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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적응 현장을 가다④

케냐 유엔환경계획(UNEP) 본부

지구온난화 대응의 최전선에 선 ‘글로벌 사령부’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케냐 유엔환경계획(UNEP)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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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유엔환경계획(UNEP) 본부

나이로비의 유엔 복합건물 중 UNEP가 사용하고 있는 S동.

‘그린 뉴딜’의 가능성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UNEP 업무의 상당부분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책적 대응이다. 이러한 활동은 다시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기후변화 때문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기후나 주거환경 변화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이른바 적응(adaptation)이다. 늘어나는 가뭄과 홍수,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해 제3세계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일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에 정책적 권고안을 만들고 기술적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 그 요체다. UNEP는 적응 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와 가라앉고 있는 태평양 도서국가,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저지대(거대 삼각주)의 주민들을 지목한 바 있다. 변화하는 기후로 인해 달라지는 식생이나 전염병 분포, 농업생산성 변화에 각국이 준비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도 포함된다.

정책적 대응의 또 다른 축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기후변화 자체의 속도를 낮추고자 하는 저감(mitigation) 분야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의 사용을 전세계적으로 늘려가도록 하는 작업이 핵심을 이룬다. 탄소배출권 거래시장 활성화나 에너지 고효율 설비 권장, 대안적 교통시스템 구축 등 최근 수년간 세계 각국의 이슈가 된 환경친화적 인프라 구축사업이 모두 UNEP가 추진해온 저감정책을 통해 부상한 과제들이다.

특히 UNEP는 근래 들어 금융제도를 이용해 제3세계의 친환경 설비구축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에 힘을 쏟고 있다. 2003년부터 4년간 UNEP가 인도에서 진행한 솔라론(Solar loan)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 현지 대형 은행과의 협조하에 2만여 가구의 일반 가정에 태양에너지 설비 설치비를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소매금융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이 프로그램이 큰 성공을 거둠에 따라 UNEP는 유사한 프로그램을 튀니지, 모로코, 이집트 등으로 확대해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지난해 이후 UNEP는 이른바 ‘녹색 경제(Green Economy)’로 불리는 이러한 친환경 인프라 구축사업이 경제위기 탈출의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아힘 슈타이너 UNEP 사무총장은 최근 한 정책자료에서 “대공황 시기 미국의 뉴딜정책에 버금가는 ‘그린 뉴딜’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라는 측면을 강조해 민간기업과 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UNEP가 최근 한국 정부의 ‘녹색 경제’ 추진계획을 긍정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UNEP의 포인트와 한국의 정책방향이 맞아떨어진 셈. 조르바 팀장은 “한국이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다른 국가들에 전파하는 성공적인 롤모델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UNEP가 8월 대전에서 세계청소년환경회의를 개최하고 슈타이너 사무총장이 직접 방한하는 등 한국과의 접점이 늘어난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고 한국인 전문직원 이윤애씨는 평했다.

기후변화 대응의 주무조직인 만큼 UNEP의 운영방식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상당하다. 지난해부터 UNEP는 기후중립전략(climate neutral strategy)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할 담당관 ‘그린레이디(Green Lady)’를 임명했다. 우선 탄소배출량의 85%를 차지하는 교통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출장을 화상회의 등으로 대체하거나 비행기 대신 열차를,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며, 직원들의 출퇴근에 카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 등이다. 사무실의 저효율 전구를 교체하거나 재생용지를 활용하는 작업들도 함께 진행된다. UNEP 그린레이디 로바 닐슨씨의 설명이다.

“우선은 가능한 한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그럼에도 배출되는 양에 대해서는 상쇄할 수 있을 만큼의 나무심기 프로젝트 등에 자금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지금 당장은 UNEP가 중심이지만 나이로비 유엔 사무소는 물론 전세계 유엔기구로 확산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매뉴얼을 장차 민간기업이나 단체로 전파할 계획이고요.”

아프리카의 의미, 그리고 한계

언뜻 간단해 보이는 카풀도 대중교통 인프라가 매우 취약한 나이로비에서는 이야기가 사뭇 다르다. 우선 외국인은 일몰 후에 혼자 다니지 말라는 충고가 호텔 객실 안에 붙어있을 만큼 치안이 불안하다. 유엔 구역 출입사무소를 나서는 순간 변변한 건물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아프리카의 현실이 곧바로 펼쳐지는 것이다.

UNEP는 제3세계 국가에 본부를 설치한 몇 안 되는 유엔기구 가운데 하나다. 이 같은 결정에는 조직이 창설되던 1970년대 초반 아시아·아프리카 비동맹국가들의 발언권이 높았던 국제정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지만, 환경문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저개발지역의 복판에서 이슈에 직접 부딪히겠다는 의지도 포함돼 있었다.

최근 수년간 극심한 가뭄이 이어져 삶의 질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아프리카는 기후변화의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당하고 있는 국가들 가운데 하나다. 현재 추이가 이어질 경우 2020년까지 7500만에서 2억5000만명의 사람이 물 부족 문제로 고통 받게 되리라고 UNEP는 예측한 바 있다. 이 때문에 UNEP는 5대 공식과제 가운데 하나로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을 명기해놓았다. 조르바 팀장은 “뉴욕에서 환경문제를 ‘생각’하는 것과 아프리카에서 직접 맞닥뜨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변방’이라는 지리적 한계가 UNEP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직원은 “UNEP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주도해나가기에는 교통·통신의 불편 같은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2007년에는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UNEP를 보다 강력한 기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처럼 각국 정부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UNEO(United Nations Environment Organization) 형태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아이디어에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확산과 함께 기존의 유엔기구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는 선진국 정부들의 시각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제안을 UNEP 본부를 빼내가기 위한 시도로 판단한 케냐 정부가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나이로비에서 유엔기구가 차지하는 경제적·정치적 비중이 워낙 크고, UNEP는 나이로비 유엔 구역의 대주주에 해당한다. 나이로비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우연히 만난 한 케냐 예산기획부 관료는 “나이로비가 동아프리카 국제비즈니스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것도, 외국인 거주비율이 높은 것도 이들 유엔기구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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