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호

클래식 음악과 이름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너는 다만 하나의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 조윤범│현학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입력2009-11-04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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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과 이름

    자동차 이름 소나타는 음악용어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름이 있다. 이름은 어떤 인물이나 사물, 사건을 가리키기 위해 붙여지는데, 반대로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이미지가 바뀌기도 한다.

    많은 기업이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이름에 따라 판매량이 좌우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보통명사로 시작했겠지만,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고유명사를 붙이게 되고, 또 한 차원 높은 다른 이름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심지어 딱딱해 보이고 거친 느낌이 드는 상품에 부드러운 이름을 붙인다면 사람들에게 훨씬 좋은 이미지로 다가설 수 있다. 지극히 감성적인 음악용어를 붙이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고급스럽고, 전통 있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강렬하며, 열정적이고, 재미있고, 재치 있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가 음악용어에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사용범위는 무한하다. 나아가서 그런 음악용어를 사용하는 작품이름에서부터 작곡가의 이름, 그 작곡가가 활동한 장소, 수많은 작곡가가 사용해온 양식과 시대 이름까지 차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차용해왔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해온 음악용어들을 새삼스럽게 꺼내어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음악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왔는지를 알아보자. 어쩌면 이런 이름들은 아예 원래의 음악용어가 아닌, 새롭게 만들어진 고유명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악용어를 상품에 사용한 것들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자동차 이름일 것이다. ‘소나타’는 두말할 것 없는 음악용어다.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말을 할 때도 기승전결과 같은 일정한 형식과 순서를 갖고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형식, 가장 자연스럽고 완성되어 보이는 형태, 그것이 고전파시대에 완성된 소나타 형식이다.



    ‘매우 빠르게 연주하라’는 뜻의 음악용어인 ‘프레스토’ 역시 자동차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그 음만 세게 연주하라’고 하는 ‘액센트’로 불리는 자동차는 실제로도 이름에 걸맞게 다른 차들보다 더 ‘튀는’ 색상을 채용했다.

    소나타와 캐논

    오래전에 개발된 차종에만 음악용어가 붙은 게 아니다. ‘강하게 연주하라’는 뜻의 ‘포르테’는 최근 나온 자동차 이름으로도 등장했다. 포르테는 특히 그 뜻이 지니는 강렬함 때문에 많은 제품에 사용되어왔다. ‘아진탈 포르테’라는 소화제를 기억할 것이다. 그 제품의 광고에는 지휘자 금난새가 출연하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 흐르는 가운데 등장하는 “포르테는 강하다는 뜻입니다”라는 마지막 코멘트는 참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돌림노래, 즉 ‘캐논’은 파헬벨이 작곡한 ‘캐논 변주곡’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유명한 캐논은 카메라다. 철자도 똑같이 캐논(Canon)인데, 창업주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일본 회사인 캐논은 창업주의 이름이 한자로 관음(觀音), 즉 관음보살의 관음이다. 관음에서 콰논으로, 다시 콰닌으로 바뀌고, 결국 더 읽기 편한 캐논으로 결정된 것이다.

    음악에서는 몇 마디 뒤에서 똑같은 멜로디를 부르는 돌림노래를 ‘캐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푸가’라는 작곡기법이 완성되었는데, 쉽게 말하면 여러 돌림노래를 합쳐놓은 것이다. ‘Fuga’는 ‘도망치다’라는 뜻인데 영화 ‘도망자(Fugitive)’의 제목도 이와 같은 어원의 말이다. 하나의 선율이 흐르면 비슷한 멜로디가 뒤에서 좇아가기 때문에 ‘도망가다’라는 뜻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돌림노래는 훨씬 복잡해서, 그냥 뒤에서 따라오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멜로디는 몇 음 위에서 좇아가기도 하고, 또는 몇 음 밑에서 좇아간다. 심지어 같은 멜로디를 거꾸로 부르면서 따라가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그래도 음악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기법이기 때문에 바로크시대 선생님들은 이런 것으로 시험문제를 냈다. 자신이 하나의 멜로디를 써주고 학생들에게 각자 다른 방식의 푸가를 적어오게 하는 것이다. 악보 위에 어떻게 써오라고 지시한 그 문장을 원래 캐논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이 말의 뜻이 변해서 그냥 단순하게 따라오는 푸가, 즉 돌림노래를 캐논이라고 부른다.

    신혼부부들은 아마 유명한 이탈리아제 유모차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라스칼라’라는 유모차의 이름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오페라극장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 회사가 만든 다른 유모차의 이름을 보면 증명이 된다. ‘베르디’나 ‘푸치니’가 그것이다. 그들은 스칼라 극장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다. 베르디의 수많은 오페라가 그 극장무대에서 막이 올랐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푸치니의 유명한 오페라 ‘나비부인’도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는데 이 공연은 실패했다. 너무 크게 실패했기 때문에 푸치니는 다시는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의 고집을 아무도 꺾지 못했는데, 그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의 스칼라 상연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을 때 그가 사망함으로써 결국 그의 결심은 지켜졌다.

    요즘 어떤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인터넷 검색창에 그 이름을 쳐보는 것이다. 문서가 많이 검색되는 만큼 유명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내 이름을 검색창에 쳐보는 것이 내 취미가 되었다. 많이 나올 때는 역시 흐뭇하다.

    클래식 음악과 이름

    유명한 이탈리아제 유모차 ‘라스칼라’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극장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의 ‘비발디’

    그러다가 심심해서 작곡가 비발디의 이름을 쳐봤다. 너무나 유명한 이 작곡가, 당연히 맨 처음으로 검색될 줄 알았는데 결과는? ‘비발디 파크’가 먼저 검색된다. 갑자기 수영장 사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비발디라는 이름을 붙인 상호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우리 집 근처에는 ‘비발디 부킹 노래방’도 있다. 음, 왜 하필이면 비발디일까? 사람들이 놀러오는 곳에 유난히 비발디라는 이름이 많이 붙어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음악은 ‘사계’. 그렇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모두 놀러오라는 뜻이다. 너무 개인적인 생각일까?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을까?

    컴퓨터 소프트웨어에도 음악용어는 많이 사용된다. 당연히 음악을 위한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음악용어이고, 또 다른 분야의 것에도 적용되고 있다. 일단 음악 소프트웨어를 보자. 수많은 대중음악 작곡가가 미디(MIDI)작업을 하는 ‘케이크워크’는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의 피아노곡 ‘골리웍의 케이크워크’에서 따온 말이다. 좀 우스꽝스럽게 생긴 아이를 ‘골리웍’이라 불렀고, 그런 아이가 학교에서 상으로 케이크를 받아 우쭐거리며 걸어가는 걸음걸이를 ‘케이크워크’라고 했다. 아주 짧은 피아노곡으로 ‘어린이의 세계’라는 작품집에 들어있는 재미있는 소품이다.

    ‘피날레’는 코다뮤직에서 만든 악보 사보 프로그램이다. 음악용어로는 모든 음악을 끝내는 마지막 악장을 말하는데, 이를 만든 회사 이름인 코다도 역시 음악용어다. 코다는 한 악장이 끝날 때 마무리를 하는 부분으로 피날레라는 용어와 형제뻘이다.

    그밖에도 경쟁사의 소프트웨어인 ‘앙코르’도 두말할 나위 없이 음악회장에서 흔히 듣는 단어이며, 또 다른 제품인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국민적 작곡가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는 ‘핀란디아’라는 음악을 만들어서 국가의 영웅이 된 거장 작곡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는 핀란드가 아닌 영국회사다.

    음악 소프트웨어가 아닌 경우에도 이런 시도는 종종 있다. 오래전 매킨토시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중에 코플랜드(Copland)라는 소프트웨어도 있었다. 윈도 같은 시스템, 즉 매킨토시의 시스템(Mac OS)의 어느 버전 이름이다. 코플랜드라는 작곡가를 알고 있었던 나는 미국에서 워낙 흔한 이름이라 많이 사용되나보다 생각했는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이 시스템의 테마 디자인을 바꾸어주는 프로그램 이름이 아론(Aaron)이었던 것이다. A를 두개 사용하는 ‘Aaron’이다. 아론 코플랜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는 유명한 작곡가다.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레’, 발레 서부극 ‘빌리 더 키드’ ‘엘살롱 멕시코’ 등으로 수많은 현대 음악가와 영화음악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듀오’와 ‘듀엣’

    아파트 이름에도 음악용어는 자주 사용된다. 더 나은 삶과 문화생활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여유와 풍요’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더 샵(#)’은 음정의 반올림이라는 기호다. 우리나라 전화기에 있는 ‘우물 정(井)’자와 같다. 삶의 질이 한층 더 올라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칸타빌’은 ‘노래하듯이’라는 뜻의 ‘칸타빌레’와 마을 ‘빌리지’의 약어인 ‘빌’이 합쳐진 것이다. ‘칸타빌레’는 아파트 외에 다른 분야에도 많이 쓰인다.

    ‘마에스트로’라는 양복의 이름을 보자. ‘마에스트로’는 예술의 거장을 뜻하는 말이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방송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 ‘강마에’도 여기서 따온 이름이다. 음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마에스트로’와 ‘비르투오소’를 구분해 사용한다. 전자는 음악의 모든 지식을 갖춘 거장, 후자는 연주를 완벽하게 하는 기교가를 말한다.

    ‘돌체’라는 시계는 ‘아름답게 연주하라’는 뜻의 음악용어 돌체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가 보는 악보에 ‘dolce’는 자주 등장한다.

    어떤 결혼정보업체는 두 명이 함께 연주한다는 뜻의 ‘듀오’라는 단어를 상호로 쓰고 있다. 흔히 사용되는 ‘듀엣’은 두 명이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고, 악기를 연주할 때는 ‘듀오’가 맞다. 세 명이 연주한다는 뜻의 ‘트리오’는 이미 우리 어머니 세대부터 주방세제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오디오 역시 클래식음악에 관련된 이름들을 많이 사용해왔다. 왜냐하면 가장 고음질을 요구하는 소비자는 클래식 애호가이기 때문에 이미지를 그쪽에 맞춘 것이다. 오디오 ‘에로이카’는 베토벤 교향곡 3번의 제목이다. ‘영웅’이라는 뜻의 이 제목은 원래 ‘나폴레옹 교향곡’이었다. 자신이 존경해온 영웅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하여 그런 제목을 붙였지만, 나중에 그에게 실망해 그냥 ‘영웅’이라고 고쳐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도 있다. 처음에 ‘나폴레옹’이라는 제목을 붙여놓았는데, 어떤 돈 많은 귀족이 이 곡을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해서 제목을 바꾸었다는 설이다. 나는 후자를 믿는다. 그게 더 인간적이니까. 나 같았으면 그 귀족의 이름을 붙였을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생산된 오디오 ‘쾨헬’은 작곡가나 작품의 이름은 아니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품을 정리한 음악학자의 이름이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작품번호에는 앞에 ‘K. ~번’처럼 그의 이니셜이 붙어있다. 우리는 이것을 쾨헬넘버라고 부른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가. ‘커피 칸타타’나 ‘브라보 콘’ 등 먹을거리에도 음악회장에서 들을 수 있는 이름이 많다.

    하이든의 장난

    클래식 곡의 이름이 붙게 된 경위는 매우 다양하다. 이번엔 그런 작품들을 한번 살펴보자.

    교향곡의 아버지이자 현악사중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의 작품엔 재미있는 제목이 아주 많다. 하이든의 ‘태양 사중주들’이라는 곡을 상상해보자. 제목처럼 밝고, 뜨겁고, 열정적이고… 결코 그렇지 않다. 처음 출판될 당시 악보 표지에 태양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불릴 뿐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책 중에 ‘Perl’이라는 책이 있는데 표지에 있는 낙타그림 때문에 ‘낙타 책’이라고 불리는 걸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농담’이라는 현악사중주곡도 있다. 왜 ‘농담’이라는 제목이 붙었는지는, 문헌에서 찾아보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그러나 마지막 악장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곡이 끝난 줄 알고 있으면 잠시 후에 또 멜로디가 나온다. 이번엔 진짜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소리를 낸다. 하이든은 이러한 장난을 무려 세 번이나 친다. 콰르텟엑스는 이 부분을 이용해서 재미있는 쇼를 한 적이 있다. 곡이 끝난 것처럼 일어나다가 박수가 나오면 다시 앉아서 연주했고, 이내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 곡의 제목을 모르고 본 사람들이 나중에 팸플릿에 적혀있는 ‘농담’이라는 제목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클래식 음악과 이름

    강원도 홍천시에 있는 비발디파크는 작곡가 비발디의 이름을 빌린 것이다.

    다음 제목 ‘면도칼(Razor)’을 보라. 세상에! 음악에 ‘면도칼’이라는 제목이 뭐란 말인가? 곡이 얼마나 날카롭기에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 사람들은 이 곡을 들으면서 특별히 날카로운 부분을 찾으려고 집중한다. 그러나 이 제목의 유래에 대해선 이런 얘기가 전한다. 하이든이 면도를 하면서 날이 잘 들지 않아 불평했는데, 때마침 찾아온 출판업자가 좋은 영국제 면도칼을 선물로 주자 그에게 이 곡을 감사의 선물로 헌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일화가 거짓말이라고 밝혀냈다. 그래도 우리에겐 영원히 ‘면도칼’일 것이다. 이처럼 기억하기 쉽고 개성 있는 제목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이든은 영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귀족들, 특히 귀부인들은 사교를 위해 공연장을 찾았고 음악은 듣지 않고 앞줄에 앉아서 졸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 작곡한 곡이 ‘놀람 교향곡’이다. 유명한 2악장은 정말 단순한 멜로디로 시작한다. 도도미미솔솔미… 동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실제로 우리나라 동요 ‘달’과 멜로디가 같다) 그러나 이러한 으뜸화음1의 뒤를 잇는 것은 ‘쾅!’하고 등장하는 요란한 굉음이다. 이 곡을 들은 귀부인들은 자신들을 깨우기 위해 만든 곡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어느 공연장에서나 분위기가 이랬던 것은 아니다. 사실 히트 곡을 많이 가진 하이든은 이미 대스타였고 그가 가는 곳마다 극성스러운 팬들이 그의 얼굴을 보려고 몰려든 적이 많았다. 한번은 하이든의 모습을 가까이 보기 위해서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쪽으로 몰려들었는데, 바로 그때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샹들리에가 떨어졌다. 객석에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날 연주된 새로운 교향곡의 제목은 ‘기적 교향곡’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물론 음악 내용은 그런 제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용과 상관없는 제목들

    이처럼 클래식 음악의 제목은 작곡가가 아니라 훗날 연주자, 학자, 혹은 관객에 의해 붙여진 게 많다. 유명한 ‘운명 교향곡’도 베토벤 자신이 붙인 제목이 아니며, 그가 서주 부분을 ‘운명의 노크소리’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운명 교향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틱한 제목 덕분에 ‘운명’은 그의 9개 교향곡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게 됐다.

    이처럼 시작 부분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붙여진 제목은 아주 많다. 모차르트의 현악사중주 ‘사냥’은 단지 앞의 두 마디가 사냥에 사용되는 뿔피리 소리를 닮은 멜로디인 까닭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하이든의 ‘일출’도 맨 앞줄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곡들의 나머지 부분은 제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떤 곡은 헌정받는 사람 이름을 사용한다.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라주모프스키’, 모차르트의 ‘호프마이스터’… 정말 수없이 많다. 또 어떤 곡은 차용한 멜로디의 원곡의 제목을 따온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나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는 멜로디의 원곡인 가곡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콰르텟엑스(필자가 리더로 있는 현악사중주단)는 클래식 음악에 제목을 붙여왔다. 앞선 사람들이 붙여왔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다. 베토벤의 곡에 ‘팝콘’ ‘고양이’ ‘경마’, 하이든의 곡에 ‘아베마리아’ ‘지하철’ ‘실타래’ ‘오아시스’, 모차르트의 작품에 ‘꿀벌’ ‘비둘기’ ‘잠자는 별들’….

    클래식 음악과 이름
    조윤범

    1975년 서울 출생

    선화예고, 연세대학교 기악과 졸업

    서울 필하모닉 단원 및 다수 오케스트라 객원 악장 역임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겸 제1바이올린 주자

    예당아트TV ‘콰르텟엑스와 함께하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진행

    ‘조윤범의 파워클래식’(2008)


    이렇게 우리가 별명을 붙인 작품이 이미 200곡을 넘어섰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너희가 도대체 뭐라고 그 위대하고 순수한 클래식 음악에 제목을 붙이는가?”라고. 우리도 알고 있다. 작곡가가 원하지도 않은 제목을 붙였을 때 오해할 만한 이미지의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제목이 없기에 유명해지지 못한 곡이 무척 많다. 우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중에서 제목이 있는 작품들만 먼저 기억한다. ‘운명’ ‘전원’ ‘영웅’ ‘합창’…. 그렇기에 우리는 이 곡들의 작품성에 절대 뒤지지 않는 4번, 7번, 8번을 나중에 듣거나 지나쳐버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제목을 붙인다. 클래식 음악용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다른 제품들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들에 주목하기 쉽고, 인상적이고, 또 합당한 제목들을 연구한다. 사람들은 그 제목 때문에 그 작품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이 제목이 한국의 어떤 연주자들에 의해 붙여진 별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이름은 그것을 알리고 소통하기 위해 첫째로 필요한 도구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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