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공산당 간부들이 2008년 12월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30주년 기념대회에서 기립해 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경제의 급속한 침체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30년 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이래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경제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해준 원천이었다. 만약 중국이 이제까지와 같은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증가일로의 노동력에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면 대중의 불만과 사회 불안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을 게 뻔하다.
거대경제를 이끌어온 당 지도부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두 자릿수 경제 성장률은 사스(SARS) 사태, 쓰촨성 지진, 관료들의 부패 스캔들 속에서도 중국 공산당의 버팀목이 돼왔지만, 이제 세계적 규모로 몰아닥친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정치적 난관은 중국 공산당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다.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의 강력한 1인 통치 시스템에서 벗어나 중국 최대의 권력집단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를 정착시켜가고 있다. 이러한 집단지도체제는 서로 끊임없이 영향력 확대를 위해 경쟁하는 두 개의 비공식 파벌, 즉 태자당(太子黨)과 공청단(共靑團)파로 구성돼 있다.
초유의 실험, 두 명의 후계자
중국 공산당 내부의 파벌 경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드러나는 경쟁 양상은 승자 독식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 좋은 예가 2002년 장쩌민이 후계자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물려준 사건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권력승계였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파벌에 속해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요즈음 워싱턴에서 유행하는 표현을 쓰자면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post-Deng China)’은 이들 경쟁그룹에 의해 통치되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내부경쟁 체제는 2007년 10월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차기 후계자 1명을 지명하는 과거의 직접 승계 방식을 버리고 예외적으로 2명의 경쟁자를 후계자로 발탁함으로써 더욱 굳어졌다. 당시 중앙위원회는 50대 초반이라는 나이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상이한 시진핑과 리커창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임명했다. 9명으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명실상부한 중국 국가지도자의 산실이다. 2012년 당 대회 이후 권력을 공유하게 될 두 사람의 향후 역할은 상무위원 발탁 당시 이미 규정돼 있는 상태다. 시진핑은 후진타오로부터 국가주석직을 승계하고 리커창은 원자바오에게서 총리직을 물려받는 것이다. 이들 두 사람은 가문, 정치적 배경, 리더십 기술, 정치적 지향점 등에서 공통점이 거의 없지만, 향후 10년 이상 중국의 정치·경제 정책을 주도하게 될 두 경쟁파벌을 이끌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오랫동안 지속돼온 중국의 수출주도형 발전모델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난제를 떠맡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혁신적인 개혁, 시장자유화, 내수 위주 경제로의 체질개선을 위한 정부의 개입 등을 조화시켜야 하는 어려운 작업으로, 지도층이 심각하게 분열하거나 권력경쟁이 심화될 경우 난관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다행스러운 점은 당의 생존이 이 같은 과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두 파벌이 모두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위기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내부 투쟁을 잠시 미뤄둘 수 있다는 판단이 여기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