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진영
급작스러운 경적이 요란하다
경적만큼 요란하게 안테나를 꽂은 무슨 구조대 차량이
다른 차 한 대를 급정거시킨다
거기서 왜 끼어들어! 죽고 싶어 환장했어?
……
야, 이년아! 운전이나 똑바로 해!
……
광화문 네거리
차를 세우고 뛰쳐나와 고함지르는 사내가 참 장하게 생겼다
내 또래 여자는 운전석에 웅크리고
사내의 서슬에도 더위잡으며 뭐라 한마디 했던가
…… 들리지 않았으나
틀림없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겠지
그것도 장해 보이는
바람이 쌀랑, 귓가를 스치자면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가을 저녁.
고운기
●1961년 전남 보성 출생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섬강 그늘’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등
●‘시힘’ 동인,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