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미국 독립 이끈 작지만 힘찬 외침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미국 독립 이끈 작지만 힘찬 외침

1/2
미국 독립 이끈 작지만 힘찬 외침

상식<br>토머스 페인 지음, 남경태 옮김, 효형출판, 140쪽, 8500원

역사에 가정법은 없지만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한참 늦어졌거나, 캐나다처럼 오랫동안 영연방국가로 남아 있었다면 세계 역사는 사뭇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독립선언 반 년 전인 1775년 말까지만 해도 대다수 미국인은 독립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다. 지도자들조차 완전한 독립을 지향할지, 영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선에서 갈등과 마찰을 마무리할지 우왕좌왕했다.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도 1770년대 초까지는 독립에 반대했으며 독립선언을 기초한 벤저민 프랭클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영제국의 호위 아래 정치적 자치와 경제적 번영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군주제와 공화제를 섞은 영국의 정치체제가 최선이라고 여겼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은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무모한 일 같은 정황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1776년 1월 10일 토머스 페인이라는 급진주의 사상가가 쓴 ‘상식’(원제 ‘Common Sense’)이 출간되자 아메리카 대륙은 단번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46쪽에 불과한 소책자였지만, 이 조그마한 책 한 권은 미국 독립운동에 불을 질렀다. 나아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페인은 미국의 독립이 상식이자 역사적 순리라고 역설했다. 그는 상식에 관한 최초의 언급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 나는 오로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만을 제시할 것이다.”

여기서 상식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의 쓰임새에 따라 근본적이고, 객관적이며, 반박 불가능한 형태의 인식력과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판단력을 의미한다. ‘상식’은 군주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민주적 공화제만이 대안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페인은 식민지 아메리카 인민들에게 영국 왕실로부터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공화제에 입각한 새 나라 건설을 촉구했다. 그는 영국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견해의 모순, 세습 군주제의 불합리성, 독립에 따르는 경제적 이익, 독립의 역사적 의의, 대의제에 따른 정치적 대표기관의 구성방법 등을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펼쳐나간다.

평범한 상식, 명백한 논거



페인은 당시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통박한다. 입헌군주제가 옳지 못한 이유로, 견제를 통해 국왕의 권력을 둔화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권력을 정지시킬 수는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영국이 절대군주에 대해 문을 닫아버리고 자물쇠로 잠갔지만, 동시에 국왕에게 열쇠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군주제적 유물과 귀족제적 유물이 새로운 공화적 요소(하원)와 혼합돼 있어 불합리하고 터무니없는 모순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대목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매춘을 일삼는 남자가 자기 아내를 판단할 자격이 없듯이, 부패한 정치제도를 지지하는 선입견에 얽매이면 훌륭한 정치 제도를 식별하지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 정부 형태의 제도적 오류를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영국에서 국왕이란 전쟁이나 일으키고 관직을 주는 일 외에 하는 일이 없으며,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고 서로 싸우게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게 페인의 생각이다. 왕의 자리를 후손에게 세습할 권리도 없다고 말한다. 한 개인은 다른 사람에 비해 상당히 높은 지위를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후손까지 지위를 물려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페인의 지론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독립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영국이 ‘아메리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자기의 적으로부터 (아메리카를)’ 보호한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편다. ‘상식’은 미국이 왜 독립해야 하는지를 입증할 의무가 미국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왜 영국에 종속돼야 하는지를 영국인이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메리카는 유럽 각지에서 박해받은 사람의 피난처이기 때문에 미국의 모국은 영국이 아니라 전체 유럽이라고 페인은 생각한다. 영국과 관계를 유지하자는 주장에는, 유아가 이제껏 젖을 먹고 자랐으니 앞으로도 절대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다름없다고 반박한다.

영국의 신민 지위에서 벗어나더라도 아메리카의 곡물은 유럽의 어느 시장에서나 제값을 받을 수 있고, 어디로부터 물건을 사들이더라도 그 대가는 동일하다는 이유를 들어 독립의 경제적 이득을 설명한다. 또 유럽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메리카의 진정한 이익이라고 설득한다. 영국에 예속될 경우 외려 아메리카 대륙은 곧바로 유럽의 전쟁과 분규에 휘말려든다는 것이다.

그는 영국과의 ‘화해’가 성립되면 통치권이 여전히 국왕의 수중에 머물러 있어 사실상 노예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시기’에 독립해야만 하는 이유는 아메리카엔 충분한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장 용감한 업적들은 언제나 미성년기에 있을 때 성취됐다’고 재치 있게 비유한다.

그는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법률이 곧 국왕이어야 하고, 그 밖의 어떤 것도 국왕이 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광범위하고 평등한 대표권을 갖는 정치체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그릇된 것을 그릇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오래 굳어지면 겉으로는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명문이 각별히 눈길을 끈다.

폭발력을 지닌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순식간에 미국의 첫 번째 베스트셀러가 됐다. 3개월도 안 돼 10만 부, 1년 만에 15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브리태니커 사전은 1년 만에 50만 부가 팔렸다고 전하고 있으나 과장이 섞였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 전체 인구가 60여만 명의 노예, 100만 명 이상의 계약제 외국인 노동자까지 포함해 300만 명 정도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판매 기록이다.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제2차 대륙회의에 참석했던 존 펜은 1776년 봄 “여행길 내내 상식과 독립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1/2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목록 닫기

미국 독립 이끈 작지만 힘찬 외침

댓글 창 닫기

2023/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