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호

한·미 의회의 정보기관 통제시스템 해부

1년에 1200회 브리핑한 CIA vs 4년간 14회 보고한 국정원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11-06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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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의회의 정보기관 통제시스템 해부
    지난 여름부터 워싱턴 정가를 달구고 있는 이슈 가운데 하나는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중앙정보국(CIA) 비밀공작팀 운영에 관한 논란이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체니 당시 부통령이 비밀리에 알카에다 수뇌부의 암살을 노리는 공작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이후 8년여 동안 전세계를 무대로 은밀히 활동해왔다는 이 팀의 존재는, 올해 임명된 리언 파네타 CIA 국장이 6월말 의회에 보고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 같은 비밀 프로그램이 정보기관과 의회의 관계에 대한 미국 국내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다. 정보감시법(the Intelligence Oversight Act)에 따르면 행정부는 정보기관의 비밀공작 활동에 대해 즉각적이고 전면적으로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다만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그 보고대상을 ‘8인의 갱(Gang of Eight)’으로 불리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상하원 지도부 및 양원 정보위원장과 소수당 간사로 제한하고 있다.

    사안이 공개된 직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CIA가 2002년부터 자신을 비롯한 의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속여 왔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에 따라 하원 정보 소위원회는 이 비밀공작의 구체적인 내역과 의회에 대한 보고누락을 둘러싼 법 위반 사항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했고, 미 의회조사국은 정보기관의 비밀공작 보고의무에 관한 보고서를 연이어 쏟아냈다.

    여기까지 상황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그럼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그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감청이나 남북정상회담 추진공작 등 정보기관의 활동에 관한 논란이 국내 정치의 이슈로 떠오른 적은 많지만, 이에 대한 국회의 통제 여부를 주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 비밀공작에 대해서도 보고의무를 부과하는 미국의 의회-정보기관 관계는 한국의 국회-정보기관 관계와 어떻게 다르기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껍데기와 알맹이



    미국이 의회의 정보기관 통제제도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계기로 작용했다. 이를 즈음해 CIA의 민간인 사찰 등 불법 활동에 관한 폭로가 이어지자, 1975년 의회는 특별조사위원회를 운영하고 정보기관에 대한 통제장치 미흡이 구조적 결함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대통령 1인에게만 책임을 지는 정보기관의 특성 때문에 정보기관을 제어할 장치가 없다는 것. 이에 따라 미국은 1976년부터 상하원에 각각 정보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이른바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회에 정보위원회가 설치됐다. 끊이지 않았던 정보기관의 국내정치 개입 논란을 불식시킬 ‘개혁입법’의 결과물로 1994년 출범한 정보위원회는, 그 구성방식이나 권한 등에서 미국의 사례를 상당부분 참조했다. 무소불위에 가까웠던 정보기관을 담당하는 상임위니만큼 정보위는 출범 초기 ‘소상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위상이 높았지만, 이후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그 인기도 점차 사그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껍데기는 미국을 베꼈으되 알맹이는 사뭇 달랐다는 것이다.

    미 의회 측의 통계에 따르면 1999년 한 해 동안 CIA는 의회에 1200건의 브리핑을 했고 2500여 건의 문서를 제출했다.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자료는 원칙적으로 정보위에도 제공된다고 보면 옳다는 게 학계 전문가들의 설명. 반면 한국의 경우 비슷한 시기인 16대 국회 임기 4년 동안 현황보고 2회와 현안보고 14회를 받았다는 통계가 전부다.(2004년 ‘국회정보위원회편람’) 17대 국회 이후에 대해서는 통계자료가 없지만 한 정보위원은 “미국의 수십 분의 1 수준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손을 대긴 했는데…

    서두에서 설명한 비밀공작 보고의무 여부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한국과 미국 정보위원회의 권한 차이가 가장 확연한 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국회법이나 국정원법 어디에도 공작사항에 대한 국회 보고의무 조항은 없다. 양국 정보위가 모두 갖고 있는 의회의 정보기관 예산 및 결산 심의절차 역시 작동방식은 사뭇 다르다. 미국의 경우 정보기관이 제공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예산 세부항목별로 꼼꼼한 검토가 이뤄지지만, 한국의 경우 ‘필요한 세부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법률규정에도 불구하고 정밀한 심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 국회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박영선 의원의 말이다.

    “국정원의 예산은 다른 부처와 달리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검토하지 않고 정보위 예결산소위에서 소속 위원만이 참석한 채 비공개로 심의한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한 예산의 세부내역을 의원 한 사람이 짧은 시간 동안 따져보는 게 가능할까. 위원이 특정 항목의 세부내역을 요청하면 주도록 되어 있지만, 국정원에서 곤란하게 느끼는 부분은 제출일자를 계속 미루는 방식으로 피하곤 한다. 의미 있는 자료를 제때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여기에 한국 정보기관들의 변칙적인 예산처리 방식도 정확한 심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국정원의 경우 본 예산 자체가 증빙 없이 임의로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인데다, 이와는 별도로 세부항목이 아예 작성되지 않는 예비비를 총액 개념으로 기획재정부 관리하에 운용하고 있다. 이 예비비가 오히려 본 예산보다 많다는 것이 정설. 보안을 위해 다른 부처 예산으로 처리되는 특수활동비도 만만찮은 규모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정보위가 출범한 이래 국정원이 제출한 예산안에 손을 댄 것은 2002년도 예산 70억원을 삭감한 게 처음이었다. 국정원의 엄청난 예산 규모에 비하면 상징적인 숫자였다. 이후 불법도청 파문이 한창이던 시점에 진행된 2006년도 예산안 심의에서 국정원 국내파트를 중심으로 정보관련 예산을 원안에서 215억원 줄인 것이 역대 최대 규모의 삭감이지만, 그러나 같은 해 국방예산이 요구안에 비해 4597억원(총액대비 2%) 삭감된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문제는 전문성이다

    정보위원들은 “정보기관을 꼼꼼히 통제하기에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국정원이 정보위원들에게 제공하는 보고서는 통상 2급 비밀로 분류되지만, 이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은 위원 본인뿐이다. 한 정보위원 보좌관은 “어떤 자료가 오가는지 관심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 예산감사만 해도 회계전문가의 체계적인 조력을 받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익명을 요구한 한 정보위원의 말이다.

    한·미 의회의 정보기관 통제시스템 해부
    “정보위에도 수석전문위원 이하 5명의 직원이 있지만 모두 각 상임위를 돌며 순환근무를 하는 입법공무원이다. 정보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조력 대신 의사일정을 진행하는 정도다. 미국의 경우는 상하원 모두 위원 1명당 1인 이상의 전문위원이 있어서 정보위 직원이 전문위원급만 상하원 각각 30명 선에 달한다. 이들은 모두 정보업무에 전문지식을 인정받은 사람들로 선발된다. 다른 상임위와의 형평성 때문에 정보위 직원수를 늘릴 수 없다면, 정보위를 맡은 의원의 경력 높은 보좌관을 지정해 보안심사를 거쳐 업무에 참여할 수 있게라도 해야 한다. 최소한 국방위 등 다른 안보분야 상임위에서 보좌진이 수행하는 조력은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도 정보위에는 두 명의 국정원 직원이 파견돼 있지만, 이들의 업무 역시 제한적이라는 게 정보위원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박영선 의원은 “청와대 파견처럼 아예 사표를 쓰고 국회에 온다면 모를까, 지금은 전문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온 건지 국회 동향을 파악하러 온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라고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정보위원 본인들 역시 전문성 부족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외국 의회의 정보위에는 주로 원로급 의원이 임명되어 임기 중에 교체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한국은 국내정치 상황에 따라 위원을 자주 바꾸기 때문에 교체율이 100%에 달한다”고 전했다. 한 정보위원 보좌관은 “솔직히 정보위가 재선에 도움이 되거나 이해관계가 얽힌 상임위는 아니지 않나. 정치상황에 따라 상임위 배정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보위원의 잦은 교체는 보안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임기마다 수십 명의 ‘전 정보위원’이 양산되는 구조다 보니 체계적인 보안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 이는 정보위원회의 스태프를 늘리거나 보좌관들에게 조력을 맡기는 등 외국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들이 내놓는 가장 강력한 반론이기도 하다. “지금도 걸핏하면 정보위 정보유출로 골치를 앓는데, 비밀 접근권한을 가진 사람을 늘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염돈재 원장의 말이다.

    “민주국가의 제도적 발전에 따라 정보기관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는 것은 분명 거부할 명분이 없다. 그러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가진 우리가 미국식 정보기관 통제를 무조건 정답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1994년의 정보위 도입 역시 당시의 여건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다소 성급했던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비밀공작의 사전보고는 우리 처지에서는 생각하기조차 쉽지 않다. 당장 국회의원 자신들도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정보위원이 국가기밀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국정원장의 증언이나 자료를 공개하거나 누설할 경우, 형법을 적용하거나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도록 관계법령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에 가깝다. 정보위원장이나 간사가 국정원장과 상의해 일부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일종의 관례가 됐고, 심지어는 상의되지 않은 내용이 정보위원 개개인을 통해 새어나가 기사화하는 사례 역시 비일비재하다. 1980년대 정보유출 문제로 의원이 사임한 전례도 있어 이후에는 비슷한 사례가 완전히 사라진 미국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국회 연락관을 지낸 한 국정원 관계자는 “명목상 비공개 증언일 뿐 기자회견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국정원과 정보위 사이에 신뢰관계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보위가 국정원의 예산이나 활동에 대해 제대로 된 감독권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이 정보위에 제공하는 정보의 수위가 다른 것 역시 신뢰의 문제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보고사항의 외부 유출 문제는 국정원과 정보위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3년 7월 정보위를 통해 언론에 유출된 북한의 고폭실험 관련 보고내용. 당시 국정원 핵심관계자의 회고다.

    “북한이 1980년대부터 핵폭탄의 뇌관에 해당하는 고성능폭약 실험을 해왔다는 사실은 우리 측의 정보역량이 총동원돼 수집한 기밀 중의 기밀이었다. 당시 고영구 원장이 보고한 이 내용은 정보위원들의 개별 언론플레이를 통해 이튿날 대대적으로 기사화됐다. 국정원에서는 이에 대해 국회법 위반 등으로 고발할 것을 검토했지만 윗선의 방침에 따라 끝내 단행하진 못했고, 대신 ‘이런 일이 반복되면 현안보고는 재고할 수밖에 없다’며 유감을 표하는 것으로 끝내야 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례가 이어졌지만 고발이나 윤리위 제재가 이뤄진 경우는 없다.”

    특히 이러한 정보유출은 외국 정보기관과의 공조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국정원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외국 정보기관과의 정보교환을 통해 얻는 정보의 양이 상당한데, 국정원 정보가 국회를 통해 유출되는 과정이 반복되면 이러한 협조관계는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정보누설이 반복되는 원인을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정보위원들이 지목하는 ‘정보 누설 반복의 원인’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은 이와 관련해 중요한 힌트를 던져준다. 여당 측 인사들은 “야당에서 정보기관 업무에 대해 필요 이상의 것을 알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하고, 야당 측 인사들은 “정보유출을 핑계 삼아 정보위의 감시기능을 약화시키기 위해 국정원과 여당이 유출 사례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려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신사협정’이라는 이벤트

    정보기관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온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결국 가장 큰 원인은 정보위원회의 지나친 정치화”라고 말한다. 보고된 사항이 소속정당이나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맞으면 곧바로 언론플레이에 활용하는 패턴이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이들 정보 내용이 대부분 해당시기 정부의 안보정책이나 정보기관 운용방식을 비판하는 데 쓰였음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정치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고 보면, 고민은 결국 제도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이와 관련해 살펴봐야 할 미국과 한국 정보위원회의 가장 큰 차이점이 구체적인 운영규칙의 유무다.

    미국 의회는 상하원 모두 수십쪽 분량의 정보위 운영규칙을 제정해 운용하고 있다. 보고내용 유출 행위에 대한 처리 절차는 물론, 회의의 공개 여부에 관한 결정기준, 정보기관의 예산안 제출 방식과 범주, 시한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문서들이다. 국회법과 국정원법의 몇몇 조항에 근거해 주먹구구식으로 정보위를 운영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한·미 의회의 정보기관 통제시스템 해부

    2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원세훈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과 민주당 박영선 의원, 최병국 위원장(왼쪽부터)이 회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정보위 운영과 관련한 정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은, 국회에 제공할 정보의 범주가 애매하다는 점에서 정보기관에도 큰 스트레스다. 한 전직 국정원 차장급 인사는 2004년 김선일씨 피살사건 청문회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시 일각에서 ‘정부가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김선일씨 납치에 관한 정보를 일부러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국정원에 ‘관련된 모든 보고서를 국회에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국정원 측은 ‘정보문서를 선별 없이 공개하는 법은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공개와 비공개 사항에 대한 명확한 법률규정이 없다보니 결국은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 현직 국정원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의회에 정보기관 문서를 제출할 때 출처와 수집방법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은 모두 지우도록 돼 있지만, 우리는 그런 세부규정이 없다보니 일부를 지우고 제출하면 ‘이게 무슨 장난이냐’는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이렇듯 운영규칙의 필요성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정보기관조차 공감하고 있다보니 국회는 이미 2003년과 2005년에 이를 제정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걸림돌은 세부규정을 둘러싼 여야 간 합의의 실패. 현재도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정보위 관계자들은 운영규칙 마련에 동의하고 있었지만, 거꾸로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것 역시 한결같았다.

    다만 일부 정보위원들은 “운영규칙의 제정을 이제까지 이어져 내려온 정보위의 문제점을 일신하는 일종의 이벤트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쉽게 말해 새로 규칙이 가동되는 순간부터 보고사항의 유출을 엄벌에 처한다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여야가 맺자는 것. 정보기관도 이 신사협정에 동참해, 앞으로는 실질적인 예산심의나 활동 파악이 가능한 수준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다. 국회의 정보기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정보위 운영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하고, 그러려면 명확한 계기가 필요하다는 데는 상당수 정보위원이 동의하고 있다.

    15년이 되는 해

    올 들어 국군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국정원의 시민사회단체 활동 압박에 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내부에서 ‘이명박 TF’가 운영됐다는 의혹이 정가를 강타했던 기억을 돌이켜볼 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정권교체가 빈번한 민주화 국가에서 양날의 칼일 수밖에 없음을 방증하는 까닭이다.

    대부분의 정부부처가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의 감시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데 반해, 정보기관은 그 특성상 이러한 외부의 견제가 사실상 전무하다. 독일이나 캐나다가 엄격한 보안을 전제로 정보기관의 활동을 독립적으로 감독하는 별도의 기구를 운영하는 것은 이 때문. 반면 한국의 경우 정보기관을 통제하는 독립적인 주체는 국회뿐이다. 중앙정보부에 입사해 30여 년을 국정원에서 보내고 은퇴한 전직 간부의 말이다.

    “정보기관의 개혁에 대해 말이 많지만, 정보위의 개혁이야말로 그 첫 단추라고 믿는다. 정보기관은 생리상 정권의 이해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언제나 ‘윗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정보(intelligence to please)’에 경도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정보위밖에 없다. 국회가 정치적 득실을 따지지 않고 제대로 감시한다는 전제가 서 있으면 정보기관의 정보유통이나 관리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 정보기관의 조율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학계 전문가들은 미국도 의회와 정보기관 사이에 충분한 신뢰관계가 조성되는 데 15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평가한다.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였던 CIA의 비밀공작 보고의무에 관해 관계법령에 ‘서면보고’라는 구체적인 형식이 명문화된 게 1990년이었다는 것. 이후 미국의 정보위 메커니즘은 완숙기에 들어섰고, 오늘날처럼 누구도 그 건강성을 쉽게 의심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침 올해는 국회 정보위원회가 출범한 지 15년이 되는 해다. 관건은 정치권이 당장의 당파적 이익을 넘어 정보기관 통제의 올바른 역할을 먼저 고민할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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