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당 GRDP 4만달러 ‘영남의 강남’
-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글로벌 경쟁력
- 자전거가 대우받는 대한민국 환경수도
- 시민 95% “창원에 사는 게 행복하다”
창원의 중심 ‘창원광장’에 서면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13.5㎞의 직선로 ‘창원대로’를 사이에 두고 남쪽은 산업단지, 북쪽은 주거단지다. 창원시청 둘레 중앙업무지역에는 경남도내 공공기관 90개가 모여 있고 여기부터 반경 3km 안에는 종합스포츠파크, 문화예술회관, 경륜장 등이 터를 잡았다. 규모나 조경 면에서 뉴욕 센트럴파크 못지않은 각양각색의 공원은 시 전역에 펼쳐져 있다. 그 사이로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지난다. 창원은 1974년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 도시 어디에서나 ‘계획’에 바탕을 둔 원칙과 질서를 만날 수 있다.
“창원에 처음 온 분들은 대부분 깜짝 놀라요. 도로 하나, 가로수 한 그루도 예사로 놓인 게 없으니까요. 최근엔 이런 하드웨어뿐 아니라 환경·복지·교육·문화 등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도 다른 도시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많이 받지요. 그래서 창원을 명실상부한 ‘명품 도시’라고 부르는 이가 많습니다.”
박완수(54) 시장의 목소리에선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의 말대로 창원은 뛰어난 하드웨어에 ‘자전거특별시’로 대표되는 환경 정책 등 ‘최신’ 소프트웨어가 더해지면서 국내외의 이목을 끄는 도시다. 지난 7월 환경부와 지식경제부가 공동주관한 ‘2009 국가환경경영대상’에서 환경 정책이 가장 우수한 지방자치단체로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국가지역경쟁력연구원으로부터 수도권을 제외한 지자체 가운데 도시경쟁력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인터넷 통신사 시티 메이어는 창원의 발전상을 높이 평가해 2008년 박 시장을 ‘올해의 세계 50대 시장(World Mayor 2008)’으로 뽑기도 했다. 인구 51만명의 ‘중소도시’ 창원이 매년 정부와 중앙기관, 해외기구 등에서 받는 상은 수십 개에 달한다.
자전거가 행복한 거리
한때 ‘공업도시’로만 알려져 있던 창원을 이처럼 ‘명품도시’로 도약시킨 일등공신은 자전거. 창원은 2007년 범시민자전거타기운동을 시작하고, 이듬해 전국 최초로 ‘자전거 정책과’를 만들면서 ‘녹색 교통’의 모범으로 관심을 모았다.
“창원은 공장이 많은데다 분지 지형이어서 시민들이 늘 대기오염 문제를 걱정하곤 했습니다. 또 인구 대비 자동차 등록 대수가 다른 도시보다 많아서 출퇴근 시간이면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주차난도 심각했지요.”
마침 창원의 도로 여건이 자전거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도시 개발 당시 4차로 이상 도로 양측에 분리화단을 설치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놓은 덕분이다. 창원시내의 자전거 도로는 68개 노선 214.3㎞에 달하며, 이 가운데 자전거만 다니는 전용도로도 15개 노선 96.6㎞로 전국에서 가장 길다. 시내 평균 경사가 3%밖에 안 될 만큼 평지가 많아 누구나 어려움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도 창원의 강점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자전거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레저 스포츠쯤으로 여겨졌고 도난과 분실, 사고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제가 먼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전거가 편리한 이동 수단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2007년 2월부터 만 2년 동안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지요.”
박 시장이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각종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는 국내 최초의 ‘자출족(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 시장으로 유명세를 탔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때부터 그는 직접 자전거를 타면서 착안한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정책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공영자전거 ‘누비자’다. 시내 곳곳에 자전거터미널을 만들고 자전거를 비치해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이 시스템은 창원을 국내외에‘자전거특별시’로 알리는 데 큰 구실을 했다.
만 15세 이상 자전거 운전이 가능한 창원시민은 ‘누비자’ 회원으로 가입하고 연간 2만원만 내면 365일, 24시간 언제든지 공영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다. 교통카드에 기능을 추가한 뒤 보관대 단말기에 대면 저절로 자전거가 빠진다. 반납 때는 보관대에 자전거를 꽂기만 하면 된다. 지난해 10월 첫선을 보인 누비자는 불과 10개월 만인 8월말 현재 3만3172명이 회원으로 가입했을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시내 100여 곳의 터미널을 기반으로 1310대가 운행 중이다.
창원에 앞서 비슷한 형식의 공영자전거 ‘벨리브’를 도입한 프랑스 파리시는 시행 초기 자전거 분실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박 시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자전거에 위치 추적이 가능한 GPS를 달았다.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긴 했지만, 그 덕에 지금껏 누비자는 단 한 대도 사라지지 않았다.
글로벌 에코 시티
2008년 현재 창원의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은 전국 평균 1.2%보다 월등히 높은 7.3%. 박 시장은 “2012년까지 300개 터미널에 누비자 5000대를 보급하면 누구나 편리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명실상부한 ‘자전거특별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창원의 앞선 자전거 정책은 박 시장이 2006년 11월 선포한 ‘대한민국 환경수도’ 비전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당시 박 시장은 “환경에 관한 한 가장 선진적이고 모범적인 도시를 만들겠다”며 ‘물과 바람이 순환하는 도시,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도시, 에너지와 자원이 순환하는 도시’를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지자체 가운데는 최초로 기업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협약을 맺기도 했다. 관내 기업 가운데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10개사를 선별해 2011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7년보다 5~15% 감축하도록 한 것. 이외에도 생태하천 조성, 에너지 절약, 신재생에너지 이용 확대, 에코타운 조성, 온실가스 흡수원 확충, 소각폐열에너지 생산, 쓰레기 감량 촉진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 계획에 의해 조성된 창원국가산업단지.
박 시장은 “앞으로도 매년 500가구씩 신청을 받아 2011년까지 2000가구의 주택 구조를 변경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원시의 목표는 2007년 486만5000t에 달하던 시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5년까지 35% 줄이는 것. 이를 위해 기업과 상가, 주택 등에서 전기를 절약하면 비율에 따라 주차장과 극장 할인티켓 등을 제공하는 ‘탄소포인트제’, 친환경 건축과 에너지 절약형 건물로 인증받으면 용적률을 높여주는 ‘용적률 인센티브제’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북면 감계지구 108만9662㎡ 부지에 조성 중인 친환경 생태도시 ‘에코타운’도 눈길을 끈다. 6911가구 2만2115명이 살 수 있도록 설계된 이 마을의 특징은 보행자에게는 편하고 차에는 불편한 곳이라는 점. 통학로 등 일부 횡단보도는 차도 바닥보다 높여 인도와 높이를 맞춘다. 10m 도로 양쪽으로 2m짜리 보행로를 설치하고, 도심 가운데를 흐르는 3㎞ 하천 둔치에도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기로 했다. 곳곳에 생태웅덩이를 만들어 수생식물도 심는다. 에코타운 내 녹지 비율은 50%에 달한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추진력으로 창원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박완수 시장.
환경 보호와 기후변화 예방을 위한 창원시의 이런 노력은 국제 사회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에서 열린 ‘제4차 에너지안보와 기후변화에 관한 주요국 회의’에서 박 시장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 환경관련 장·차관과 환경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창원시의 기후변화 정책을 소개했다. 6월 중순 캐나다 에드먼턴시에서 열린 ‘2009 지방자치단체국제환경협의회(ICLEI)’ 세계총회에 참석해 ‘누비자 시스템’을 소개하고 ‘국제공영자전거도시연합’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발표를 마치자마자 ICLEI 사무총장이 기구 설립에 동의해 함께 실무 절차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창원시는 이미 세계지방자치단체연합(UCLG), 국제교육도시연합(IAEG) 등 11개 국제기구에 가입해 활동하는 국제도시다. 지난해 환경올림픽으로 불리는 ‘람사르 총회’를 유치하고 ‘시티넷(CITY-NET)’ 세계집행위원회를 여는 등 국제행사 유치 이력도 화려하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창원의 글로벌 도시 전략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방적으로 행동하는 실천방법의 구현’입니다. 세계 각국은 이미 국가 단위가 아닌 도시 단위로 경쟁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지자체도 이제는 세계를 내다보고, 각국의 선진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관광객 증대, 시장 개척, 컨벤션 유치 등의 부대 효과가 따라온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컨벤션에 참가한 외국인 1명의 경제적 가치는 21인치 컬러TV 14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창원도 ‘람사르총회’를 통해 세계에 창원을 홍보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지요. 당시 160개국 2000여 명의 정부 인사와 NGO 관계자 등이 창원에 모여 ‘창원선언’을 채택했거든요. 이를 통해 ‘창원’이라는 이름과 ‘환경수도’를 향해 노력하는 우리 시의 정책을 국제적으로 홍보할 수 있었습니다.”
박 시장은 창원이 이처럼 ‘살기 좋은 도시’가 된 건 창원국가산업단지(이하 창원공단) 덕분이라고 말한다. 1974년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조성된 창원공단은 연간 200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지역 경제의 젖줄. 창원 시민의 약 60%가 이 공단을 기반으로 생계를 꾸린다. 박 시장은 “창원의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가 4만달러에 달하는 것은 창원공단이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풍요한 기업 천국
“창원시의 절반은 주거지역, 나머지 절반은 공단입니다. 수출주도형 공업도시로 계획된 곳인 만큼, 공단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지요. 1980년대 후반 반도체, VTR 등이 호황을 누릴 때는 창원시도 크게 성장했어요.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고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리면서 시의 활력이 떨어졌지요.”
2004년 시장에 취임하면서 박 시장은 지역 내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고 했다. 투자가 늘고 고용이 창출돼야 도시가 발전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창원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경영자와 근로자의 땀과 노력 덕분이다. 창원을 재도약시킬 열쇠 역시 이들이 쥐고 있다”며 ‘기업사랑운동’을 제안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추진력으로 창원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박완수 시장.
박 시장은 ‘기업인 기 살리기, 기업인 민원 해결, 창원 산업의 세대 교체’ 등을 위해 시청 내에 ‘기업사랑과’를 만들고, 직접 공단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는 등 두 팔 걷고 나섰다. 노력의 결실은 금세 나타났다. 창원공단 입주기업이 2004년 1606개사에서 지난해 2121개사로 32%나 증가한 것. 1995년부터 고용 인원도 같은 기간 7만4399명에서 8만2717명으로 늘었다. 2004년까지 10년간 고용증가율이 -0.5%였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우리 시는 최근 캐나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온 창원시 소속 선수들을 위해 카퍼레이드를 열었습니다. 이런 게 우리가 생각하는 ‘기업사랑’이에요. CEO든 근로자든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기술을 존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겁니다. 창원공단이 최근 크게 발전하는 이유는 이런 창원시의 진심과 앞선 인프라, 다양한 행정지원 등을 기업이 신뢰하기 때문일 거예요.”
박 시장은 인터뷰를 마치면 창원컨벤션센터에 마련된 ‘기업 명예의 전당’에 들러보라고 권했다. 창원시가 기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현장이라는 것이다. ‘기업은 창원의 미래입니다’라고 적힌 문을 지나 ‘전당’ 안으로 들어서자 ‘올해의 최고 경영인’이라는 팻말 아래 경남스틸 최충경 사장의 얼굴을 새긴 동판이, ‘올해의 최고 근로인’ 팻말 아래는 삼성테크원 심상흥 과장의 동판이 걸려 있는게 보였다. 벽에 붙은 모니터에서는 두 사람 각각의 업적을 담은 영상물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박 시장은 “공정하게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매년 분야별 ‘최고’ 인물을 선정한다. 이들에게 시 차원의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창원시는 앞선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쏟고 있다. 2007년 경남테크노파크를 준공하고, 올 초 카이스트 창원 분원을 유치했으며 우수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스몰베스트밸리(SBV·small best valley)도 조성해 창원에 세계적인 기계산업 밸리를 구축할 계획이다.
창원 스탠더드
박 시장이 밝히는 창원의 목표는 ‘세계 일류가 되는 것’. 국내외 다른 도시와 비교하기보다는 창원만의 생각과 아이디어로 ‘최고’를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그는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한 차원 높은 ‘창원 스탠더드’를 실현 중이다.
2006년 창원은 전국 최초로 시 예산의 20% 이상을 복지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창원 시민복지 조례’를 제정했다. 2004년 시 재정에서 복지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23%로 늘었다. 이 돈으로 여성과 장애인의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한 복지인프라를 만들고 있다. 박 시장은 “2010년에는 복지 부문에 예산의 26.5%를 투입하려 한다. 이는 OECD에서도 상위 10개국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창원시의 1인당 공원 면적 역시 32.3㎡로,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해외 선진국 평균 19.8㎡를 훌쩍 뛰어넘는다. ‘창원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용지공원(32만5000㎡) 등 198개의 공원이 도심에 쾌적함을 더한다. 시내 18개 동에 각각 한 개씩 모두 18개의 스포츠파크를 세운 것도 전국에서 오직 창원뿐이다. 창원시 홈페이지에 ‘시장에게 바란다’ 코너를 만들고 지난 2년간 6713건의 민원을 해결했을 정도로 시민과의 소통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창원시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시민의 95%는 “창원에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박 시장은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 창원시민임이 자랑스럽도록 느끼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앞으로도 ‘시민 만족 행정’을 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선 ‘명품 도시’ 창원의 미래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