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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으로 엿본 연예계 성(性)비리 실태

“단순 만남 소개비는 500만~1000만원, 동거 대상 연예인은 부르는 게 값”

  • 김범석│ 일간스포츠 연예팀 기자 kbs@joongang.co.kr│

장자연 사건으로 엿본 연예계 성(性)비리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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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흥주점에서 신인 오디션 보는 유명 PD
  • ● 영화 만들 때마다 추문 일으키는 유명 감독
  • ● 연예인 소개해주고 외제차 장만한 브로커
  • ● 재벌 자제들에게 ‘이상형’ 연결해주는 ‘찍팅’
  • ● 레이싱 모델, 아나운서, 리포터까지 대기
장자연 사건으로 엿본 연예계 성(性)비리 실태

죽음으로써 연예계 비리를 폭로한 고 장자연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인 탤런트 장자연(29) 사건을 계기로 또다시 연예계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 수사를 피해 일본에 머물고 있는 장자연의 소속사 대표 K씨가 검거되고 검찰 수사가 마무리돼야 이번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겠지만 이제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대한민국 연예계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공개된 셈이다.

장자연 사건을 보면 지금 이 시간에도 힘없는 신인이나 연예인 지망생들은 ‘뜨기 위해’ 원치 않는 접대 자리에 불려가고, 이른바 유력인사들 앞에서 굴욕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기획사나 캐스팅 권한을 갖고 있는 끗발 있는 유력인사들에게 소중한 시간과 인권을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문화계 내부의 시각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메이저리그에선 좀처럼 있을 수 없는 다소 특이한 사건이라는 시선. 싸이더스HQ나 나무엑터스, 예당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장자연씨의 소속사나 전 매니저 유장호씨의 경우 사단법인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회원도 아니며 매니저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업계 종사자의 사기를 저하시켰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부 매니저들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지금 데리고 나오라”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에 가입된 포레스타 엔터테인먼트 배경렬 대표는 “장자연씨 소속사는 광고 모델 에이전시로는 유명한 곳이지만 매니지먼트는 몇 년 전부터 사업을 축소하고 있었고 다른 기획사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도꼬다이’ 회사였다”며 “유씨도 송선미씨와 이미숙씨 일을 봤지만 경력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매니저로 알려져 있다. 두 매니저의 싸움에 신인 탤런트가 휘말려 괴로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자연 사건이 연예계에서 사라지지 않는 병폐의 소산이고 빙산의 일각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신인 연기자나 가수의 술시중과 성 접대는 연예계의 공공연한 사실이며, 이번 사건으로 일부 속살이 드러났을 뿐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얼마든지 제2, 제3의 장자연 사건이 재연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자가 만난 연예 관계자들은 익명을 전제로 자신의 피해 사례와 목격담을 털어놓았다. 이 중에는 연예계의 추악함에 환멸을 느껴 전직한 사람도 여럿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속되는 한 이런 병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현역 매니저 K의 증언을 들어보자. 올해로 8년차 매니저인 그는 2007년 한 방송사 드라마국 PD에게 당했던 황당한 사연을 폭로했다. 당시 미니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던 A프로듀서는 평소 힘없는 매니저와 신인 연기자를 무시하는 언행으로 악명이 높았다. 처음 보는 매니저에게 자동차 열쇠를 주며 세차까지 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상당수 기획사 매니저들은 자사 소속 신인 연기자를 좋은 시간대에 편성이 결정된 미니시리즈에 출연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A를 찾아가 허리를 숙였다. 오디션이라도 한번 보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매니저도 있었다.

황당한 건 A가 신인들의 오디션 장소로 여의도의 한 유흥주점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미혼이던 A는 S대 출신으로 상당한 재력가 부모를 둔 덕에 고급차를 몰고 다녔다. 매니저 K는 “어느 날 밤 A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돌이켜보면 그때 가지 말았어야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화의 요지는 ‘지금 신인 연기자를 데리고 이곳으로 올 수 있느냐’는 것. 갑작스러운 연락이었지만 PD가 먼저 전화해 연기자 실물 미팅을 하겠다고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부랴부랴 신인 연기자를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 손질부터 시킨 뒤 함께 여의도 유흥업소를 찾았다. 그곳은 방마다 화장실이 딸린 룸살롱이었다.

A는 혼자 있었다. 신인 연기자가 자기 소개를 한 뒤 세 사람은 폭탄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A의 양주잔이 빌 때마다 신인 연기자는 두 손으로 공손히 그의 술잔을 채워줬고, 안주도 먹기 좋게 A의 접시에 옮겨 날랐다. 적당히 긴장이 풀어지자 매니저 K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술에 취한 A가 K의 휴대전화에 ‘먼저 일어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일을 처음 겪은 K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결국 자정을 넘긴 뒤 신인을 데리고 나와 A와 헤어졌다. 법인카드도 없었던 K는 이날 100만원이 넘는 술값을 개인카드로 그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연기자가 캐스팅만 된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조감독을 통해 결과를 알아봤지만 캐스팅은 불발이었다. 아까운 돈과 시간만 축낸 것이다. 신인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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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일간스포츠 연예팀 기자 kb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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