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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교수의 新經筵 ⑦

‘혼魂백魄’ 초청하는 제사 다시 만나는 부모 마음

  •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혼魂백魄’ 초청하는 제사 다시 만나는 부모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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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제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화합의 기회다. 모든 존재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과 아메바도 유전자가 거의 같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가장 바람직한 판단은 남을 남으로 생각하지 않고, 남을 나처럼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고, 서로 다투고 갈등하며 사는 것이 불행이다. 그중에서도 서로 가까워야 할 가족이나 친척끼리 다투는 것은 큰 불행이다. 이런 큰 불행에서는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옛사람이 이런 큰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찾아낸 것 또한 제사다. 사람들이 다투는 까닭은 자기들이 하나임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형제도 다툰다. 형제는 한 부모의 몸을 받아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라는 사실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다. 형제는 다투면 안 된다. 형제가 다투는 것은 큰 불행이다. 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형제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제사다. 형제가 함께 부모의 제사를 지내면 부모를 통해서 서로 하나라는 것이 확인된다. 그렇게 되면 형제는 바로 화합할 수 있다. 사촌끼리 갈등이 생긴 경우에는 조부모 제사를 함께 지내면 바로 해소될 수 있고, 육촌끼리 다투면 증조부 제사를 함께 지내면 해소될 수 있다. 한국인끼리 갈등이 많을 경우에는 다 함께 단군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면 해소될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이 갈등하고 있을 경우에는, 다 함께 하느님 제사를 지내면 해소될 수 있다. 제사는 사람들 사이의 껄끄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제사를 통해 사람들이 화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공자는 “제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吾不與祭 如不祭)”이라고 했다

셋째, 제사는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사람은 누구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이 멀리 흩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한자리에서 다 같이 만나고 싶지만 날짜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찾아낸 가장 좋은 날짜가 바로 제삿날이다. 제삿날이란 그리운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는 축제날이다.

넷째, 제사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사람들은 경쟁사회에 살면서 남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많다. 남들에게 거부당해 자기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자기 자리와 역할을 빼앗기고 소외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옛사람이 이런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찾아낸 것 또한 제사다.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집안에서는 혼인하지 않은 어린이나 여자들을 제사에 참여시키지 않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일이다. 아무리 무능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제사에 참여한 경우에는 소외시키면 안 된다.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각각 자기의 정해진 자리가 있다. 많은 사람이 제사에 참여한 이상 각각의 항렬에 따라 줄을 선다. 항렬이 높은 사람은 앞줄에 서고 항렬이 낮은 사람은 뒷줄에 선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정해진 자리를 통해 자기의 당당한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사회적 명망이 있는 사람에게 아무 역할도 주지 않으면 그 또한 소외시키는 것이 되므로, 그들에게는 헌관(獻官)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준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축관(祝官)이나 봉작(封爵) 등의 역할을 준다. 나이가 많지만 항렬이 낮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 역할이 없으므로, 또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그분들에게 먼저 음복주를 마시게 한다. 젊어서 아무 역할이 없는 사람은 음복주가 들어 있는 그릇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술을 따르는 역할을 하게 한다. 이처럼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각각의 자리가 있고 각각의 역할이 있어, 그간 소외되거나 위축되었던 마음을 만회하는 기회를 갖는다.

헌관·축관·봉작 역할을 맡기는 이유



‘혼魂백魄’ 초청하는 제사 다시 만나는 부모 마음

추석을 맞아 조상 묘를 찾은 성묘객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제사의 기능은 이처럼 중요하다. 아무리 그리워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자리이고, 껄끄러운 사람들이 만나 껄끄러움을 해소하는 자리이며, 보고 싶은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이고, 소외되고 위축되었던 마음을 다 해소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자리는 천국이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행복을 만끽하는 천국 체험이 바로 제사다. 사람들은 제사를 통해서 천국 체험을 한다. 옛사람들이 제사를 중시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옛사람들은 제사의 의미가 중요한 만큼 형식도 중시했다. 제삿날은 천국을 체험하는 설레는 날이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제사에 쓸 음식을 장만한다. 최근에는 제사음식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주장은 조상의 혼령이 직접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제사상에 음식을 올릴 때 조상의 혼령이 먹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지만, 조상을 만나면 우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정성이 마음속에서 솟아나온다. 그러므로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는 것은 정성이다. 실제 조상이 먹는지 어떤지는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리운 사람이 멀리 있다면 그의 사진을 꺼내 보기도 하고, 혼잣말로 보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의 탄광에는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이 탄광 벽에 ‘어머니 보고 싶어요’라고 쓴 글씨가 남아 있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탄광 벽에 아무리 쓴들 어머니가 알 까닭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가 모른다고 해서 그것을 헛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머니가 보고 싶은 정성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정성은 결과에 따라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정성은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다.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는 것도 바로 그 정성이다.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다. 제사음식을 잘게 썰어 꼬치에 꿰는 것은 여러 사람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제사는 천국 체험이고, 제사음식은 천국을 체험하면서 먹는 천국 음식이다. 그러므로 제사음식은 가장 맛있고 진기한 것이어야 한다. 과거에 제사상에 올려놓았던 음식은 당시로서는 가장 진기하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 음식은 지금은 진기한 음식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음식을 지금도 고집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의 제사음식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진기하고 맛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제사에 쓰는 술 또한 매우 맛있고 진기한 것이어야 한다. 그 음식과 술 때문에라도 사람들이 제사를 기다리게 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동두서미(東頭西尾) 등 음식을 진설하는 방법에도 이제 얽매일 필요가 없다. 옛날에 그런 방식을 정한 것은 사람들이 음식을 진설하는 방법 때문에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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