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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⑩

남한 밀수 컴퓨터에 ‘야동’ 가득 ‘누리꾼 체육대회’로 채팅방 전격 폐쇄

북한 인터넷 집중 분석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남한 밀수 컴퓨터에 ‘야동’ 가득 ‘누리꾼 체육대회’로 채팅방 전격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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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젊은 남녀도 인터넷 채팅으로 연애를 한다. 부잣집 사람들은 ‘콤퓨터’를 무엇보다 먼저 구입해야 할 필수품으로 여긴다. 하지만 북한 인터넷은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된, 인트라넷에 가깝다. 세상과 동떨어진 어둠의 땅에서도 핏줄처럼 뻗어나가는 북한의 인터넷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2006년 6월 평양의 국가안전보위부(이하 보위부)에서 인터넷 관련 대책회의가 열렸다. 발단은 ‘조선컴퓨터센터(KCC)’ 홈페이지인 ‘내나라’에 올라간 글 때문이었다. ‘내나라’는 1996년에 개설된 북한 최초의 홈페이지.

이곳 게시판에 한 누리꾼이 “내나라 개설 10주년 기념일에 평양체육관에서 네티즌의 체육경기를 발기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북한에서는 누리꾼을 네티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10주년 기념일 당일 평양체육관에 무려 300여 명의 누리꾼이 모였다. 북한판 플래시 몹(flash mob·불특정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 깜짝쇼를 벌인 뒤 흩어지는 행동)인 셈이다. 이날 모였던 이들은 말이 누리꾼이지, 따지고 보면 평양의 ‘오렌지족’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엔 어느 정도 경제력 있는 집에만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북한 보위부의 참을성을 끝내 허물어뜨렸다. 북한에선 당국이 허가하지 않은 모임을 엄격히 금지한다. 평양은 더하다.

북한판 ‘플래시 몹’

남한에서 타종(打鐘) 행사를 한다고 새해 첫날 종각 일대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처럼, 한때 북한에도 신정 때마다 김일성광장에 나와서 인민대학습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문화가 확산돼 김일성광장에 자연발생적으로 모이는 사람 숫자가 점점 많아지자 보위부는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강제로 해산시켰고, 다시는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런 체제에서 건전치 못한 회색분자로 볼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이용해 300여 명씩이나 삽시에 모이니 정말 묵과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더구나 평양체육관에서 10분가량만 걸으면 중앙당 청사가 나온다.

보위부는 이날 긴급 출동해 누리꾼들을 해산시키고 체육경기를 무산시켰다. 사실 이전에도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청년들이 모여 축구나 농구경기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북한 당국도 이를 눈감아줬다. 하지만 모이는 숫자가 수십에서 수백 명 단위로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300명이 넘어가자 칼을 뽑아 든 것이다.

이 사건으로 단순히 체육경기만 무산된 게 아니었다. 인터넷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뒤따랐다. 사실 이 망은 북한 내부에서만 쓰기 때문에 인터넷이라기보단 인트라넷에 더 가깝다. 북한에선 이를 보통 ‘망’이라 부른다.

보위부 요원들은 망을 검열해보고 깜짝 놀랐다. 문제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채팅방에선 남한 말투를 쓰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있었다. 당국의 의도와 다른 내용의 게시물도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망에서 채팅 방이 모두 사라졌다. 또 당시 북한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PC방들도 모두 폐쇄됐다. 집 전화 모뎀을 이용한 개인의 망 접촉도 금지됐다. 망 접속은 기관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게 됐다. 북한에 선풍적 인기를 몰고 오던 인터넷 문화가 급작스럽게 찬 서리를 맞는 순간이었다.

사실 북한의 누리꾼들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다. 자기들끼리도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절제되지 않은 표현과 행동이 북한이라는 체제에서 용납되지 않는 걸 알고 우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하면서 ‘언젠가는’ 제재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너무나 빨리 다가왔다.

독자적 운영체계 ‘붉은별’ 개발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북한은 인터넷 발달에 나름 힘을 쏟아왔다. 폐쇄국가에 웬 인터넷이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북한은 이 분야에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의 관심을 기울였다. 2008년 12월 체제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부 자본을 유치해 휴대전화를 다시금 개통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은 2002년 11월 휴대전화를 처음 개통했다가 2004년 4월 용천역 기차 폭발사건이 터지자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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