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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⑩

‘밀리언셀러’ 신경숙 영혼의 고백

“사랑은 불편한 현실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밀리언셀러’ 신경숙 영혼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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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셀러’ 신경숙  영혼의 고백

서울 평창동 미술관에서 기자와 마주 앉은 신경숙씨.

새벽 3시에서 아침 9시까지

그대는 요즘 온라인서점인 알라딘에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10월13일 현재 76회를 맞았다. 인터넷 연재가 처음인 만큼 그대는 독자들이 매회 글을 읽고 보이는 반응, 즉 댓글이 흥미롭기만 하다.

“내 독자들은 참 이상해요. 작품 이야기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제는 제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소통하면서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연재를 시작할 때 그대는 알라딘 측에 일주일에 두 번은 독자들의 댓글에 화답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것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래서 요즘은 2, 3주에 한 번씩 들어가 독자들에게 ‘나도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정도다. 그대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중 하나는 외국에 있는 독자들이 다는 댓글이다. 그대는 캐나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지에 있는 유학생들의 댓글을 통해 그곳 생활을 알게 되는 뜻밖의 소득을 얻기도 한다.

인터넷에 소설 쓴다고 할 때 주변에서는 걱정을 많이 했다. 주로 악성 댓글에 대한 우려였다. 그러나 그대는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그런 글을 보지 못했다.



“알라딘이라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고요. 또 오랫동안 제 작품을 읽어온 분들이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데 미묘한 정이 생겨 (댓글이) 오래 안 보이면 궁금하기도 해요. 내가 적극적이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독자들끼리 서로 메일 주고받고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좋아요.”

그대는 평소 밤 11시께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곤 했다. 그런데 인터넷 연재를 하면서부터는 일어나는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겼다. 처음엔 알람소리에 깼지만 지금은 몇 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글쓰기는 오전 9시까지 계속된다. 9시 반쯤 동네 요가원에 가서 한 시간 남짓 요가를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낮잠을 몇 시간 잔다. 약속은 웬만하면 오후에 잡는다. 가끔 영화도 본다. 한때 광화문에 있는 시네큐브극장에 자주 다녔다.

“새벽 3시에서 아침 9시까지는 순전히 내 작품을 위한 나만의 시간이에요. 그렇게 딱 정해놓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모든 것과 단절된 독자적인 시간을.”

이제 본격적으로 ‘엄마를 부탁해’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대가 어느 인터뷰에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듯 100만부는 누구에게나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수치로 느껴진다.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길이가 416㎞다. 이 책의 세로 길이가 22㎝(0.22m)니 100만부를 잇대어 늘어놓으면 220㎞에 달한다. 즉 경부고속도로 시작지점에서부터 책을 늘어놓으면 서울-부산의 중간 지점까지 깔리는 것이다. 쉽게 계산이 안 된다고? 그대를 만나기 며칠 전에 기자가 계산해본 것이니 그냥 믿어도 좋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 작품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색다른 형식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모두 4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는데, 각 장의 화법이 다르다. 첫 장은 큰딸의 시점에서 얘기를 풀어나가는데 ‘너’라는 2인칭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2장은 큰아들의 시점에서 ‘그’라는 3인칭 화법으로,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3장은 ‘당신’이라는 2인칭 화법으로 진행된다. 1인칭 화법으로 전개되는 것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엄마가 화자로 나서는 4장뿐이다. 에필로그는 1장과 마찬가지로 큰딸이 화자인 2인칭 시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소설을 떠올렸다는 기자의 말에 그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나중에 기자도 인터뷰를 끝내고 기사를 정리할 때쯤에는, 두 작품이 여러 명이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과 추리기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언뜻 비슷하지만 ‘엄마를 부탁해’의 경우 시점과 화법이 다양하고 모든 화자의 얘기가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만 전개된다는 점에서 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예요. 서울역이라는 누구나 다 가볼 수 있는 공간에서 나의 내밀한 부분을 다 알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고 난 다음 가족이 한 사람씩 등장해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복원해가는 작품이에요. 처음 쓸 때 연극무대를 생각했어요. 모노드라마처럼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 말하고 그것을 통해 잃어버린 것, 잊어버린 것을 복구하는 거죠.”

그대는 왜 엄마만 ‘나’라는 1인칭 화법으로 말하게 했을까.

“나라는 존재를 수만 개로 분화해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엄마인 것 같아요. 엄마는 다른 가족에 비해 ‘나’라는 말보다 ‘우리’라고 말하면서 사는 시간이 훨씬 많아요. 그래서 이 소설 안에서는 엄마한테만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냐면, 엄마를 얘기하면 다른 존재들의 삶이 다 이끌려 나와요. 이 소설도 그렇잖아요. 다들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딸은 어떤 존재인지 아들과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지 저절로 드러나요. 관계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존재가 엄마이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작가로서 이 세상 엄마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이 ‘나’였어요.”

엄마에 대해 그대는 정말 할 말이 많다. 그대는 엄마를 양파껍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다 드러나지 않는다.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 엄마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말을 해도 부족하다. 따라서 엄마 스스로 얘기를 하지 않으면 엄마가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100만부나 팔렸지만 조 기자의 아내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주변에서 읽어본 사람들이 슬픈 얘기라며 읽지 말라고 했다나. 그대에게는 답답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뇌졸중을 앓아온 ‘엄마’는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직전 아버지를 놓치고 난 뒤 행방불명된다. 뇌 이상으로 정신을 놓고 기억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4장에서 엄마는 ‘봄날 새싹들처럼 정신없이 솟아나는 기억들을’ 주체하지 못해 자식들과 남편이 사는 집을 차례로 돌며 지난 일들을 회상하고 끝내는 자신이 태어난 집을 찾아가 죽은 엄마를 만나기에 이른다. 기자는 이것을 이승을 떠나기 직전 혼의 방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대의 해석은 어떤가.

“환상이에요. 삶과 죽음의 경계인 거죠. 이 작품은 슬프라고 쓴 게 아니에요. 읽으면서 울었다면 슬퍼서 운 게 아니라 각자 자기 내면에 갇힌 엄마하고 대화하느라 울었을 거예요. 이 세상의 어떤 존재든 엄마를 생각하는 시간은 나쁜 시간이 아니에요. 엄마와 굉장히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래요. 엄마를 생각하다보면 결국 자신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문제가 뭔지 깨닫게 되죠. 엄마에게는, 정말 편한 관계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고 예의도 지키지 않아요. 타인에게는 비치지 않는 나의 못난 모습이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다 드러나죠.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을 읽고 울었다면 슬픔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나 정화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런 의미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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