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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으로 떠나는 파리 여행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환상으로 떠나는 파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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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17세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밀하게 파리를 그려낸 이 소설은 파리 센 강 중(中)에 있는 두 개의 섬 중 시테 섬의 두 명소 퐁 네프 다리와 다리 중간과 접해 있는 도핀 광장을 무대로 외스타슈 부트루라는 재단사의 기이한 손 사건을 다루고 있다. 간략한 줄거리를 보면 이렇다. 군인과의 결투에 처한 재단사 부트루는 연금술사에게 마법을 청하게 되고, 이 마법으로 군인을 처단한다. 하지만 곧 경찰에 쫓겨 도핀 광장의 고명한 판사를 찾아가게 되는데, 도움을 청하러 간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법에 걸린 손이 판사를 공격한다. 이에 그는 교수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데, 이때 집시가 재단사를 찾아와 손을 요구한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될 때 재단사로부터 분리된 손이 마법사를 향해 달아난다.

집행인은 욕을 하면서, 항상 옷 속에 가지고 다니는 큰 칼을 꺼내 악령 들린 팔을 두 번 쳤다. 놀랍게도 팔이 튀더니 피가 묻은 채 사람들 속으로 떨어져,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둘로 갈라졌다. 팔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사람들이 모두 피했기 때문에 팔은 곧 가야르 성의 작은 탑 밑에 도착했다. 여기서 손가락들이 게처럼 성벽의 돌출부와 갈라진 틈을 잡으며, 마법사가 기다리고 있는 창문까지 기어 올라갔다. (중략) “이 사건은 오랜 시간 동안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이야기에 목말라 있던 사교계나 서민들 사이에서 주요 화제가 되었고, (중략) 진지하고 양식 있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로 받아들이겠지만 난롯가에 모여 앉은 어린이들을 다시 한 번 즐겁게 해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라르 드 네르발, ‘마법에 걸린 손’에서

칼비노가 이 작품에서 흥미롭게 포착한 시각적 환상이란 우리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손’이 일으키는 마법을 ‘상상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일상적 환상의 세계는 매일 밤 파리를 산책하던 모파상의 경험으로부터 창조된 ‘밤’의 일단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나는 밤을 열렬히 사랑한다. 누가 조국이나 애인을 사랑하듯 나는 밤을 사랑하는데, 본능적이고 깊은 무적(無敵)의 사랑이다. (중략) 나는 때로는 어두운 교외로, 때로는 파리 근교 숲으로 가서 걷는다. 그곳에서는 내 누이들인 동물들과 내 형제들인 밀렵자들이 배회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격렬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우리를 살해한다. 그렇지만 내게 벌어진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 드 모파상, ‘밤’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일상의 공포



이탈로 칼비노는 이 소설을 최소한의 환상이 사용된 효과적인 예로 제시한다. 일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덩어리를 섬세한 눈으로 관찰해 분류하고, 분류해낸 삶의 세목들을 정밀하게 소설로 그려낸 단편 작가로 정평이 난 모파상의 소설을 접해온 독자에게 이 소설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모파상은 ‘밤’에서 무의식의 잡히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심연의 정체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악몽으로, 불현듯 찾아오는 일상의 공포 같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잡히지 않은 것,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언어로 표현해 하나의 길을 내고, 형상을 창조해내는 것이 소설(예술)의 본질 중 하나다. 곧 일상적 환상이란 우리가 살면서 느닷없이 마주치는 설명할 수 없는 공포나 꿈을 꾸는 중에는 서서히 답답함이 가중되다가 결국 그 무게에 짓눌려 깨고 나면 분위기만 느껴지는 악몽의 세계와 유사하다. 모파상의 ‘밤’은 마지막까지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운데, 작품을 내려놓는 순간,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을 환기하는 순간, 소설은 의외로 선명하게 우리에게 자국을 남기며 공명(共鳴)을 일으킨다.

나는 불로뉴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오래, 아주 오래 머물렀다. 이상한 전율이 온몸에 흘렀고 생각지 않은 강력한 감정이 살아났으며 거의 광기에 가깝게 생각이 들떴다. 오래, 오래 걸었다. 그리고 되돌아왔다. 처음으로 나는 이상하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중략) 새벽 두 시였다. (중략) 나는 고함을 질렀다. “도와줘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나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중략) 난 센 강가에 도착했다. 얼음같이 차가운 공기가 강에서 올라왔다. 센 강은 아직 흐를까? 난 알고 싶었다. 계단을 찾아 밑으로 내려갔다. (중략) 나는 다시 올라갈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나도…거기서…배고픔으로…피로로…추위로…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기 드 모파상, ‘밤’에서

신동아 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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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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