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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Issue

애플보다 무서운 ‘특허괴물’에 대비할 때

  • 박성필| KAIST 지식재산대학원 교수 sppark@kaist.ac.kr

애플보다 무서운 ‘특허괴물’에 대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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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배심원단의 일방적인 평결로 삼성전자 대(對) 애플의 특허전이 한미 양국 간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애플 같은 거대기업보다 오히려 더 고약한 상대는 특허법정에서 큰돈을 벌려고 하는 특허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해놓고도 결국 미국 특허괴물에게 넘겨주고만 비운의 MP3 플레이어 사례를 통해 애플보다 무서운 특허괴물의 속성을 해부하고 최근 동향을 파악해본다.<편집자 주>
애플보다 무서운 ‘특허괴물’에 대비할 때

2004년 출시된 레인콤의 아이리버 iFP-1000 프리즘 아이. 레인콤은 국내에서 세계 최초 개발된 MP3 플레이어 특허를 인수해 관련 사업을 벌였지만 결국 특허를 미국에 매각했다.

삼성-애플 간 소송에서 보듯 최근 국제적으로 대규모 특허 소송이 빈발하고 있다. 수천 억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판매금지까지 당하면 웬만한 기업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그러잖아도 녹록하지 않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특허전쟁까지 대비해야 하는 기업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우리 기업들은 전방(前方)인 해외시장과 후방(後方)인 국내시장에서 특허전쟁을 치른다. 대표적인 전방 전투지는 미국이다. 미국은 특허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나라로 주로 미국 법원에서 천문학적 수준의 손해배상 결정이 나오고 있다. 이런 미국에서 요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특허관리회사(Patent Management Company)가 태어났다. 특허관리회사는 아직 용어가 통일되지 않아 특허괴물(Patent Troll), 라이선싱회사, 비실시기업(Non-practicing Entity), 발명자본(Invention Capital) 등으로도 불린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우리 기업들이 이들 특허관리회사의 대표적인 공격 대상이 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후방에서의 전투는 전방에서의 그것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특허권자에 대한 보호 수준이 너무 낮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피땀 흘려 확보한 특허를 침해당해도 침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확보가 너무 어렵거나 특허 무효로 판결 날 가능성이 높아 재판을 망설이게 된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끝내 승소하더라도 변호사비를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푸념하는 기업인도 많다.

이런 전후방 특허 전선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세계 최초 상용 MP3 플레이어다. 우선 MP3 플레이어 사례 분석을 통해 어떻게 특허제도가 기업에 오히려 독(毒)으로 작용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MP3 플레이어의 흥망성쇠



상용 MP3 플레이어의 세계 최초 개발자는 다우기술 출신으로 1996년 디지털캐스트를 설립한 황정하 사장이었다.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위한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던 디지털캐스트는 1997년 새한정보시스템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후 세계 최초의 상용 MP3 플레이어 ‘MPMan F10’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1998년 독일 CEBIT 전자박람회에서 최우수 멀티미디어로 선정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언론은 우리나라가 MP3 플레이어의 종주국으로서 세계시장을 석권할 것을 기대하면서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디지털캐스트와 새한정보시스템은 각각 50%씩 특허 지분을 보유했다. 해외 언론은 초기 발명자로 등록된 황정하, 문광수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관련 특허를 ‘문-황 특허(Moon-Hwang Patent)’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전략적 제휴는 얼마 가지 못해 깨졌고, 디지털캐스트는 재미교포 이종문 사장의 미국 회사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Diamond Multimedia)에 인수됐다. 새한정보시스템의 오디오기기사업부는 문광수 사장의 주도로 엠피맨닷컴으로 분사했다.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가 출시한 MP3 플레이어인 ‘Rio’는 미국 시장을 90% 점유할 정도로 성공적이었지만, 후발주자인 애플의 아이팟(iPod)이 급부상하면서 시장지배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결국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의 MP3 플레이어 사업부는 칩셋 제조사인 소닉블루(SONICblue)에 매각되고, 이후 소닉블루도 경영 상태가 악화되자 MP3 플레이어 사업을 일본계 D·M Holdings에 매각했다. 이러한 일련의 이전 및 매각 과정에서 처음 디지털캐스트가 보유했던 50%의 특허 지분도 동일한 경로를 따라 이전되었다.

한편 엠피맨닷컴은 한동안 국내 사업을 계속했다. 2001년 초 국내에서 원천기술인 ‘엠피이지(MPEG) 방식을 이용한 휴대용 음향 재생장치 및 방법’ 특허가 등록된 이후 국내외에서 관련 특허들이 하나둘씩 등록되기 시작하자 경쟁사들을 상대로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한편 로열티 협상을 요구하는 등 특허 공세를 강화했다.

그러나 경쟁사들은 한국포터블오디오협회(KPAC·Korea Portable Audio Consortium)를 중심으로 뭉쳐 엠피맨닷컴 특허의 권리범위가 너무 넓다고 공격했다. 특허심판원이 해당 특허를 무효라고 판결하는 비율이 70%에 육박하는 국내 현실 역시 엠피맨닷컴엔 또 다른 압박이었다.

무효 주장에 시달리던 엠피맨닷컴은 결국 스스로 정정심판을 통해 특허 권리범위를 축소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 경영상태가 악화되어 레인콤에 인수되었다. 레인콤은 미려한 디자인의 ‘아이리버’ 브랜드로 한동안 선전했지만 애플이 아이팟 셔플과 아이팟 나노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자 결국 MP3 플레이어 특허를 미국 텍사스의 칩셋 제조업체인 시그마텔(SigmaTel)에 매각하고 말았다.

사무실도 없는 특허괴물의 공격

시그마텔은 레인콤의 특허지분 외에도 D·M Holdings가 보유한 나머지 지분마저 인수해 MP3 플레이어 관련 특허 전체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특허 포트폴리오는 텍사스MP3테크놀로지스(TMT·Texas MP3 Technologies)라는, 공장은커녕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는 전형적인 특허관리회사에 인수됐다. TMT는 변호사 5명이 소유한 회사로, MP3 플레이어 소송을 대리한 로펌 매쿨 스미스(McKool Smith)와 사무실 주소가 동일해 ‘특허 변호사 괴물(Patent Lawyer Troll)’이라 불렸다. TMT는 2007년 2월 삼성전자와 애플, 샌디스크를 상대로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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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필| KAIST 지식재산대학원 교수 sppark@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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