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씨.
‘알 권리’라는 개념은 공공기관과 정치인 등 공인(public figure)에 대해서 주장할 수 있다. 공인의 경우 사생활 자체가 공적활동에 영향을 주는 요소라는 인식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적 면책사유(legal defense)의 적용도 가능하다. 문제는 어디까지를 공인으로 볼 것인가에 있다.
오늘날 공인의 범주는 연예인, 스포츠 스타에 이르기까지 상대적으로 넓어졌다. 전면적 공인(all purpose public figure)이란 새로운 개념이 등장함에 따라 사실상 ‘유명인사’면 누구나 공인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면 ‘유명인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사람들의 인식이나 미디어 노출 정도를 기준으로 판별해야 할 것이나 그 경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은 억울하겠지만 느슨하게 보자면 그들도 공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들쑤심당할 수밖에 없는 숙명
한편 알 권리의 정반대편에 있는 ‘사생활’, 이른바 ‘프라이버시’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한 개념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설명은 ‘혼자 있을 권리(the right to be left alone)’다. 이는 1890년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에서 처음 제기한 이래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저널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가만히 내버려두기보다는 사람들을 쑤셔내는 데 있고, 프라이버시란 뭘 감추는 데 있다. 숙명적으로 늘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를 부채질하는 것은 인간의 이중적인 판단기준이다. 공권력이 우리를 감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칠게 반발하면서도 탈법적인 몰래카메라가 들추어낸 부정부패를 보며 쾌감을 느낀다.
1987년 5월 미국 플로리다의 유력지인 마이애미 헤럴드는 게리 하트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아파트 주변을 잠복 취재한 끝에 그가 한 여인과 ‘의심을 받을 만한 상황(compromising position)’에 있다고 특종 보도했다. 하트는 즉각 헤럴드를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결국 제2의 케네디를 꿈꾸던 그는 눈물을 뿌리며 경선후보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오늘날 프라이버시 침해 유형은 개인 이름 등을 영리에 이용하는 행위, 개인적 평온을 침해하는 행위, 개인의 사적 정보를 유출하는 행위,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등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개인의 원하지 않은 사적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다. 그래서 우리 헌법 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이른바 발가벗은 사회에 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가리고 싶은 것은 보장받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고상한 말을 끄집어낼 필요도 없다. 상대방이 나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나는 그 앞에서 왜소해지고 약해진다.
이브의 나뭇잎
프라이버시를 지켜준 최초의 물건은 이브가 사용한 다섯 장의 나뭇잎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다섯 장의 나뭇잎으로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기란 힘들다. 특히 공인이 갖는 프라이버시 공간은 일반인이 지닌 공간에 비해 억울하리만큼 좁고도 작다는 사실을 이 땅의 유명인사들은 명심해야 한다. 공인의 경우, 사생활도 공적 영역으로 보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 만큼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해당 인사들이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의사나 변호사가 진료나 변론을 탈법적으로 하면 강제폐업을 당하거나 자격을 박탈당하지만, 기자가 몰래카메라나 비합법적인 취재로 거대 사회악을 폭로하면 퓰리처상을 받는 게 바로 저널리즘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