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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④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집중분석]장마당의 힘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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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북한 평양시 락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시장의 내부.

교과서도 팔리는 장마당

오랫동안 독재권력하에서 살아온 북한 주민은 권력에 약하다. 그러나 사회주의 평등교육과 반(反)자본주의적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돈이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을 참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에서 돈이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간부나 장마당에서 치부를 한 사람이다. 간부 자식은 신분이 다르니 그렇거니 하지만 어제까지 같은 신분이던 집 자식이 장마당에서 돈 좀 벌어 자기보다 나은 삶을 살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의미다. 만약 그런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면 “나는 꼭 돈을 많이 벌어 너를 뛰어 넘을 것”이라는 각오가 굳어질 수밖에 없다.

부가 학생 간부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쓰는 모든 학용품도 잘사는 집 자식과 못사는 집 자식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과거 북한에 사회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때는 학용품, 책가방 등을 똑같은 것으로 골고루 나눠주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이런 공급제도는 완전히 붕괴됐다. 실례로 교복을 들 수 있다. 과거에는 학교에 갈 때 똑같은 교복과 책가방, 심지어 신발까지 같은 것을 신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 공급이 끊어졌기 때문에 교복도 학생이 스스로 만들어 입는다.

언뜻 보면 교복이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천의 재질이 다 다르다. 잘사는 집 자식은 고급천인 ‘사지천’으로 교복을 해 입지만 못사는 집 자식은 남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누더기 같은 것을 입고 다닌다. 신발도 잘사는 집 아이는 수만원씩 하는 외국산 신발을 신지만 못사는 집 아이는 천 신발도 없어서 못 신는다. 외양부터 빈부 격차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생 때부터 빈부격차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엔 교과서도 학교에서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장마당에서 사야 한다. 부잣집 아이는 교과서를 살 수 있지만 가난한 집 자녀는 교과서도 없이 공부한다.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이러니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이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원래 북한은 가부장적인 유교사상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집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높았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초반기에도 남자는 돈 한 푼 벌어오지 못해 여성이 장사해서 벌어온 것으로 먹고살면서도 집안에서 큰소리를 치면서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풍속도 점차 바뀌고 있다. 여성이 가정 생계를 도맡으면서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장마당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시집가서도 발언권을 키우는 길이 된 것이다. 풍속 변화는 여성이 선호하는 남편감의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과거에는 제대군인에 당원인 남자를 선호했지만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지가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요즘 북한에선 “염소는 산으로 갔나”, “유모차는 튼튼한가”라는 은어가 퍼지고 있다. 이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남자를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여기서 염소는 담배를 피우는 시아버지를 의미한다. 염소가 산으로 갔느냐는 말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느냐를 묻는 말이다. 시아버지는 대접만 받을 줄 알고 밥만 축내지 생활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의미다.

유모차는 시어머니를 의미한다. ‘튼튼한 유모차’는 앓지도 않고 건강해서 아이도 잘 봐주고, 며느리가 장사를 다니면 집안 살림도 책임져주며, 물건을 함께 들고 장마당에도 같이 나갈 수 있는 시어머니다.

남자도 당연히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여자의 출신성분 같은 것은 따지지 않고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 여성이 1등 아내감으로 떠올랐다.

보따리 장사의 종말

1990년대 북한이 급작스러운 경제난에 처하자 처음 번창한 것이 ‘보따리 장사’ 또는 ‘배낭 장사’라고 불리는 소규모 장사꾼이었다. 이들은 배낭에 식량이나 공업품을 담아 메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시세 차익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이 때문에 당시 기차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들어찬 기차 안에 한 사람이 몇 개씩 메고 다니는 배낭까지 실리면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때 북한에서 몰래 찍혀 외부에 공개된 사진에서도 여성이 산처럼 큰 배낭을 메고 다니는 모습이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모습이 거의 없어졌다. 그 이유는 장사의 체계가 잡혀가고 기차도 잘 다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장사꾼이 서로 각 지방의 시세를 교환하면서 장사물품을 수하물로 보낸다. 그러자면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용이 보장돼야 한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장마당이 점차 자리 잡히면서 이런 신용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기차로 수하물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 수하물이 제대로 갈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도중에 증발돼도 누가 꿀꺽했는지 알 방법도 없었다. 그 때문에 배낭 몇 개를 나르기 위해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기차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기차가 잘 다니면서 열차원들도 신용을 지켜 날라주고 일정 금액을 받는 형태가 정착되고 있다. 철도 경비도 심해져서 과거처럼 도둑이 함부로 열차에 침범해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현상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수송망이 안정되고 신용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자연히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 수가 줄어들고, 기차가 혼잡하지 않으니 질서는 더욱 잘 지켜지고 있다. 장거리 버스나 돈을 받고 사람이나 물건을 날라주는 장거리 ‘서비스 차’가 보편화하면서 철도에 집중되던 화물도 분산되고 있다.

직접 메고 다니지 않고 수하물을 보내는 방식으로 장사가 이뤄지다보니 자연히 규모도 커지고 있다. 수백, 수천 달러어치의 물품을 거래하는 큰손이 늘고 있다. 과거처럼 배낭 몇 개를 메고 다니는 사람은 경쟁에서 밀리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도시 생활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농촌은 예나 지금이나 농사로 먹고살기 때문에 생활수준이 높아질 여지가 크지 않지만 도시는 장사로 먹고살기 때문에 장사가 자리 잡히면서 함께 생활수준도 올라간다.

1990년대 중반에는 도시민이 배낭을 메고 농촌으로 다니면서 물건과 식량을 바꾸어왔지만 이제는 그런 현상도 많이 줄어들었다. 요즘에는 도시에서 죽 먹는 집이 많지 않다. 강냉이밥에 국수를 먹는 집이 못사는 축에 들 정도다. 오히려 요즘 아사자(餓死者)는 농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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