민도 들어주고 싶은데 장관직을 수행하다 보니 시간 내기가 너무 힘들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편지 내용은 생각날 때마다 수첩에 키워드를 적어둡니다. 주로 현장과의 소통, 창조적 발상, 꾸준한 실행력, 나눔과 베풂 등을 강조합니다.”
이런 편지는 재정부 직원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재정부의 한 국장은 말했다.
카리스마 있는 윤 장관이 직원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잘 전달해서 국민과도 더 잘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