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강도 높은 대북제재결의안에 합의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이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에 어렵사리 합의했다. 그러나 이런 ‘성명’이 북한의 행동변화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북한이 공개한 로켓 발사 장면.
기자들이 대거 몰려든 이유는 한국시간으로 4월5일(뉴욕시간으로는 4월4일)에 있었던 북한의 로켓 발사와 관련해 안보리 긴급회의가 소집됐기 때문이었다. 회의 진행방식은 비공개였다. 유엔 조직 중에서도 안보리는 유독 비공개회의가 많다. 민감한 안건을 다룰 때가 많기 때문이다.
회의를 마친 뒤 다카스 유키오(高須幸雄) 유엔 주재 일본대사가 나왔다. 일본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아니지만 비상임이사국이다. 일본은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뒤 35분도 되지 않아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일본은 안보리 회원국 중 북한 로켓 발사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의 행위는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북한이 안보리가 2006년에 채택한 결의안 1718호를 위반했다는 점은 명백하다(안보리는 2006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대북(對北)제재결의안 1718호를 채택한 바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일본은 안보리 ‘결의안(resolution)’을 원한다.”
그러나 장예쑤이(張業遂) 유엔 주재 중국대사의 발언은 뉘앙스가 달랐다. “안보리의 대응은 ‘신중’하고 ‘적당’해야 한다. 각국이 자제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긴장을 높일 수 있는 행동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6일간의 줄다리기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의 발언은 일본대사와 같은 맥락이었다. “북한의 행위는 미사일과 관련한 어떤 행위도 금지한 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이를 규탄해야 한다.”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 ‘결의안’ 채택을 원했던 일본, 미국과 결의안보다는 수위가 낮은 ‘의장성명(presidential statement)’을 주장했던 중국, 러시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안보리 상황은 6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정리됐다.
안보리는 4월11일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과 일본 등 주요 6개국 회의와 15개 이사국이 모두 참여한 비공개 회의를 잇달아 열고 북한의 로켓 발사와 관련한 의장성명을 채택키로 의견을 모았다. 안보리는 이후 전체회의를 열고 의장성명을 공식 채택했다.
의장성명은 북한의 로켓 발사를 규탄(condemn)하고, 이를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채택된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으로 규정했다. 특히 1718호 결의 8항에 의해 부과된 대북 제재 조치를 조정키로 합의하고 안보리의 대북 제재위원회에 4월24일까지 제재 조치 조정 내용을 보고토록 하는 한편 제재위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보리가 4월30일까지 조정 조치에 나서기로 했다.
‘P5+日’의 北로켓 제재 셈법
제재 형식에서는 일본과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등에 양보하는 대신 의장성명 내용을 강화하는 쪽으로 타협한 것이다. 이번 합의는 미국이 일본의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뒤 도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미국과 중국이 의장성명 초안 내용을 사전에 조율했다는 말도 나왔다.
유엔에서 ‘P5’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5 permanent members)을 가리킨다. 안보리는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과 거부권이 없는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비상임이사국의 임기는 2년. 매년 5개국씩 총회에서 선출된다. 일본은 비상임이사국이지만, 유엔 예산의 20% 안팎을 부담하는 등 ‘특별한 비상임이사국’이다.
북한 로켓 관련 협의 과정에서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국가는 일본이다. 기자가 뉴욕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시기인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에도 일본은 안보리에서 대북제재방안을 주도했다. 당시에도 일본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던 10월 당시 안보리 순번의장국이던 일본의 오시마 겐조(大島賢三) 유엔 주재 대사는 강력한 제재내용을 담은 결의안 1718호를 주도했다. 유엔 근무를 오래해 일본 외무성에서 최고의 유엔통으로 평가받는 그는 능숙한 영어실력을 과시하면서 안보리의 북한핵 제재 논의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북한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납북일본인 문제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엔을 담당하는 일본의 한 특파원은 “일본에서 납북 일본인 문제는 이미 ‘정서적 문제’가 됐다”며 “그런 점에선 일본 정부가 대북정책의 틀을 짜는 데 운신의 폭이 좁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 미사일(혹은 로켓)이 일본 상공을 가로지르는 것 자체가 일본 열도에는 충격이다.
2006년 안보리가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회의장을 박차고 나서는 박길연 북한대사(가운데).
그렇다면 왜 ‘결의안’을 고집하던 일본이 마지막 순간에 ‘의장성명’에 만족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안보리 의사결정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안보리는 P5 중 한 국가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직이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의안 채택은 불가능하다. 일본으로선 대북 제재가 자칫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 때처럼 의장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공식기록에도 남지 않는 대(對)언론용 성명 발표에 그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래서 최종 순간에 미국의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행보는? 중국은 2006년에는 ‘맹방’인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이론적으로는 물리적 강제수단까지 동원 가능한 ‘유엔헌장 7장’을 원용한 대북결의에 찬성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각국은 자제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며 북한을 감싸는 태도를 보였다. 왜일까?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에 대해 “지난 4년간 중국의 대북한 교역이 급증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이해가 커졌고, 중국의 대북경제활동 증가로 북한 엘리트와의 새로운 커넥션이 형성됐다”는 ‘독특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분석의 타당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유엔대표부 고위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중국의 경제규모로 볼 때 북한과의 교역량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지난번 1718호 결의안 채택 당시 중국의 강경태도가 예외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며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정상적 국가 간의 외교관계로 보기는 어려우며, 당대당의 협력 관계차원에서 이해하는 게 맞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의 태도도 주목된다.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규칙은 지켜져야 하며, 위반행위에 대해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밝히는 등 미국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일본 설득에 나서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가 일본과 한국을 의식해 공식적으론 원칙적인 대응의지를 밝혔지만 앞으로 장기적인 대북정책을 염두에 두고 온건한 대응기조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보리 대북제재는 솜방망이?
안보리는 이번에는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데 그쳤지만 2006년 북한 핵실험 당시에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것도 군사력 동원이 가능한 ‘유엔 헌장 7장’까지 인용한 ‘초강력 결의안’이었다. 결의안 채택 이후 안보리 산하에 별도의 제재위원회까지 설치했다. 그렇다면 그 효과는? 안보리의 대북제재가 북한이 압박을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제재로 연결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안보리가 강도 높게 북한을 제재했다’는 명분 외에는 안보리 결의가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주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 측근들에게 타격을 준다는 목적으로 제재결의안에 ‘사치품거래 금지’ 조항도 포함시켰다. 이 조항도 결의안 통과 당시 ‘화제성 뉴스’로 다뤄졌을 뿐 이후 북한 권력엘리트에 실질적인 타격을 줬다는 이야기를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섬’과 같은 존재인 북한은 외교적으로 고립돼도 잃을 게 없는 특수한 국가여서 안보리 제재가 힘을 발휘하기에는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안보리 결의안을 확정할 당시 결의에 찼던 ‘말’들에 비하면 성과는 부끄러울 정도다.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결의안을 모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에 안보리는 회원국들에 대북제재 이행방안을 제출토록 요구했지만 실제 리포트를 낸 나라는 192개 회원국 중 73개국에 그쳤다. 리포트를 제출한 회원국들의 제재이행 방안도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과 양자접촉에 나서면서부터는 안보리 결의안 이행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기자들이 안보리 관계자들을 만나 ‘대북 제재결의안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실효성도 작은 것 같다. 어떻게 돼가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북한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선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오곤 했다.
안보리가 이번 북한 로켓 발사에 대해 비록 형식은 의장성명이지만 강도 높은 내용을 채택했음에도 그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자신들에게 실질적으로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북한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2006년 10월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 당시 북한의 박길연 유엔대사는 안보리 회의장에서 “안보리가 미국의 핵위협과 제재 압력 움직임을 무시하고 강제적인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깡패 같은(gangster-like) 짓”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안보리 이사국은 아니었지만 북한과 한국 유엔대사는 당시 당사자 자격으로 안보리 회의에 참석했다. 박길연 대사의 발언은 유엔외교 의전에 비춰봤을 때에 파격적인 것이었다.
북한 박길연 유엔 대사의 안보리 막말
그러자 다혈질인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흥분해 박 대사의 빈 의자를 가리키며 “1960년 니키타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연단을 두드렸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유엔은 북한을 축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대사는 안보리 의장인 오시마 겐조 일본대사에게 “볼턴 대사가 흥분한 상태라도 적절치 못한 비유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달라”라고 요청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보리 회의 광경.
한국인에게 유엔,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국제조직이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안보리가 곧바로 소집돼 북한의 침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유엔군 파병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거부권을 가진 소련은 두 차례나 안보리에 불출석, 유엔군 파병을 사실상 ‘용인’했다. 지금도 왜 소련이 두 차례나 안보리에 불출석했는지는 미스터리다. 이처럼 국제 안보문제에 대해 컨센서스를 통한 ‘무력행사’를 결정할 수 있는 안보리는 막강한 파워를 가진 조직이다. 이 때문에 유엔에 여러 조직과 기구가 있지만, 기자들이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이는 곳도 안보리다. 그런데 문제는 안보리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닌 조직이라는 점이다.
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안보리가 지금까지 해온 일 중 실천력을 제대로 보여준 것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을 파견한 결정”이라며 “안보리는 거부권이라는 특별한 의사결정시스템 때문에 행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코소보 사태에 대한 대책도 안보리가 아닌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주도했다.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이다.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이다. 중국은 1971년 중화민국을 대신해서 상임이사국이 됐다.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된 뒤 러시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상임이사국이 행사할 수 있는 거부권 때문에 안보리는 국제안보에 위협이 되는 사건에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와 관련해 안보리가 계속 미적거리는 이유도 수단에 막대한 경제적 이권을 쥐고 있는 중국이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사태에 대해서도 안보리는 이해당사자인 러시아의 반대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기가 힘들었다. 미국도 이 같은 비판에선 자유롭지 않다. 이스라엘 관련 중동지역 현안이 안보리 의제로 오르면, 미국은 100% 이스라엘 편이다.
물밑 거래의 현장, 안보리
그렇다고 안보리가 ‘분열’만 거듭하는 것은 아니다.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박재영 교수는 “상임이사국들은 상호 이해관계를 위해 안건에 따라 협력하기도 하고, 의사결정 구조의 중심이라는 유엔 내의 위상을 잃지 않기 위해 공동대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보리에서 ‘비공식협의(informal consultation)’가 주목받는 이유다. 외교의 본질은 ‘물밑 거래’다. 그런데 안보리는 특히 비공식협의가 많다. 비공식회의는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선 이른바 ‘물밑거래’가 손쉽게 이뤄질 수 있다. 언론 등에 공개되는 안보리 공식회의는 안건에 대해 이사국 대표들이 돌아가면서 각국의 공식입장을 읽거나 아니면 이사국들이 이미 비공식협의를 통해 최종 방안을 확정한 뒤 마지막 투표할 때 정도다.
러시아의 경우 이란 핵 이슈를 자국 이해를 위해 잘 이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는 그동안 안보리에서 이란핵 제재안에 대해 서방진영과 보조를 맞춰오다가 지난해 여름부터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엔 소식통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지난해 그루지야 사태 이후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이란핵 문제를 지렛대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이란핵과 관련해 러시아의 협조가 예전만 못하자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최근 대(對)러시아 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결국 러시아의 전략이 어느 정도 먹힌 셈이다.
주목해야 할 안보리의 힘
안보리에서 상임이사국의 힘은 이처럼 막대하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안보이슈는 안보리에 상정되는데 이사국이 아니면 그 정보가 좀처럼 공유되지 않는다. 유엔사무총장도 안보리가 선출하는데, 한국 정부가 반기문 현 총장의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현안도 안보리 상황에 관한 정보입수였다. 당시 한국은 안보리 이사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안보리 이사국들로부터 안보리 동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느라 총력전을 벌였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각 지역 맹주들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염원한다. 특히 일본은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일본은 2년 전 독일, 인도, 브라질과 함께 이른바 ‘G4’ 모임을 이뤄 안보리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한 활동을 맹렬히 펼쳐오다가 실패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상임이사국 진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 전략적 포석으로 일본은 2008년에 이란을 제치고 임기 2년의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돼 안보리에서 활동 중이다. 일본은 이로써 10차례나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면서 역대 최다 비상임이사국 선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대목은 한반도에 급변상황이 닥칠 때다. 만약 북한 정권이 갑자기 붕괴할 경우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안보리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될 때 중국이, 혹은 그때 상임이사국이 될지도 모르는 일본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국과 일본은 지금은 북한 관련 사안에 공조하는 우방이지만, 일본이 ‘통일 한국’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안보리와 관련해 ‘북한 로켓’ 문제말고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