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MB정부 승부수‘휴먼 뉴딜’이끄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하반기부터 사교육비 획기적 절감하는 포트폴리오 준비”

  • 정현상│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05-08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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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산층 잡아야 MB정부가 산다
    •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 정부가 보육비 80% 감당 추진
    • ‘임기 말 사교육비 절반으로’… 싸움이 시작됐다
    • 방과후학교에 국·영·수도 포함…학원강사, 외부기관도 참여
    • 교원단체 반발 있겠지만 ‘결단’ 필요한 사안
    • 사교육 침투 어렵게 대입제도 변경…수능 영어·수학 비중 조정도
    • 관리는 관료가, 교수 출신이 할 수 있는 건 개혁
    MB정부 승부수‘휴먼 뉴딜’이끄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 1960년 대구 출생<BR>●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미 밴더빌트대 석·박사(경제학)<BR>● 밴더빌트대 공공정책원 연구조교수,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국제정책연구원(GSI) 정책기획실장,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 정책분과 간사, 17대 대통령직인수위 기획조정분과위원, 청와대 국정기획수석<BR>● 現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서울 종로구 세종로 KT빌딩. 청와대와 정부청사, 광화문 네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이 건물은 요즘 관가에서 ‘청와대 광화문 별관’으로 통한다. 최시중 위원장의 방송통신위원회, 강만수 위원장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의 미래기획위원회가 모두 이 건물에 둥지를 튼 까닭이다.

    곽승준 위원장을 마주한 것은 4월14일 오후 이곳 집무실에서였다. 곽승준 위원장과 강만수 위원장은 같은 12층,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집무실을 나눠 쓰고 있다. 본인은 아니라고 손사래 치지만, 가히 이명박 정부 실세들의 집결지라 할 만하다.

    2001년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셔온 곽 위원장은 흔히 ‘MB노믹스 설계자’로 불린다. 대선 승리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을 거쳐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에 임명됐다가 촛불정국의 여파로 모교 경제학과 교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한가한 시간은 길지 않았고, 이내 국가전략 관련 장기정책을 입안하는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초 취임 이후 곽 위원장이 최근 열중하고 있는 주제는 ‘휴먼 뉴딜’이다. 미래기획위원회는 3월23일 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부처 합동회의를 열고 ‘중산층 키우기 휴먼 뉴딜’ 정책을 공개했다. ‘1인 창조기업’ 육성 같은 아이디어가 제시된 이 사업의 핵심은 변화하는 고용환경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이것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승부처”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게 잘 안되면 망한다는 심정으로…”라고도 했다. 도대체 미래기획위원회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기에 그렇다는 것일까.



    ‘살아남기’와 ‘치고 나가기’

    ▼ 미래기획위원회의 역할이나 업무 범위가 매우 폭넓다는 느낌입니다. 대선 캠프에서 맡았던 정책총괄이나 국정기획수석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미래기획위원회는 전 정부의 정책기획위원회 후신입니다. 김영삼 정부 때 21세기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죠. 새 정부 들어 조직을 개편하면서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자는 뜻에서 이름을 바꿨지만, 역할이나 기능은 이전과 비슷합니다. 크게 미래전략, 외교·안보·통일, 신성장동력· 미래경제, 소프트파워·교육, 에너지와 환경의 다섯 개 분과로 나뉘어 있고요. 이 가운데 에너지·환경 분과 업무는 녹색성장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대부분 그쪽으로 일임했습니다.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이나 다른 위원회 업무와 겹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위원회끼리는 업무구분이 분명하게 돼 있고, 청와대는 또 대통령을 매일매일 보좌해야 하는 고유의 프로젝트가 있으니까요. 미래기획위원회는 그에 비해 좀 더 객관적으로 큰 틀에서 의견을 내놓고 장기전략을 짜서 대통령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4월9일 ‘조선일보’는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곽 위원장이 업무 범위가 겹쳐 관계가 껄끄럽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이러한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국정기획수석실 업무와 깔끔하게 선을 긋는 말이 간단치 않게 들린다.

    “우리 위원회의 가장 큰 역할은 국민이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하는 겁니다. 특히 경제위기에서 ‘살아남기’와 ‘치고 나가기’라는 관점에서 우선순위를 배분하고 있습니다. 악화된 상황에서 다른 나라보다 상처를 덜 입는 방안,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치고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방안을 고민한다는 거죠. 미래기획위원회 사업 중 사회안전망 개혁이나 중산층 키우기 같은 경우는 ‘살아남기’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미래성장동력 확보나 개혁과제는 ‘치고 나가기’가 되겠죠.”

    MB정부 승부수‘휴먼 뉴딜’이끄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2008년 1월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재정경제부 업무보고에 앞서 강만수 당시 경제1분과 간사(왼쪽)와 곽승준 기조분과 위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중산층을 살리려면

    ▼ 말씀했듯이 위원회는 최근 ‘휴먼 뉴딜’을 통해 중산층 살리기 사업에 열중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 중산층입니까.

    “선진국은 모두 중산층이 두텁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996년에 중산층 비율이 68%였는데, 외환위기를 거친 뒤 2006년 조사에서 58%로 줄었고, 이번 경제위기 후에는 더 줄어들 거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납세를 하고 소비를 하는 중산층은 한 나라의 경제를 받치는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다시 치고 나가야 할 때 주축을 맡아야 하는 이들이고요. 중산층이 빈곤층 이하로 떨어지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재정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열악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죠.

    ‘휴먼 뉴딜’은 현재의 중산층을 지키고, 서민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고, 저소득층 아이들이 장래에는 중산층이 되도록 돕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집니다. 2월 오바마 정부가 ‘강한 중산층이 강한 미국’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관련 태스크포스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죠. 여기서 추진하는 프로그램도 최근 저희가 준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이나 독일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고요.”

    ▼ ‘일하는 복지’가 MB정부 복지정책의 근간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중산층을 육성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는 이런 일자리가 급속도로 줄고 있으니까요. 미래기획위원회가 ‘1인 기업’을 활성화해서 이를 돌파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과연 이게 가능할까요.

    “저희가 생각하는 중산층 지키기의 방법론은 크게 소득 증대와 지출 감소로 나뉩니다. 중산층 실직자들은 대개 공공근로를 꺼리는 경향이 있죠. 차라리 노는 게 낫다는 겁니다. 당장 임금이 높지 않아도 비전과 특기와 적성에 맞는 직업을 기다리고요. 이런 분들 가운데 창의성과 전문성을 갖춘 분이 많습니다. 흔히 프리랜서라고 부르는 직업군도 저희가 말하는 1인 기업에 포함되는 거니까요. 이들은 창업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세제지원 등으로 조금만 도와도 소득증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중소기업청에서 구축하고 있는 IBB(Idea Biz Bank)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사업계획서로 만들어 등록하면 전문가 평가를 거쳐 창업자금이나 관련 절차를 지원하는 겁니다. 문화관광부의 문화콘텐츠산업 1인 창조기업 모집도 비슷한 방식이고요. 사실 문화콘텐츠 시장은 이미 상당 부분의 작업이 아웃소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약간의 아이디어와 비교우위가 있는 분들에게는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 있습니다. 이렇게 휴먼 뉴딜 사업은 이미 상당 부분 실행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물론 공공근로도 없는 것보다는 낫죠. 당연히 해야 할 사업입니다.”

    5000만 먹여 살리기

    ▼ 예를 들어 30대 초반의 실업자가 휴먼 뉴딜 정책을 활용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1인 창조기업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고추장을 잘 만드는 아주머니는 그걸 사업화할 수 있도록 해주자, 정부에서 마케팅을 지원해주면 된다, 그런 취지입니다.

    예컨대 IPTV가 본격화하면 엄청난 양의 콘텐츠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이 이뤄져야 합니다. 개개인의 참여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굳이 대기업에 고정적으로 고용되지 않아도 그때그때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장이 두텁게 형성되도록 해주자는 겁니다. 지금은 평범한 네티즌이 재미삼아 만든 UCC가 수십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시대입니다. 굳이 방송사처럼 플랫폼을 가진 거대기업 취업에만 목을 맬 필요가 없습니다.”

    ▼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는 불안정한 직업일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실업보다는 낫겠지만 일자리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을 텐데요.

    “그런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들 대책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반영해 만들어진 것임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함께 ‘버텨보자’는 거죠. 중요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서비스업에서 새로운 ‘괜찮은 일자리’들을 만들어내자는 계획도 정부가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거든요.

    인구 5000만명을 먹여 살리려면 다양한 산업을 모두 해야 합니다만,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비스업입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58%밖에 안 됩니다. 선진국은 78~79%에 가깝거든요. 일자리의 양 못지않게 질도 중요하다면, 서비스산업에서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금융산업, 문화콘텐츠산업, IT, 디지털 분야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IT산업이나 문화콘텐츠산업의 경우 이제까지는 채널과 플랫폼을 가진 대형사업자가 콘텐츠 생산까지 수직적으로 관리하는 식이다 보니 개별적인 콘텐츠 생산자들이 발전할 수 없었죠. 미디어법이 통과되어 이런 구조를 깨면 새 일자리가 쏟아져 나올 겁니다. 이들이 모두 중산층이 되어 세금을 내고 소비를 하는 국가 잠재 경제성장률의 주축이 되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와 관련해 조만간 저희 위원회에서 IT산업과 문화콘텐츠산업 육성방안을 만들 겁니다. 그게 휴먼 뉴딜 사업 다음으로 대통령께 보고드릴 주제입니다.”

    ▼ 최근 위원회가 ‘한식(韓食)의 세계화’ 사업을 내세운 것도 같은 취지입니까.

    “음식이나 레스토랑 같은 분야에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식 세계화 사업을 위한 추진단이 한 달 안에 발족합니다. 7대 성장동력 가운데 하나로 식품산업이 포함되는데, 위원회가 한식을 세계 5대 식품 가운데 하나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음식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자동차산업의 2.5배입니다. 일본이나 태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죠. 정부가 민간단체 형식으로 자국 음식 수출산업 전략을 지원합니다. 메뉴를 전세계적으로 통일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MB정부 승부수‘휴먼 뉴딜’이끄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획기적인 사교육비 절감대책”

    ▼ 3월23일 회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보면 전반적인 방향만 나와 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각론의 세부내용과 일정이 나와 있습니까.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휴먼 뉴딜 당정협의회를 통해 확정됩니다. 우리 위원회가 이 협의회의 간사를 맡고 있죠. 예를 들어 저희가 1인 창조기업 못지않게 주력하는 것이 사교육비 절감대책인데, 이에 관한 당정협의가 조만간 열립니다. 개별 부처 차원에서는 결단을 못 내렸던 ‘사교육비와의 싸움’을 여당과 정부가 함께 의지를 갖고 준비해나가자는 거죠. 지금 안(案)을 만들어 협의하고 있으니, 3~4주 내에 결과가 나올 겁니다.

    1인 창조기업이 중산층의 소득 증대를 위한 거라면 사교육비 절감은 지출 감소 방안에 해당합니다. 중산층 가계에 큰 압박요인이 되는 사교육비, 보육비, 통신비 같은 것을 줄여나가는 거죠. 통계를 보면 지난해 중산층 소득은 줄었지만 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일자리 창출이 미래에 성과가 나오는 어음이라면 사교육비 절감은 당장 효과가 보이는 현금이라고 할 수 있겠죠. 피부로 느껴지는 성과는 더 클 겁니다. 실제로 방과후학교에서 사교육을 상당 부분 대체해주니 마이너스 통장이 플러스로 바뀌었다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 외에 앞으로 한두 달 간격으로 저출산 대책, 사회안전망 개혁방안, 일자리 개혁방안 등이 줄줄이 발표될 겁니다. 저출산만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거든요. 흡사 돈 있는 사람들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처럼 돼버렸잖아요.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이라는 취지로 정부가 이를 80%까지 감당한다는 계획이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대략 이런 사업들이 휴먼 뉴딜의 뼈대를 이룹니다.”

    대입 선발방식, 어떻게 바뀌나

    ▼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사교육비 절감대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대책이 나왔지만 효과가 썩 좋지 않았으니까요.

    “크게 둘로 나뉩니다. 사교육을 대체할 공급을 확대하는 부분과, 사교육 수요를 억제할 수 있도록 입시 시스템을 손질하는 것이죠. 수요를 억제해놓고 공급을 확대해야 효과가 있을 테니까요.

    공급확대의 핵심은 방과후학교의 활성화입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외부 강사들이 등록할 수 있는 풀(pool)을 만들어 사교육시장과 경쟁할 수 있게 하는 거죠. 4분의 1 이하의 비용으로 같은 질의 강의를 제공한다면 경쟁력이 있겠죠. 이 풀에는 학원강사도 들어올 수 있고, 국립대 사범대학에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도 있고, 예술분야 전문기관이 위탁형식으로 참여할 수도 있겠죠. 각 외부기관이 방과후학교에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려고 합니다.

    특히 지금은 배제돼 있는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주요 과목도 방과후학교에 폭넓게 문호를 개방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해야 실질적인 사교육비 절감이 가능할 테니까요. 물론 교원단체나 사설학원 같은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와 반발이 만만찮을 겁니다. 교육부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결국은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올해 하반기나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학부모들이 체감할 수 있는 효과가 분명히 나타날 겁니다. 더 늦으면 안 되죠.

    수요억제 부분은 아직 협의가 완료되지 않아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수능에서 영어와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을 조정하는 형식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계열별로 이를 달리 적용할 여지가 분명 있거든요. 사교육을 금지한다거나 단속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사교육이 침투할 수 없는 방향으로 대입 선발방식에 변화를 주는 거죠. 최근 KAIST의 좋은 사례도 있었고요.”

    3월5일 KAIST는 2010학년도 입시부터 전체 입학정원의 15~20%를 일반고 학생들로만 무시험 전형으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각종 경시대회 수상 실적은 전형요소에서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전국 일반고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오로지 심층면접만을 통해 150명을 선발한다는 것이다.

    “사교육의 여러 요소는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하나만 뺀다고 건물 전체가 무너지는 구조가 아니죠. 이 건물 전체의 크기를 줄일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당정협의회를 통해 마련되고 있습니다. 목표는 대선 공약대로 대통령 임기 내에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고, 이제 그 구체적인 실행단계에 접어든 것이죠.”

    위원장이 바뀐다고…

    ▼ 3월23일 회의에는 미래기획위원회를 포함해 6개 부처가 합동으로 참가했더군요. 미래기획위원회와 각 부처가 어떻게 업무를 분담하는지 궁금합니다. 또 내용의 상당 부분이 각 부처가 알아서 추진해야 옳았을 항목이고요. 각 부처에서 자기 일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아이디어는 저희가 내고 그 집행은 각 부처가 맡습니다. 사실 부처들은 고마워해요. 원래 하고 싶었지만 부처 간 장벽이 높아 안 되던 걸 저희가 도와주니까요. 한식 세계화만 해도 농림수산식품부가 혼자 추진한다고 나서면 업무영역이 일부 겹치는 외교통상부나 문화체육관광부가 가만히 있지 않거든요. 교육과학기술부라고 왜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싶지 않겠어요. 저항이 워낙 거셀 테니까 문제인 거죠. 그렇지만 우리가 그 리스크를 나눠 지니까 과감히 갈 수 있는 거예요.

    이 때문에 모든 프로젝트는 꼭 부처 간 협의와 당정협의를 거치도록 돼 있습니다. 위원회는 아이디어를 내고 모으는 곳이지 집행기구가 없기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미국만 해도 백악관 경제자문회의에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대통령과 관료조직에 적절히 조언할 수 있는 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위원회가 계속 아이디어를 내고 묶어가며 부처를 이끌 수 있는 동력이 있으면 됩니다.”

    ▼ 강만수 위원장이나 곽승준 위원장처럼 이른바 ‘실세’분들이 위원회를 맡고 있는 동안에는 추진력이 있겠지만, 위원회라는 게 그런 분들이 떠나면 곧 유령조직화하곤 하지 않습니까. 관련 사업도 흐지부지되고요.

    “동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누가 위원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위원장이 바뀌었다고 역할을 못하고 추진력을 잃으면 그 조직은 없애야죠. (웃음) 위원장이 바뀌어도 잘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한번 틀을 만들어놓으면 각 부처가 이를 돌리는 거니까요.”

    “진짜 실세 아닙니다, 허허”

    곽 위원장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그가 맡고 있는 공식업무에 한정돼 있지 않다. 3월28일 ‘동아일보’는 이른바 ‘4+1 회의’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곽 위원장을 중심으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장수만 국방부 차관 등 ‘실세차관’들이 매주 수요일 저녁 정기모임을 열고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는 것이 그 골자다. 기사가 나간 직후, 각 언론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칼럼과 사설이 이어졌다. ‘곽승준’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힘이다.

    ▼ ‘4+1 회의’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만, 시중에는 이른바 ‘(차관급) 실세들의 비공식 정치’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기사가 나온 후 해당부처 장관들이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소식도 들리고요.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몇 차례 모인 것뿐, 절대로 대단한 게 아니에요. 특히 나는 차관도 아니잖아요. 대단한 게 아닌데 기사가 세게 나오는 바람에…. 실제로 저는 한두 번밖에 안 갔어요. 그 모임 참석자들이 뭐 그리 대단한 실세겠습니까, 각자 자기 부처에서 꼼짝도 못하는데. 특히 나는 아니에요, 진짜 실세 아닙니다.(웃음)”

    ▼ 그렇지만 최근 곽 위원장의 이러저러한 발언이 세간의 관심을 산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전히 폭넓은 사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요.

    곽 위원장은 2월13일 미래기획위원회와 한국금융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세미나에서 “한국 금융은 초등학생 수준이며,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해서 대학생 수준으로 도약하려는 선진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3월31일에는 한 심포지엄에서 “이명박 정부에 IT가 없다고 비판하면서 과거 정보통신부를 그리워하는 속내를 보면 보조금을 받고 독점 사업권을 받았던 이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모두 해당업계 관계자들에게는 상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그건 제가 대선이나 인수위 때 각 분야 정책을 두루 총괄하는 일을 했기 때문일 거예요. 국정기획수석 시절에도 외교안보나 교육 같은 부분까지 포괄해서 둘러봤으니까요. 여러 이슈의 포트폴리오를 짜서 그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게 업무였고요. 그러다 보니 지금도 축사나 기조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가면 또 내용 없는 얘기만 할 수는 없잖습니까? (웃음) 그중에 언론이 주목할 만한 얘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중원을 얻는 자

    ▼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을 넘었습니다. 정권을 만든 이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몇 점 정도라고 자평하십니까.

    “그걸 몇 점이라고 어떻게…. (웃음) 평가는 국민께서 해주시는 거죠. 저야 학교에 있던 사람이고, 주로 정책에만 관여해온 사람이죠. (잠시 침묵) 이명박 정부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고 국민의 고충을 얼마나 해결했는지 평가가 달라질 부분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잘하려고 했지만 촛불시위 같은 상황 때문에 지체된 부분이 있었죠. 다행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다시 마음먹고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봅니다. 대통령께서 잘하실 겁니다.

    야당이나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휴먼 뉴딜 같은 프로그램이 현 정부 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공격하는 걸 접한 적도 있고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겠죠, ‘부자 정부’라고 비판해왔는데 중산층을 살리겠다고 나섰으니까요. 부유층 대 서민층, 그런 구도와 잘 안 맞는 정책이고요. 그건 분명 이 정부의 색깔을 오해했거나 왜곡한 겁니다. 대통령께서도 휴먼 뉴딜을 보고받고 ‘국민성공시대에 유용한 대응방안’이라고 격려하셨으니까요.

    이렇게 보면 사실 휴먼 뉴딜은 이명박 정부의 승부처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축구는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이기는 싸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치도 누가 중산층의 마음을 얻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중산층을 잡아야만 이 정부가 삽니다. 그게 안 되면 정말 망한다는 심정으로,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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