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거리에서는 가로 5~10m로 길게 펼쳐진 현수막을 자주 볼 수 있다. 파리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구체적 인물을 겨냥하는(XXX는 즉각 퇴진하라!) 공격성 문구도 있고, 선거에 출마한 후보를 선전하는 내용도 있다.
평소 현수막들에 별로 눈길을 주지 않고 다니는 편이지만 때로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되는 플래카드들이 있다. 이미자, 패티김, 조영남, 하춘화, 현미, 남진, 나훈아, 양희은 등 내가 아는 가수들의 이름이 보일 때다. 대개 어버이날에 즈음해 나타나는 이 플래카드들은 ‘추억의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식사하는 디너쇼 광고물들이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와 새삼 알게 된 건 이런 디너쇼가 연중 여러 번 열린다는 것이다. 가을맞이 디너쇼, 크리스마스 디너쇼, 연말 디너쇼 등 다양한 이름이 붙어 있다. 주로 서초구와 강남구 대로변에 많이 붙어 있는 이 광고 플래카드들은 나 같은 중년 남자에게는 젊은 날들을 회상하게 하는 추억거리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송창식, 윤형주, 펄시스터즈, 김추자 등의 디너쇼에 가보고 싶다. 1970년대 초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진행하던 ‘쇼쇼쇼’에 자주 출연하던 가수들이다.
풍경 #76 남성 화장실의 문구들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거문화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화장실이 재래식에서 수세식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 서구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불편하게 여기던 것이 화장실이었는데 지금 한국의 화장실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청결도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선진국은 깨끗한 나라라는 등식이 들어 있어서 프랑스의 파리라는 도시의 화장실은 매우 깨끗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파리의 현실은 그런 기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어떤 프랑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서울의 지하철 화장실이 파리의 병원 병실보다 깨끗하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의 카페, 주점, 식당 등의 남성용 화장실 눈높이에는 때로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붙어 있다. “한 걸음 더 전진!”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파리의 화장실에는 청결을 요구하는 글귀들보다는 “동성애 혐오자=파시스트” “세계화=빈곤” “공공서비스를 수호하자” 같은 정치적인 구호가 더 많다. 서울이나 파리나 예전과 달리 음란성 낙서가 사라진 것은 화장실 말고도 그런 욕구를 분출하고 해소할 장소가 많아졌음을 뜻한다.
풍경 #77 주사 맞는 나무들

서울 인왕산의 수성동 계곡.
서울 시내의 새로 지은 건물들 앞을 지나다니다보면 여기저기 생기 잃은 소나무의 모습이 눈에 생생하게 들어온다. 산속에서 맑은 바람을 맞이하며 제자리를 지키던 소나무들이 서울에 옮겨져 영양제 주사를 맞으면서 호강 아닌 호강을 하고 있다. 1970년대에 조성된 반포를 비롯해 30년 이상 된 아파트 단지에는 그나마 오래된 나무들이 풍성한 모습으로 서 있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파리에는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는 도로가 많다. 2차선이나 4차선 규모의 도로변에 위치한 카페의 테라스에 앉으면 오래된 나무의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 나무와 함께할때 사람들의 마음은 착해진다. 어린 시절 식목일이 오면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라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산이 아니라 도로변에 나무를 심을 때다.
풍경 #78 택시 안의 모금상자
자가용 승용차의 소유가 지위의 상징이었던 시절에 택시는 돈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고급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자가용이 일반화하면서 이제 택시는 사실상 대중교통 수단이 되었다. 자가용 승용차 갖기를 거부하는 나는 주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간혹 택시를 탈 때도 있다. 어느 날 오후 택시를 탔더니 운전석 옆에 연두색 플라스틱 상자가 부착되어 있었다. 상자 안에는 껌이 들어 있고 상자 옆면에는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비 마련을 위한 모금함’이라는 제목과 함께 ‘내 작은 손길이 이웃의 생명을 구합니다. 사랑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소년소녀 가장, 무의탁 노인 생활비 보조와 선교 활동에 사용합니다. -서울 운전기사 선교연합회’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글귀를 읽는 순간 마음이 다소 불편해졌다. 얼마라도 모금함에 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