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4대강 살리기 사업 예산 놓고 MB 전방위 공격 태세
- 여권 수뇌부 관철 의지 불구, 여당 의원들 방어벽 약해
- 내년 지방선거 맞물려 한 치 양보 없는 격돌 예고
- 예산정국 때마다 지역구 의원들 예산 확보 위해 총성 없는 전쟁
매년 가을로 접어들면 정기국회에서는 ‘예산전쟁’이 치러진다. 회계연도 시작 90일 전(10월2일)까지 정부가 편성한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개전(開戰)되어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그러다 회계연도 시작 30일 전(12월2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면 종전(終戰)된다. 물론 지금까지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인 12월2일은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한 해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릴지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는 항상 컸다.
올해도 정부는 9월28일 국무회의를 통해 내년도 예산 규모를 291조8000억원으로 확정하고 10월1일 국회에 정부안을 제출했다. 국회는 11월2일 정부로부터 예산안 시정연설을 들은 뒤 11월12일부터 12월1일까지 각 상임위와 예결특위에서 2010년도 예산 및 기금안을 심사하고 12월2일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일정을 짰다.
하지만 국회 주변에서는 올해도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는 물론, 각 상임위와 예결특위의 심사조차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많다. 무엇보다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띨 내년 6월 지방선거 정국이 조성되는 만큼 일찌감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치논리가 예산안 심사장 곳곳을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예산안 심사 내내 여야가 크게 충돌할 화약고는 역시 ‘4대강 살리기’ 예산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15일 한강·금강·낙동강·영산강을 정비하는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야당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위한 전 단계”라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29일 2007년 대선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의 임기 내 추진 포기를 선언하자 공세의 포문을 예산 문제로 틀었다. 이 대통령이 대운하 건설을 포기하겠다고 하면서도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계속 추진할 뜻을 밝혔고, 정부가 관련 예산 편성 작업에 들어간 까닭이다.
서민예산의 블랙홀
실제로 정부는 2010년도 정부 예산안에 4대강 살리기 예산을 6조7000억원 편성했다. 재정 투입비 3조5000억원과 한국수자원공사 사업비 3조2000억원이다. 이후 야당은 다각도로 4대강 살리기 예산의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다. 본격적인 예산안 심사에 앞서 열린 각 상임위 회의와 국정감사, 대변인단의 성명 및 논평을 통해 집중포화를 퍼부으며 예산삭감 투쟁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4대강 예산이 서민예산의 블랙홀”이라고 주장하며 4대강 사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의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4대강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바람에 각 지역의 일반 SOC(사회간접자본) 예산과 복지, 교육 예산이 대폭 축소됐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는 도로건설 예산이 3조원 줄어들고, 교육 예산은 3조5000억원, 산업·중소기업·에너지 관련 예산은 7조2000억원, 기초생활보장 등 취약계층 관련 예산도 4300억원이 준다는 자체 자료를 내놓았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조차 야당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수도권 출신을 비롯해 주로 4대강 사업으로 인한 경기부양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하는 지역에 선거구를 둔 의원들이다. 실제로 4대강 예산 가운데 60%가량이 낙동강에 투입되는 만큼 영남권 의원들의 반발은 거의 없다. 김성조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영남 출신 당 지도부는 오히려 ‘4대강 예산 사수(死守)’의 선봉 역을 자임하며 소속 의원들에게 입조심을 당부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 시비가 일자 이명박 대통령도 진화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9월9일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와 상견례를 겸한 첫 조찬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4대강 살리기 전체 예산이 16조원인데 22조원으로 잘못 알려져 있고, 그 가운데 8조원은 수자원공사가 맡기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4대강 살리기 예산 때문에 내년도 SOC 예산이 줄어든다는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며 “4대강 살리기는 유엔환경계획(UNEP) 성장보고서에서 기후변화와 친환경 녹색사업으로 선정된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6조원 차이의 비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민주당은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총 예산을 22조원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고, 이 대통령은 16조원이라고 했을까. 이는 집계상의 인식 차이 때문이다. 심명필 국토해양부 4대강추진본부장의 설명이다.
“4대강 사업은 본사업과 연계사업으로 나눠지고, 연계사업은 다시 직접 연계사업과 간접 연계사업으로 분류된다. 본 사업에는 16조9000억원, 직접 연계사업에는 5조3000억원이 들어간다. 또 직접 연계 사업비 5조3000억원은 환경부의 수질개선 예산 3조4000억원과 섬진강을 비롯한 다른 사업들에 필요한 1조9000억원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환경부의 3조4000억원은 환경부 수질개선 사업에 투입되는 금액이다. 4대강 살리기가 아니더라도 쓰이도록 이미 짜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이 예산을 4대강 예산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 대통령과 정부는 본 사업비만 4대강 예산으로 보는 반면, 민주당은 직접 연계사업비까지 합산해서 공세를 펼치는 셈이다(간접 연계사업비는 4대강 유역 산림 정비에 소요되는 돈이다).
어쨌든 ‘사업비 22조원’을 주장하는 민주당의 4대강 사업 때리기는 사생결단식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파상공세를 펼치면서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정책과 관련한 인물들을 대거 증인과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환경노동위·국토해양위·농림수산식품위 등 상임위 곳곳에서 4대강과 관련해 증인·참고인으로 채택된 전문가·교수·환경단체 관계자·정부 관계자만 20여 명에 달한다.
한나라당은 4대강 살리기 정책에 긍정적인 인물들을, 민주당에선 부정적인 사람들을 각각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다. 4대강 살리기와 관련해 증인·참고인을 신청한 이유도 다양했다. ‘4대강 사업 검증’에서부터 ‘국민검증단 활동’ ‘4대강 사업추진에 따른 세계유기농대회 무산위기에 대한 의견’ ‘4대강 사업의 위법성’ 등을 알아보겠다며 증인과 참고인으로 불렀다. 심 본부장도 당연히 포함됐다.
민주당은 ‘4대강 사업 국정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10월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4대강 사업은 당장 그만둬야 할 사업임이 드러나고 있다. 예산편성에 있어 ‘악의 축’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조사를 통해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으면 예산심사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2년이면 낙동강이 지나는 경남 김해시 생림면 일대는 조감도(사진)처럼 달라진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4대강 사업은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점만 가지고도 사업을 계속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11월부터 본격적인 예산심사에 들어가는데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놔둔 채 예산심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정조사특위를 구성해 문제점에 대한 명확한 정리와 의혹 해소가 전제됐을 때 예산심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원내대표는 11일 원내대표단-정책위-상임위 간사단 연석회의에서도 “국정감사 후 바로 국조특위를 구성, 4대강 문제에 대해 정리해야만 예산심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법에 정해진 기간 내에 예산 심의가 종결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악의 축’‘국가적 재앙’이란 표현까지 들먹이며 ‘전체 예산심사 보이콧’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4대강 사업 논쟁이 올해 예산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최대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여권의 입장은 어떨까. 민주당과 달리 한나라당 일선에서는 아직 4대강 사업 예산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인 응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최대 수혜자인 영남권 출신 의원들을 제외하곤 몸을 던져 전투에 나서기를 꺼리는 모습이다. 그만큼 민주당의 공세가 드센 탓도 있지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4대강 예산 때문에 자신의 선거구 현안사업이 밀렸다는 지적이 지역여론을 탈 경우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수 있는 까닭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보호막이 너무 얇다. 여론전에서 밀리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반면, 예산전쟁 컨트롤 타워인 여권 핵심부와 당 지도부의 4대강 예산 관철 의지는 뜨겁다. 마치 사업 첫해 예산 뒷받침을 통해 4대강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에 정권의 명운(命運)이 좌우될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대통령이 정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직접 4대강 예산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한나라당이 책임지고 4대강 예산을 처리하라”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청와대 회동 후 김성조 정책위의장은 당의 공식 회의석상에서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일부 당내 인사를 겨냥,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적, 상징적인 사업이고 사업의 성공 여부가 정권 재창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강을 잡는 발언을 했다. 9월16일 예결위 여당 측 간사로 임명된 김광림 의원은 “여당의 입장을 야당에 잘 설명해 4대강 살리기 사업 예산 처리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4대강 예산 지킴이를 자임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10월8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올 하반기에 가장 집중해야 할 국정과제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민생안정에 우선 많은 관심을 가지고 4대강 살리기와 녹색성장 등 미래대비 투자 등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한반도 대운하’의 전도사로 불렸던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10월5일 인천 아라뱃길(경인운하) 건설현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도 ‘4대강 사업 속도 내기 독려’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는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 이 문제를 꼬집자 “내가 물가에만 가면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관짓는 바람에 물 근처에도 못 간다”고 했지만 여전히 ‘물길 잇기’에 대한 의욕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의정활동 한 해 농사 예산안 심사
정운찬 국무총리의 4대강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정 총리는 9월21일 인사청문회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 “지난 50년 동안 산림녹화를 열심히 하지 않았느냐. 그 맥락에서 이제는 강도 좀 정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강을 정비하는 아이디어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과거엔 “4대강 사업은 토목건설을 중심으로 예전 방식을 답습한 정책”이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선 정 총리가 청와대 모 인사로부터 총리직 제의를 받았을 때 ‘4대강 사업 찬성’을 약속(?)했다는 소문마저 정가에 나돈다. 청와대 인사가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반드시 추진할 생각이다. 세종시도 축소하고 싶어한다”며 이 두 가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물었고, 정 총리가 이를 수락했다는 풍문이다.
결국 야당의 결사 저지 결의와 여권 수뇌부의 관철 의지가 충돌할 것이 뻔한 만큼 4대강 사업이 올가을 예산정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여야가 전쟁을 치러야 할 대목은 4대강 관련 예산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예산이 뜨거운 감자다. 여기다 4대강 부분을 제외한 SOC 예산과 보건·복지, 국방 예산 등도 쟁점으로 부상해 있다. 보건·복지 예산은 8% 이상 대폭 늘린 데 비해 SOC 예산은 소폭 증가에 그쳐 각 지역의 반발이 심하다. 여기에 하극상 논란을 일으켰던 국방 예산의 경우 전년 대비 3.8% 늘었지만 당초 국방부 안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 다만 이런 예산들은 여야 사이에 4대강 예산을 놓고 전체 예산안 심사 보이콧 논란이 일어날 경우 그냥 묻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4대강 예산을 빌미로 예산 심사를 외면하는 일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짧은 기간에 291조8000억원을 놓고 심사를 벌여야 하는 만큼 국정조사만을 요구하면서 전반적인 예산안 심사를 내팽개쳐서는 여론의 역풍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같은 이유로 민주당 개별 의원이 지도부의 정치투쟁에 반기를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의원에게 예산안 심사는 국정감사와 함께 한 해 농사 수확의 의미가 있다. 어찌 보면 지역구 출신 의원들은 1년 내내 예산 따오기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구 관련 예산 확보는 의정활동 최대의 업적이 되며, 매년 발간하는 의정보고서의 핵심 내용으로 들어간다.
새해 예산안 확정 절차
사실 의원들의 지역 예산 확보 로비는 정부의 예산안 편성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예산안 편성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한 해 동안의 나라 살림살이 규모와 사용처를 꼼꼼하게 따져 예산안을 확정하는 절차는 상당히 복잡하다. 이번에 편성된 정부안만 해도 이미 수차에 걸쳐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보탤 것은 보태고, 고칠 것은 고치면서 다듬어진 내용이다. 예산안 확정 절차는 크게 정부안 편성과 국회 심사 과정으로 나누어진다. 정부안의 경우 매년 초부터 각 지자체와 일선기관이 다음해에 필요한 예산을 해당부처에 신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당부처는 이를 선별 취합해 기획재정부로 넘긴다. 그러면 기획재정부가 총괄 조정해 국무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밟아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뒤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올해 그렇게 해서 확정된 정부안이 291조8000억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9월9일 청와대에서 정몽준 한나당 대표최고위원과 조찬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과정에서 지자체 등이 요청한 예산이 대폭 삭감되거나 항목이 아예 없어지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지자체가 각 부처에 올린 예산은 부처 입장에서도 많이 확보할수록 좋은 ‘다다익선’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그동안 시행돼오던 기획재정부(과거 기획예산처)의 ‘예산안 편성지침’을 한층 강화했기 때문에 부처 취합 단계에서 축소조정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에 마련된 2009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은 ‘경제 살리기’라는 이명박 정부의 재정운용 방향에 따라 짜였다. 당시 10대 재정운용 방향은 ①일자리 창출과 7% 성장 뒷받침 ②감세를 통한 시장 활력 제고 ③재정의 경기대응 기능 강화 ④미래 대비 투자 강화 ⑤창의·실용 중심의 인재육성 ⑥지속가능한 맞춤형 복지시스템 구축 ⑦절약과 재정제도 개선을 통한 효율화 추진 ⑧공기업 민영화와 국유재산 활용가치 제고 ⑨재정운용의 자구노력과 책임성 강화 ⑩국가채무 관리였다.
올해 4월에 마련돼 각 부처에 시달된 2010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은 ‘우리 경제의 정상궤도 진입과 위기 이후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지원을 적극 뒷받침하고, 경제위기 과정에서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 재원배분의 기본방향은 지역발전대책·녹색성장·신성장동력 등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재정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R&D 확대·서비스산업 선진화 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세출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해 모든 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정과제 위주로 투자우선순위를 재조정키로 했으며, 이에 따라 4대강 살리기와 30대 선도 프로젝트 등의 국책과제에 대한 투자소요는 차질 없이 지원되도록 했다.
경제관료 출신 의원의 후광효과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가 이런 지침에 따라 올린 예산에 대해 조정 작업에 들어갔고, 이 단계에서도 지자체와 의원들의 전방위 로비가 펼쳐졌다. 모든 시도가 해당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과 여려 차례 연석회의를 갖고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예산들을 꼽아 의원들에게 할당(?)했다.
이 경우 각 지방의 정치지형에 따라 시도지사가 당정협의를 갖는 파트너 정당이 다르다. 영남권은 한나라당, 호남권은 민주당, 충청권은 자유선진당과 각각 당정 협의를 벌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 지역의 소수 정당 소속이나 무소속 의원들이 협조요청을 하지 않는 시도지사와 갈등을 빚는 사례도 없지 않다.
기획재정부의 정부안 편성과정에서 힘을 발휘하는 의원은 역시 경제관료 출신이다. 정부 경제부처 근무시절 자신의 밑에서 과장이나 사무관을 지낸 공무원이 핵심부서의 국장급으로 있는 경우 알게 모르게 해당 지역의 예산에 신경을 쓰게 된다. 특히 옛 경제기획원→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일부 중진의원들의 경우 정부의 예산편성 때마다 의원실로 찾아오는 지방공무원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자체 예산담당자들도 독자적으로 뛴다. 주로 출향(出鄕) 공무원들의 명단을 파악해 수시로 찾아가 지원을 요청한다. ‘역량’ 있는 지자체장은 국회의원들을 제치고 직접 장·차관을 만나 지역현안이 정부안에 반영되도록 담판을 짓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예산반영에 성공한 뒤 같은 지역의 국회의원과 단체장이 서로 공을 차지하기 위해 얼굴을 붉히는 일도 다반사다. 한 가지 항목의 예산을 놓고 국회의원이 의정보고서에 ‘업적’으로 올리고, 단체장도 이에 질세라 시·도정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단체장의 사이가 극도로 틀어진 지역에서는 서로 상대방의 업적으로 평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아예 손을 놓거나 오히려 줄이 닿는 정부 관료에게 반대논리를 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의 공무원들이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찾아갈 때는 지역별로 정권에 따라 ‘대우’가 다르다. 영남권의 한 예산담당 공무원은 “과거 민주당 정권 시절에는 친분이 있는 중앙부처 공무원에게도 지역사정을 설명할 기회를 갖기조차 어려웠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중앙부처 출입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귀띔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9월9일 청와대에서 정몽준 한나당 대표최고위원과 조찬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부안이 마련되지만 이때까지는 그야말로 정부 편성안이다. 정부안이 국가 예산으로 최종 확정되려면 국회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상임위별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본심사를 거쳐 본회의 의결까지를 무사히 마쳐야 한다. 가을철 예산전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되는 셈이다.
예산전쟁의 최전방
의원들이 국회 예산전쟁에서 공을 세우기 위해서는 예결특위에 들어가는 것이 지름길이다. 예결특위는 전체 299명의 의원 가운데 50명 이내로 구성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는 전체 의석분포에 따라 한나라당 29명, 민주당 15명, 비교섭단체 6명으로 구성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개는 지역별로 안배한다. 국가 전체예산을 다루는 일 외에도 지역구 관련 예산을 챙기라는 묵시적인 배려가 작용한 결과다.
이 때문에 ‘지역이기주의’ 논란이 매년 되풀이된다. 예결특위 위원들이 나라 전체의 살림살이보다는 자기 지역에 필요한 예산만 따가려 한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 입장에서는 그런 비판이 오히려 선거구에서는 ‘훈장’이 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지역 예산을 따내기 위해 매달린다. 가령 전체 규모가 정해진 SOC 예산은 지역별로 보면 어차피 한쪽이 이득을 볼 경우 다른 쪽은 상대적인 손해를 입는 ‘제로 섬’인 만큼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예결특위 안에 구성되는 계수조정소위원회는 예산전쟁의 최전방이다. 계수조정소위는 예결특위 중에서도 막판에 세부 내역을 조정하는 활동을 한다. 통상적으로 예결특위 위원장과 여야 정당 간사를 포함해서 10여 명으로 구성된다. 계수조정소위의 위원들 역시 지역별로 할당되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소위 위원으로 선정되면 해당지역의 모든 예산을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되지만 예결특위 위원들은 소위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라 살림살이를 짜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조율에 나서는 묘미가 있는데다, 적어도 자신의 지역구 예산만큼은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메리트가 생기는 까닭이다. 매년 계수조정이 이뤄지고 나면 뒷말이 무성한데, 대부분 소위 위원들이 밀실타협을 통해 해당 지역 예산을 나눠먹기 했다는 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계수조정소위에는 막판에 정권 실세나 야당 실력자들의 청탁이 줄을 잇는다. 굳이 지역현안 사업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사업들이 반영되도록 수시로 소위 위원들에게 연락을 취해 확인하는 것이다. 실제로 문을 꼭꼭 닫아놓고 심사를 벌이는 계수조정소위 회의장에는 수시로 쪽지가 들어가고 위원들이 슬며시 밖으로 나와 어딘가로 전화를 하면서 열심히 메모를 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정부 예산안 편성과정은 물론이고, 국회의 예산안 심사에서도 정권이 탄생한 지역에 국고지원분이 많이 배정되는 것도 해마다 논란이 된다. 민주당(열린우리당) 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호남이 영원히 먹고살 대형 국책 프로젝트에 대못질을 하는 예산이 편성됐다”는 불만이 영남에서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예산편성이 이뤄진 지난해에는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겨냥해 ‘형님 예산’ 논란이 일었고, 올해도 벌써 비슷한 시비가 벌어질 조짐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