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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④ 로마의 카르타고 침략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 뿐

전쟁 범죄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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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류 문명의 공적(公敵)인 전쟁을 범죄로서 분석하는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전쟁에 대한 연구는 웬만한 도서관을 가득 채울 만큼 넘쳐나지만, 전쟁을 범죄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분석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범죄학 역시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인류에게 해를 끼치고 인류문명에 위협이 되는 전쟁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개인 사이의 범죄에만 신경을 써왔다.

전쟁으로 인한 학살, 약탈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카르타고를 흔적도 없이 파괴한 로마도 살육과 약탈, 파괴의 아픔을 여러 차례 겪어야 했다. ‘로마의 겁탈(Sack of Rome)’로 불리는 사건들은 전쟁의 잔혹함과 함께 범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로마를 점령하고 유린한 최초의 사건은 기원전 390년에 벌어진 켈트족의 침략이었다.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로마는 귀족과 평민이 기득권을 놓고 심한 대립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평민들이 로마를 떠나 대거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평민들이 빠진 로마는 방어능력을 상실했고 그 틈을 타서 프랑스에서 켈트족이 들이닥쳤다. 로마는 약 7개월에 걸쳐 폐허로 변했다. 집과 거리는 시체로 넘쳐났고, 전염병이 로마 전역을 삼켰다. 켈트족이 더 이상 매력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도시를 버리고 떠났을 만큼 로마는 철저하게 망가졌다.

두 번째 겁탈은 로마제국이 서서히 종말로 접어들던 410년에 일어났다. 로마제국의 힘이 빠지자 게르만족은 수시로 로마의 북부와 동부를 침공했다. 로마의 명장 스틸리코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힘으로, 때로는 회유로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았으나 스틸리코가 게르만족과 내통해 로마를 손에 넣으려 한다는 그릇된 제보에 속아 로마황제는 스틸리코를 처형했다. 스틸리코가 억울하게 죽자 그를 따르던 로마 병사들도 게르만족 편으로 넘어갔다. 이 기회를 틈타 게르만족 가운데 서고트족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로마에 쳐들어왔다. 두 번에 걸친 포위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지자 몰래 성 밖으로 탈출하는 로마 시민의 숫자가 늘어났다. 서고트 왕 알라리크는 성안의 내통자를 통해 성문을 은밀히 열게 했다. 로마 안으로 들어온 서고트족은 6일 동안 교회만 빼고 모든 것을 불태우고, 약탈하고, 파괴했다. 수녀를 포함한 여자들이 능욕을 당했다.

두 번째 로마 약탈이 일어난 지 40여 년 뒤인 455년 이번에는 반달족(Vandals)이 로마에 쳐들어온다. 반달족은 원래 스칸디나비아에서 살다가 독일, 프랑스, 스페인을 거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에 정착했다. 북아프리카에 독립왕국을 건설한 반달족은 지중해를 건너 로마를 약탈했다. 남의 물건이나 공공시설을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라는 뜻의 반달리즘(Vandalism)이란 말은 프랑스 주교 앙리 그레과르(1750~1831)가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당이 자행한 파괴 활동을 반달족이 저지른 범죄행위와 비교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반달리즘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 뿐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인들은 누구를 위해 싸운 것일까.

로마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약탈과 유린의 대상이 됐다. 로마를 약탈한 이들이 과연 자신들이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느꼈을까. 약탈자들은 전쟁에서 패배한 이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약탈하고 건물을 파괴하는 것은 승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충성심 명예욕과 더불어 이러한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이래서는 안 된다고 느낀 장군이나 병사가 있더라도 이들 역시 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꼈을 리 만무하다. 조직범죄와 같은 집단 범죄가 더 잔인할 수 있는 것은 조직원이 책임이 자기한테만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른바 책임의 분산 효과다.

뉴욕에서 일어난 ‘키티 제노비스 사건’이 책임의 분산효과를 제대로 설명해준다. 1964년 3월 13일 저녁 뉴욕 시 퀸스의 주택가에서 한 여자가 35분에 걸쳐 잔인하게 살해됐다. 문제는 여자가 주택가에서 참혹하게 죽었다는 게 아니라 여자가 죽어가면서 살려달라고 계속 외쳤는데 동네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이 여자가 당하는 상황을 내다보기만 했을 뿐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38명이나 됐지만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중 단 한 명만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누군가 도와주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만 본 게 아닌데’라는 책임의 분산 효과가 막을 수 있었던 살인을 방조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전쟁은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합리화와 정당화가 용이하다. 범죄학의 중화(neutralization)이론이 쉽게 적용된다. 중화이론이란 범죄는 범죄 행위의 합리화, 정당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모든 범죄는 합리화를 통해 발생한다.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훔칠 때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명백하게 자각하면서 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 부모를 모욕했으니까, 우리 집을 망하게 했으니까 등 피해자를 죽일 만한 이유와 근거를 만들어낸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에 내가 못사는 거니까 잘사는 사람의 돈이나 물건을 훔쳐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중화이론은 크게 책임 부인(denial of responsibility), 손상 부인(denial of injury), 피해자 부인(denial of victim), 비난자에 대한 비난(condemnation of condemners), 충성심에 대한 호소(appeal to higher loyalties) 의 5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

로마의 술수에 넘어간 카르타고

시곗바늘을 서두에 언급한 제3차 포에니 전쟁으로 되돌려 로마군이 왜 카르타고를 그리 잔혹하게 파괴했는지를 중화이론을 통해 살펴보자. 로마군의 전쟁 범죄는 다른 요소보다 피해자 부인, 충성심에 대한 호소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피해자 부인이란 자신이 해를 입힌 사실은 인정하지만 피해자가 입은 해는 마땅히 당해야 하는 일종의 정의로운 응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2)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히스파니아의 영토를 빼앗기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50년간 물어야 했다. 그럼에도 로마 원로원에서는 카르타고를 완전히 없애버렸어야 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원로원의 실력자 대(大) 카토는 카르타고가 해상무역이 활발해 국력이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는 점을 들면서 카르타고 타도를 외쳤다. 실제로 카르타고는 50년 동안 막대한 배상금을 모두 지불할 정도로 경제회복의 속도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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