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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은퇴 후 시골살이

  • 안병영│연세대 명예교수

은퇴 후 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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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현지 적응 내지 주민과의 화합 문제도 많은 이가 심각하게 우려하는 사항 중 하나다. 이는 지방 소도시 아파트로 옮기는 경우에는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산촌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경우 이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사전에 이주하고자 하는 곳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데 중장년층이 영농을 목적으로 하향하는 경우에 비해, 은퇴 후 노령자의 이주는 상대적으로 현지 갈등의 소지가 적은 편이다.

이제 내 경우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정년 10년 전부터 은퇴하면 서울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다행히 내 처도 동의했다. 그래서 첫 고개를 무난히 넘겼다.

처음부터 서울에서 멀리 갈 궁리를 했다. 서귀포, 남해, 통영, 속초 등이 주요 후보지였는데, 마침 가까운 친구가 속초에 미리 자리를 잡고 그곳을 ‘강추’했다. 결국 설악과 동해가 함께 손짓하고, 친구가 기다리는 이곳으로 왔다.

이곳에서 산 지 6년 동안 건강이나 보안 문제로는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간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산행을 즐기고, 농사일을 하는 나는 이곳에서 건강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적 작업이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대도시에서보다 오히려 소도시나 시골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한다.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있어 지식과 정보의 수집과 소통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자연으로부터 지적, 예술적 영감을 풍성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비우고 ‘탈(脫)서울’ 만끽하기



처음 3년간은 의도적으로 서울에 기웃거리는 일을 피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공식적 모임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고, 내 편에서 서울 친지들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작심하고 ‘정 떼는’ 작업을 한 셈이다. 서울에서 얼마간 ‘잊힌 존재’가 되어야 이곳에 발붙이기가 한결 수월할 것 같아서였다. 이곳에 연착륙하는 데 그러한 노력이 꽤 주효했던 것 같다.

가끔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꼈지만 가슴이 저밀 정도로 심각한 적은 없었다. 생활인으로 시골에 살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그러자면 고독할 틈도 없다. 내 경우 이곳에서 작은 규모의 농사를 짓기 때문에, 봄에서 가을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시골살이를 하다보면, 문화, 특히 고급문화를 누릴 기회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울에 산다고 실제로 문화적 향수 기회가 그리 많은가. 내 경우, 실제로 바쁘다는 핑계로 서울에서 예술이나 문화생활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데 오히려 이곳에 온 후 지난 한 해에만도 서울에서 열리는 음악회, 공연, 전시회에 네 번이나 다녀왔다. 그때마다 모처럼의 기회인 양 느껴져 마음이 크게 설고 기쁨도 그만큼 더 컸다. 다양한 지방 축제에 자주 기웃거리고 ‘양양 5일장’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뿐인가. 여기서 나는 서울에서보다 음악을 훨씬 더 자주 듣고, 그림도 그린다.

뭐니 뭐니 해도 나에겐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쁨이 가장 크다. 우리 집에서 설악동, 봉포 바닷가, 영랑호가 똑같이 차로 15분 거리다. 다른 사람들이 1년을 별러야 한번 올까 말까 하는 자연 명소를 나는 옆 마을 가듯 자주 오간다. 내 서재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울산바위는 언제 보아도 한 폭의 명화다. 그런가 하면 도보로 왕복 1시간 걸리는 뒷산 솔밭 길은 여름에 뱀, 겨울에 멧돼지 걱정만 빼면 최상의 명상 길이다. 근처에 양질의 온천이 많은 것도 주요한 매력 포인트다.

여기 올 때만 해도 서울서 속초에 오는 데 차로 4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런데 미시령 터널이 뚫리고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두 시간 반이면 거뜬하다. 서울과 너무 가까우면 자칫 서울이라는 거대한 ‘블랙 홀’에 다시 빨려 들어갈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서울과 지나치게 멀면 어쩌다 서울행을 해야 할 때 적지 않은 불편이 따르게 된다. 그렇게 볼 때 속초~서울 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적절하다고 본다. 아직 결론을 얘기하기는 이르지만, 대체로 나의 ‘탈(脫)서울’은 그런대로 성공적이 아닌가 싶다.

성공비결과 필수조건

마지막으로 내 경험에 비추어 은퇴 후 시골살이의 성공조건을 간추려보고자 한다.

첫째, 마음의 준비와 부부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시골살이는 삶의 ‘패러다임적 전환’이다. 따라서 자신의 ‘시골살이 적합성과 ’현지 적응 가능성’에 대해 냉철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부부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마땅히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삶의 의미와 성취의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 일을 부부가 함께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셋째, 심신이 건강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시골살이는 생각만큼 낭만적이고 목가적이지만은 않다. 그것은 눈앞의 현실이고 생활이다.

넷째, 사회적 교류는 적정 수준인 게 좋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사회적 네트워킹은 오히려 부담이 된다.

은퇴 후 시골살이
안병영

1941년 서울 출생

1975~2007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1995~1997년 교육부 장관

1998~2002년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KOSSREC) 회장

2003~2005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2007년~ 연세대 명예교수


다섯째, 살면서 현지 주민과 생활의 격차를 보여서는 안 된다. 검약한 생활이 필수적이다. 사치와 과소비, 오만과 과시는 주민들과 위화감을 조성하고 자칫 따돌림과 소외를 자초할 수 있다.

여섯째, 마음을 비워야 한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귀의하는 마음가짐이 절실히 요구된다. 몸만 시골에 있고 마음은 여전히 서울에 머문다면 실패를 자초하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움의 철학’이 성공적 시골살이의 필수조건이다.

신동아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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