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남한 밀수 컴퓨터에 ‘야동’ 가득 ‘누리꾼 체육대회’로 채팅방 전격 폐쇄

북한 인터넷 집중 분석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입력2010-04-30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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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젊은 남녀도 인터넷 채팅으로 연애를 한다. 부잣집 사람들은 ‘콤퓨터’를 무엇보다 먼저 구입해야 할 필수품으로 여긴다. 하지만 북한 인터넷은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된, 인트라넷에 가깝다. 세상과 동떨어진 어둠의 땅에서도 핏줄처럼 뻗어나가는 북한의 인터넷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2006년 6월 평양의 국가안전보위부(이하 보위부)에서 인터넷 관련 대책회의가 열렸다. 발단은 ‘조선컴퓨터센터(KCC)’ 홈페이지인 ‘내나라’에 올라간 글 때문이었다. ‘내나라’는 1996년에 개설된 북한 최초의 홈페이지.

    이곳 게시판에 한 누리꾼이 “내나라 개설 10주년 기념일에 평양체육관에서 네티즌의 체육경기를 발기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북한에서는 누리꾼을 네티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10주년 기념일 당일 평양체육관에 무려 300여 명의 누리꾼이 모였다. 북한판 플래시 몹(flash mob·불특정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 깜짝쇼를 벌인 뒤 흩어지는 행동)인 셈이다. 이날 모였던 이들은 말이 누리꾼이지, 따지고 보면 평양의 ‘오렌지족’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엔 어느 정도 경제력 있는 집에만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북한 보위부의 참을성을 끝내 허물어뜨렸다. 북한에선 당국이 허가하지 않은 모임을 엄격히 금지한다. 평양은 더하다.

    북한판 ‘플래시 몹’

    남한에서 타종(打鐘) 행사를 한다고 새해 첫날 종각 일대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처럼, 한때 북한에도 신정 때마다 김일성광장에 나와서 인민대학습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문화가 확산돼 김일성광장에 자연발생적으로 모이는 사람 숫자가 점점 많아지자 보위부는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강제로 해산시켰고, 다시는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런 체제에서 건전치 못한 회색분자로 볼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이용해 300여 명씩이나 삽시에 모이니 정말 묵과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더구나 평양체육관에서 10분가량만 걸으면 중앙당 청사가 나온다.

    보위부는 이날 긴급 출동해 누리꾼들을 해산시키고 체육경기를 무산시켰다. 사실 이전에도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청년들이 모여 축구나 농구경기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북한 당국도 이를 눈감아줬다. 하지만 모이는 숫자가 수십에서 수백 명 단위로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300명이 넘어가자 칼을 뽑아 든 것이다.

    이 사건으로 단순히 체육경기만 무산된 게 아니었다. 인터넷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뒤따랐다. 사실 이 망은 북한 내부에서만 쓰기 때문에 인터넷이라기보단 인트라넷에 더 가깝다. 북한에선 이를 보통 ‘망’이라 부른다.

    보위부 요원들은 망을 검열해보고 깜짝 놀랐다. 문제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채팅방에선 남한 말투를 쓰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있었다. 당국의 의도와 다른 내용의 게시물도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망에서 채팅 방이 모두 사라졌다. 또 당시 북한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PC방들도 모두 폐쇄됐다. 집 전화 모뎀을 이용한 개인의 망 접촉도 금지됐다. 망 접속은 기관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게 됐다. 북한에 선풍적 인기를 몰고 오던 인터넷 문화가 급작스럽게 찬 서리를 맞는 순간이었다.

    사실 북한의 누리꾼들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다. 자기들끼리도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절제되지 않은 표현과 행동이 북한이라는 체제에서 용납되지 않는 걸 알고 우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하면서 ‘언젠가는’ 제재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너무나 빨리 다가왔다.

    독자적 운영체계 ‘붉은별’ 개발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북한은 인터넷 발달에 나름 힘을 쏟아왔다. 폐쇄국가에 웬 인터넷이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북한은 이 분야에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의 관심을 기울였다. 2008년 12월 체제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부 자본을 유치해 휴대전화를 다시금 개통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은 2002년 11월 휴대전화를 처음 개통했다가 2004년 4월 용천역 기차 폭발사건이 터지자 중단했다.

    세계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고 싶은 욕망. 그리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 이 둘은 늘 북한을 짓누르는 모순이다. 그리고 이 둘이 강하게 부딪칠 때면 늘 체제 안정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북한의 정보통신 산업 발전 과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올 3월 한국 언론에 북한이 자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리눅스 기반의 컴퓨터 운영체계 ‘붉은별’이 자세히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리눅스를 기반으로 운영체계를 만드는 일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남한에서도 웬만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라면 만들 수 있다.

    리눅스의 장점은 뛰어난 보안성이다. 북한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Window) 운영체계를 사용할 경우 발생할 보안문제 등에 대처하기 위해 독자적 운영체계를 개발해왔고, 그 결과물이 붉은별이다.

    붉은별은 MS와는 기술적으로 완전히 다른 운영체계지만 겉모습과 사용 환경은 여러모로 윈도와 닮았다. 데스크톱 기본화면에 있는 ‘휴지통’이 ‘회수통’으로, ‘내 컴퓨터’가 ‘나의 컴퓨터’로 적혀 있는 정도가 윈도와의 차이점이다. 윈도에 길들어 있는 사용자들이 쉽게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유사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붉은별의 응용프로그램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웹브라우저인 ‘내나라’다. 인터넷과 별도로 운영되는 북한의 폐쇄적 네트워크 특성을 반영하듯 북한 컴퓨터엔 ‘내나라BBS’가 설치돼 있다. BBS(Bulletin Board System)는 일종의 내부 게시판으로 남한에서는 1998년 무렵까지 사용됐던 PC통신과 비슷한 것이다.

    ‘MS 오피스’에 해당하는 응용프로그램은 ‘통합사무프로그램 우리’다. 여기에는 ‘문서처리체계 서광’ ‘선전물’ 등이 들어있다. 그러나 각각 MS 워드, 파워포인트와 구성이나 사용 환경이 매우 흡사하다. 붉은별에는 또 ‘클락새 2.0’이라고 하는 백신프로그램도 들어 있다. 백신프로그램을 북한에선 ‘비루스 왁찐’이라고 한다.

    붉은별은 올 초 외부에 알려졌지만, 사실 북한은 지난해 초에 모든 국가기관에 붉은별 사용 지시를 하달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각 기관은 검열에 대비해 붉은별을 깔아놓았을 뿐 대체로 윈도 체계를 그냥 이용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붉은별에서는 많은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에선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아놓는 것을 ‘태운다’고 표현한다. 한국에선 이를 ‘로딩’ 또는 ‘다운로드’라고 하는데, 사실 ‘태운다’는 북한식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영어 ‘load’가 ‘짐이나 사람을 싣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컴퓨터 및 인터넷 관련 용어는 남북이 현저하게 다르다. 가장 기초적인 ‘Computer’도 남에서는 ‘컴퓨터’로, 북에서는 ‘콤퓨터’로 쓴다. 이로부터 파생되는 단어도 다 다르다. 남에 ‘컴맹’이 있다면, 북에는 ‘콤맹’이 존재한다.

    南은 ‘다운로드’, 北은 ‘태운다’

    북한이 컴퓨터 산업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북한 컴퓨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첫 시작은 1982년 일본 등에서 주요 부품을 가져다 8비트급의 마이크로컴퓨터인 ‘봉화4’를 생산한 것이 아닐까 싶다.

    1983년 북한은 국가과학원과 김책공대에 전자계산기(북한에서 컴퓨터를 지칭한 초기 용어) 관련 연구소를 만들었다. 2년 뒤에는 평양과 함흥에 전자계산기단과대학을 신설했다. 1986년에는 김일성대에 컴퓨터센터를 세우기도 했다.

    1990년 평양전자계산기운영회사에서 한글문서 편집 및 인쇄 프로그램인 ‘창덕’을 개발했고 그해 10월 평양 만경대구역에 연건평 2만3000㎡의 대지에 현대적인 건물을 지어 조선컴퓨터센터(KCC)를 창설했다.

    1992년부터는 일반 고등중학교 6학년 수학 교과서에도 ‘프로그램 작성법’이 한 개 장으로 실렸다. 이때는 베이직, 포트란, 파스칼 등의 언어를 활용한 프로그램 작성법을 주로 가르쳤다. 하지만 대다수 학교에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종이에 자판을 그려 익히곤 했다.

    1996년 드디어 북한의 첫 인터넷사이트인 ‘내나라’가 개통했고, 이듬해 중앙과학기술통보사의 홈페이지 ‘광명’이 탄생했다. 이 두 사이트의 출현은 북한 인터넷 발달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들 사이트는 초기에는 매우 협소하고 기술 부족으로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입소문을 타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06년 보위부 조치로 가정집에서 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차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 있던 것은 채팅방이었다.

    북한 당국은 원하는 사람에 한해 개인별 ‘메일복수(e메일계정)’도 할당해주었다. 물론 e메일을 주고받기 위해선 발신인과 수신인 모두 같은 망에 연결된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며 e메일 내용은 보위부에서 검열할 수 있었다.

    채팅방의 존재는 북한 청년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사귀고 대화한다는 것은 호기심과 즐거움, 그리고 희망을 안겨주었다.

    대부분의 초기 누리꾼이 청년인지라 사교계가 없는 북한에서 채팅방이 이를 대신하기도 했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남자는 여자와, 여자는 남자와 채팅을 했다. 여자를 유혹하는 온갖 미사여구가 넘쳐나는 가운데 밤을 새우는 청년도 날로 늘어났다.

    초기엔 채팅에 참가한다는 자체가 부자의 상징이었다. 집에 컴퓨터가 있고, 이를 인터넷과 접속해주는 집 전화가 있다는 것은 웬만한 부(富)를 가지지 않고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너도나도 채팅에 뛰어드는 바람에 평양에선 집으로 전화를 걸면 ‘통화중입니다’라는 안내음이 나오기 일쑤였다.

    인터넷을 통해 부잣집 도련님과 아가씨가 오작교를 놓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집 자식들은 컴퓨터를 무엇보다 먼저 구입해야 하는 필수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는 북한 인터넷의 급성장을 초래했다. 이는 한국에서 1990년대 초반에 나타났던 현상과 판박이다. 한국에서도 채팅과 자유게시판 등으로 PC통신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PC 보급이 확대됐다.

    북한에서도 채팅 다음으로 인기 있는 것은 ‘전자게시판’(자유게시판)이다. 이곳에서 북한 누리꾼들은 최신 정보와 지식, 경험 등을 공유하고 다른 누리꾼의 도움을 받았다. 자료실에는 일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IT지식과 여러 분야의 상식이 많이 올라왔다. 그 외 각종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세한 상품 소개도 볼 수 있었다. 노동신문과 평양신문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주요 체육경기 결과나 일정까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TV에선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편 인트라넷 성격의 제한된 인터넷 안에서도 북한 누리꾼끼리 서로 해킹을 주고받는 일까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다음은 북한에서 인터넷 해킹을 해봤다는 한 탈북자의 증언을 북한말로 옮긴 것이다.

    채팅으로 밤새우고…

    “제가 해킹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해커의 공격을 받은 뒤부터입니다. 어느 날 한참 채팅을 하고 있는데 ‘내가 누군지 아니?’라는 메시지 창이 뜨고 시간이 59초에서 점점 줄어들더니 콤퓨터가 꺼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켜도 1분 안에 또 꺼지더군요. 순간 비루스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 태우고(깔고) 있던 비루스 방어 프로그람도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체계를 태우고 보니 일부 화일들이 파괴되고 자료구역까지 비루스가 먹은 상태였습니다. 그 후부터 방화벽 프로그람을 구해 사용했습니다.

    제 친구도 해킹을 당했는데, 자기도 해보겠다면서 전문기관에서 해킹 프로그람을 구해왔습니다. 콤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해킹 프로그람을 사용하면 망에 연결된 콤퓨터들의 주소가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서 아무거나 선택하여 아무 화일이나 지우거나 상대방을 놀려주는 테스트화일을 복사해 넣으면 됩니다. 북한 인터넷 망에선 이런 아마추어들의 해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열기를 타고 2000년대 초반 평양을 포함한 전국 각지에 ‘정보통신기술판매소’라는 명칭을 단 PC방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신의주, 남포, 해주, 라진선봉시 등 북한 주요 도시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됐다. 모뎀속도는 처음에는 56kbps 정도였는데 이는 한국에서 1997~98년 당시의 속도와 유사한 수준이다.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진 북한의 인터넷 발전이 한국과 5~6년밖에 차이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북한에서 컴퓨터공학 교수로 18년간 IT인력을 양성하다 2004년 탈북해 한국으로 온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디지털 전화망 목적으로 부설된 광케이블에 모뎀 결합 방식의 인트라넷을 구축하다보니 데이터 전송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광케이블의 기술 상태가 좋지 않고 네트워크 전 구간에 부설된 신호증폭시설의 불량도 많아 서버-클라이언트의 접속이 자주 끊어지는 문제가 수시로 발생했다.

    이에 북한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인터넷 개통과 개방을 목표로 본격적인 인터넷 인프라를 재구축하고 시설 보완공사를 진행했다. 인터넷 전용으로 전역에 광케이블 백본망(backbone network·저속의 브랜치 랜 망들을 서로 연결하거나 분산된 통신장치들을 통합하기 위한 통신 선로 시설)을 새로 부설하고 랜카드 결합방식의 ADSL망도 새롭게 구축했다. 백본망 구축으로 보자면 한국보다 10년 정도 뒤떨어진 셈이다.

    이런 공사를 거쳐 ‘광명’ 망의 경우 데이터 전송속도가 평양에선 70~80Mbps로, 지방에선 파일 업다운로드가 10Mbps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물론 이 속도는 한국처럼 집집에 들어가는 전송속도가 아니고 관공서를 연결한 전용회선의 속도다.

    ADSL 공사 이전에는 PC 하드디스크에 깔린 게임만을 갖고 놀 수 있었지만, 공사가 진행된 2004년 이후엔 광명망 내에서 MMORPG(다중접속 역할 수행 온라인게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전송속도가 높아졌다 해도 여전히 북한 내부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라고 한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

    구글 같은 검색사이트는 없어

    북한 인터넷 사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도메인 대신 복잡한 숫자로 이뤄진 프로토콜(IP)로 주소를 표기한다는 점이다. 도메인은 ‘www.donga.com’처럼 영문 또는 한글로 표시되는 인터넷 주소를 말하는데, 북한에선 영문 대신 ‘http://10. 76. 1. 11’이나 ‘http://191. 168. 1. 101’과 같은 숫자들이 홈페이지 주소다(참고로 각각 ‘내나라’와 인민대학습당 홈페이지 ‘남산’의 북한 내부망 주소다). 김흥광 대표는 북한이 숫자로 된 도메인을 사용하는 이유가 “라우터나 네임서버와 같은 필요한 설비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소가 복잡한 숫자로 돼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인터넷을 하려면 ‘내나라’나 ‘광명’ 같은 기본 사이트의 주소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한다. 이곳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다른 홈페이지의 리스트가 쭉 나열돼 있고 이를 클릭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이동한다.

    북한에서 인터넷 주소를 갖고 있는 곳은 수천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대학들과 도서관들, 중앙과학기술통보사, 발명총국, 국가망정보센터와 같은 국가 주요 기관, 외화벌이 회사들과 중요 공장 기업소 등이 다 자체 홈페이지를 갖고 있다. 심지어 금성1고등, 금성2고등 같은 중학교들도 홈페이지가 있다. 여기에 김일성대나 김책공업대 같은 큰 대학은 홈페이지가 강좌까지 세분화돼 있다.

    남한 밀수 컴퓨터에 ‘야동’ 가득 ‘누리꾼 체육대회’로 채팅방 전격 폐쇄

    평양 대동강 강변 유원지에서 데이트하는 남녀.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인터넷 채팅을 통해 남녀 간 연애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분야 전문가를 양성하는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김책공대는 인터넷 활용도도 북한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다. 이 대학에는 김일성대도 아직 못 가진 전자도서관이 있고 과목별 원격 동영상 강의도 진행하는 수준이다. ‘미래’라는 이름의 이 전자도서관에는 김일성·김정일 관련 서적, 단행본 등이 올라 있는 ‘일반자료기지’와 대학교육도서, 학위논문, 학보 등이 올라있는 ‘대학자료기지’가 갖춰져 있다. 또 강의 일정과 교수 정보, 최근 강의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김책공대 교직원들 사이에는 총장이 매일 아침 출근해 홈페이지를 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는 소문이 퍼져있다.

    홈페이지의 디자인은 외부 세계와 격리된 북한답지 않게 상당히 세련되고 보기 좋게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는 많은데 홈페이지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개개의 홈페이지에 상당한 품을 들인 덕분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아직 구글이나 야후 같은 검색사이트가 없다. 인민대학습당이나 중앙과학기술통보사 홈페이지에 가면 각종 자료 목록을 검색할 수 있지만 실제 내용을 볼 순 없다. 인터넷에 올려놓은 자료라고 하더라도 이는 암호를 알고 있는 극소수 사람에게만 열어놓기 때문에 일반인은 직접 도서관에 가야 한다.

    북한은 2007년 9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로부터 KCC를 인터넷주소관리기관으로 하는 국가도메인 ‘kp’ 운영을 최종 승인받았다. 앞으로 필요한 설비를 갖추기만 한다면 북한 내 인터넷 주소도 숫자 대신 한글이나 영문 도메인으로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뇌물로 ‘컴퓨터 검사’ 피해

    현재 북한에 일반적인 컴퓨터는 펜티엄 4급이고 펜티엄 3급도 일부 있다. 북한의 공식상점에서 새 컴퓨터를 팔긴 하지만, 비싸기 때문에 대체로 사람들은 중고를 구입한다. 중고는 대게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데, 삼성 LG 삼보 등 한국제품도 상당하다. 이런 까닭에 밀수로 들여온 한국 컴퓨터에 남한에서 저장된 자료가 그대로 들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야동’이라고 한다.

    컴퓨터 가격은 올해 3월 현재 펜티엄 4급 중고가 150~250달러 정도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800달러는 줘야 했기 때문에 가격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하겠다. 북한에서 중산층 4인 가구가 1년 동안 사는데 약 400~500달러를 소비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 가격은 부유층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중국에서 그보다 사양이 더 높은 최신식 컴퓨터를 구입하기도 한다. 이런 컴퓨터의 사양은 한국에서 현재 판매되는 컴퓨터와 비슷하다.

    북한에서 컴퓨터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집에 설치하려면 당국의 까다로운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선 컴퓨터를 어디서 구입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영수증을 갖추어야 한다. 밀수로 하드디스크를 몰래 들여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영수증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국가보위부 27국(과거 16국)인 ‘전파감독국’에 가서 ‘반전파검사’를 받는 것이다. 이는 시스템 내에 이상한 발진을 일으키는 기능이 있는지를 검사하는 일이다.

    반전파검사가 생긴 유래가 눈길을 끈다. 북한 중앙급 기관에서 컴퓨터를 통한 사무가 막 일상화될 무렵 중앙당 검열지도과 컴퓨터들이 위성이 감지할 수 있는 기가헤르츠 대역의 발진을 일으키는 사실이 적발됐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이를 계기로 컴퓨터 관련자들에게 “반공화국 적대세력이 북한과 컴퓨터 수출거래를 하는 업체를 통해 본체 안에 타이핑되는 내용을 위성에 자동 전송할 수 있는 특수 장치를 설치했다”고 비공개로 주의를 주었다. 이런 주장은 쉽게 납득이 안 되고 진위도 알 수 없지만 실제로 그 직후 각 당기관, 보위기관, 행정기관의 컴퓨터들이 집중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반전파검사에서 합격하면 해당 시도 보안서에 가서 설비 등록을 하고 등록증을 받아야 한다. 등록증이 나오면 마지막으로 출판총국의 검열국에 가서 하드디스크 검사를 받아야 한다. 반사회주의적 자료나 ‘황색’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는 야한 동영상 및 사진이 있는지 검열하는 절차다. 모든 검열 절차가 끝나면 이를 증명하는 확인증을 준다. 이를 붙여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탈북자들에 따르면 최근에는 북한 내부의 규율이 다 흐트러진 상황이기 때문에 ‘뇌물’과 ‘안면’으로 컴퓨터 구입 증명 영수증부터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구입한 컴퓨터도 검사를 통과하기가 쉽진 않다고 한다.

    또 밀수로 들여온 컴퓨터를 구입했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에는 검열당국에 가져가기 전에 미리 사전검열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혹 필요한 자료가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되면 자기만 보기 위해 따로 저장해놓는다.

    북한에서는 보위부 또는 보안서에서 불시에 가택 수색을 하는 경우가 잦다. 이때 컴퓨터에서 금지자료들이 나오면 컴퓨터는 압수되고 심한 경우엔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복잡한 등록절차와 불시 검열에도 불구하고 북한 가정에는 컴퓨터가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예전에는 TV나 자전거가 있어야 잘사는 집으로 꼽혔다면 이제는 컴퓨터나 전화기는 집에 있어야 축에 낀다. 북한의 모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올 초 현재 평양에서 기관 기업소의 컴퓨터를 제외하고도 가정집에 있는 컴퓨터만 20만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평양의 인구는 대략 350만명으로 추산된다. 가구당 식구 수를 3.5명으로 잡아도 평양에는 100만 가구가 산다. 평양에 있는 컴퓨터가 20만대라면 최소한 다섯 집 건너 한 집에는 컴퓨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지방은 이보다 보급률이 많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대도시들에는 컴퓨터가 상당히 많이 보급돼 있다고 봐도 될 법하다.

    그러나 최근 가정집 컴퓨터는 게임이나 하고 동영상을 보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서두에 썼다시피 2006년까지는 전화선에 모뎀을 연결해 주요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었다.

    2006년 이후 ‘망’ 접속 불가

    하지만 평양체육관 사건이 있은 뒤부터 북한 당국은 모뎀을 이용한 개인의 인터넷망 접속을 금지했고 인기가 많았던 채팅방들도 폐쇄했다. 지금 북한의 인터넷망에는 기관 기업소에 등록된 컴퓨터로만 접속할 수 있다. 개인이 망을 이용하기 힘들어지자 온갖 변화와 욕망을 담고 부글부글 끊던 북한의 인터넷 세상은 자연 삭막한 분위기로 변했고 개인의 관심사도 인터넷에서 멀어지게 됐다.

    ‘북한’과 ‘인터넷’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한국의 평범한 사람은 아마 ‘북한발(發) 해킹’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북한의 사이버 공격은 한국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주제다. 북한의 해킹 능력이 미국 CIA와 맞먹는다는, 근거 없는 과장된 보도도 언론을 타고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북한의 해킹 능력은 우리 생각보단 훨씬 취약하다. 북한의 모든 교육부분이 그렇듯이 컴퓨터 분야도 기초교육은 강하지만 전문분야는 크게 떨어진다. 한 해에 100명의 사이버 전사를 양성해낸다고 정보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되고 있는 북한군 소속 미림대학도 사실은 북한에서 진짜 수재는 한 명도 안 가는 삼류대학이다.

    교원부터 수준이 떨어지는데다 좀 실력이 있다고 해서 교원으로 발탁된 이들도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지 못해 발버둥치는 곳이 바로 미림대학이다. 이곳 학생은 대부분 10년 가까이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아온 현역 군인 출신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온 ‘직통생’은 거의 없다. 미림대학의 수준은 금성 1,2중학교에도 못 미친다.

    물론 요즘은 한 명의 수재 해커보다 보통의 해커 여러 명이 협동해 해킹하기 때문에 정보화 교육을 받은 미림대 출신을 무작정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역시 컴퓨터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금성 1,2중학교에서도 인터넷 구성과 보안에 대해 교육하지만 기초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 해커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금성중학교 교원 중에도 고급 해커 경험을 가진 이가 없다.

    그러나 금성중학교에서 6년간 매년 500시간이 넘는 컴퓨터 관련 교육을 받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은 조금만 더 교육을 받으면 훌륭한 해커가 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 당국은 이런 학생들을 뽑아서 김일성대와 김책공대에 보내 최소 2년간 교육을 더 시킨다.

    대학에서도 인터넷 보안 관련 학과는 있지만 해킹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 일부 컴퓨터에 미친 학생들은 유명 해커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자체로 파고든다. 북한의 내부 인트라넷 환경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들 해커의 통신망에 대한 이해는 해외 기술자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북한 내에서는 해외 인터넷과 접속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은 금성중학교의 최우수 학생들을 대학에서 2년 정도 더 공부시킨 뒤 한꺼번에 10명 정도씩 인도로 유학을 보내고 있다. 이미 여러 팀이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핏줄처럼 뻗어가는 북한 인터넷

    이들이야말로 북한의 최고 컴퓨터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인도로 가는 것은 컴퓨터 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품는 최고의 소원이다. 최초로 인도에 나간 10명의 학생은 우수한 성적을 받고 계속 인도에 머무르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성중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도로 나간 선배 중 일부가 빌 게이츠의 사인이 들어 있는 자격증을 받았다는 소문이 신화처럼 퍼져 있다. 사실 게이츠의 사인이 있는 자격증은 MS의 웬만한 정규 과정을 마치면 다 받을 수 있는 것인데, 외부세계와 동떨어진 북한에서는 이런 일도 전설이 된다.

    북한의 인터넷 교육 실태가 열악하다고 해서 해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정통한 모 소식통에 따르면 해커들은 정찰총국 소속 연구소에 한 부서로 존재하고 있다. 중앙당 작전부 산하 연락소에도 분소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나 지난해 작전부가 정찰총국에 통합되면서 연락소 분소도 정찰총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해킹 실력으로 보면 연락소 해커 분소의 실력이 정찰총국보다 높았다. 그래서 작전부가 정찰총국에 넘어가면서도 연락소 분소는 넘어가지 않았지만 정찰총국이 분소를 넘겨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정찰총국과 연락소는 약 10년 전부터 중국에 전문가들을 파견해 활동시켰다. 하지만 중국에 파견되는 해커들은 거의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외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해커의 활용 가치에 대해 정찰총국이나 연락소의 고위 노간부들이 회의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남인 김정은이 후계구도 구축의 일환으로 먼저 정찰총국부터 틀어쥐었기 때문에 젊은 수장의 등장과 더불어 해커들의 역할이 급속히 중요해질 수도 있다.

    ‘북한’ 하면 세상과 동떨어져 폐쇄된 나라, 사람들이 굶주리다 못해 탈출하는 땅, 그러다 잡히면 공개총살당하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지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인터넷이라는 최신 문명이 핏줄처럼 뻗어나가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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