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3월11일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64기 육사졸업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국방경영 효율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4월초 한 국방부 관계자가 털어놓은 솔직한 속내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앞에서 국방예산을 합리화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가 최근 눈에 띄게 스피드를 내고 있다는 것. 심지어 청와대와 국방부 주변에서는 ‘국방예산 감축 혹은 동결’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도 회자된다. 국방예산과 관련한 중장기 계획이 만들어지는 4월과 5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청와대와 ‘밀리면 안 된다’고 다짐하는 국방부의 시각차가 불거지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방예산 관련 작업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2005년 국방부가 야심차게 발표했던 ‘국방개혁2020’을 수정한 ‘국방개혁기본계획’을 만드는 일이 가장 상위 개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는 두 차례에 걸쳐 이 계획을 조정했지만, 청와대의 보완 지시에 따라 4월말을 목표로 수정작업을 진행해왔다. 기본계획이 완성되면 그에 따라 2010~14년의 예산소요를 다루는 ‘국방중기계획’의 얼개가 만들어진다. 주요 무기도입사업 등 이 기간에 진행되어야 하는 대규모 예산투입 항목을 시간별로 어떻게 배치할지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이 일이 완성돼야 그에 따라 2010년 국방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 관련부처의 조정작업을 거쳐 예산안이 작성되면 국회로 넘어가 심의를 받는 것이 예산안 마련의 기본구조다.
임기 초 육사 졸업식 치사
흥미로운 것은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제 수정작업 완료단계에 접어든 국방개혁기본계획부터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는 점이다. 당초 추정됐던 소요예산 621조원 가운데 30조원가량을 줄이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기계획 역시 무기도입사업 일정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중급유기와 고고도 무인정찰기(UAV) 등의 도입일정을 늦춘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역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내년도 국방예산안 역시 이러한 대형사업의 일정조정 등을 통해 상당부분 규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기본구조상 기본계획-중기계획-내년도 예산안이 선후관계로 연결돼있지만, 검토과정이 늦어지면서 이들 작업은 상당부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방부가 육·해·공군본부의 예산소요를 취합해 기획재정부나 청와대와 조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것. 국방부가 그리는 예산안 콘셉트의 소요 근거를 청와대가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는 분위기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 같은 흐름의 가장 큰 배경은 단연 최근의 경제위기다. ‘국방개혁2020’이 처음 확정될 무렵에는 2020년까지 매년 4.6~4.8%의 실질경제 성장률이 실현된다는 가정 아래 2011년까지 국방비가 매년 9.9%씩 증액된다고 보고 소요예산을 산정했지만,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락한 올해 상황에서 이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청와대 논리의 핵심이다. 기본계획 예산부터 줄이고 그마저 상당부분을 향후 5년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내년도 예산에서도 상당부분을 줄이는 방안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올해 수준(28조5326억원) 동결 같은 ‘초강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최소한 7.1%였던 올해 국방예산 증가율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린다는 내부목표를 세워두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상황이 전부는 아니다. 전현직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이미 대선 캠프시절부터 국방예산에 관한 문제의식이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권력 핵심인사들 사이에서 공유돼왔다고 전한다. 이 대통령이 임기 초였던 지난해 3월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치사에서 “국방혁신은 시급한 과제”라며 “세계 안보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구조를 최적화하고 국방 경영을 효율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일은 최근 들어 청와대 관계자들이 부쩍 자주 인용하는 레퍼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