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How are you? 이순신 | 작은숲, 259쪽, 1만5000원무언가 영감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다.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를 외치는 것처럼. 2008년 6월 미국산 소고기 협상으로 100만 명의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광장에는 ‘명박산성’이라고 불리던 컨테이너 박스가 설치됐다. 그 위에서 이순신 장군은 민란을 진압하러 나온 조선시대 장군처럼 눈을 부릅뜨고 ‘즉각 해산하라. 불복하는 자는 연행한다’고 외치는 듯 사뭇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었다. 뭔가 둔중한 것에 맞은 듯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고, 그날부터 내가 알고 있던 이순신이 혹시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표상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2년 뒤인 2010년 11월, 광화문 이순신 동상이 40년 만에 붕괴 위험에 처했고, 보수를 위해 임시 철거된다는 기사를 봤다. 좀 얼떨떨한 의문에 사로잡혀 관련 자료를 수집하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여러 문제점에 직면하게 됐다. 이 동상은 탄피·고철 등을 녹여 만든 뒤 청동색을 내기 위해 페인트를 칠한 부실공사의 산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부실한 고증 탓에 중국식 갑옷을 입고 일본도를 찬 모습으로 제작돼 1979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가 결정됐다는 사실 등이 드러났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시대가 이순신을 어떻게 표상화하고 다루는지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를테면 이순신 장군이 실제 사용한 칼(쌍룡검)은 분실됐다. 그를 기리는 현충사의 조경은 일본식이다. 거북선에 탑재됐다는 이유로 국보 274호로 지정됐던 총통은 가짜로 드러나 국보에서 해제됐다.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동아일보가 1969년 실제 크기의 6분의 1 크기로 제작해 현충사에 기증한 거북선이 돛을 내린 채 전시되는 모습이었다. 확인해보니 천장이 낮아서 돛을 올릴 수 없다고 했다.
2012년 임진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이 되는 해다. 5000년 민족사에서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웠을 시기, 기울어가는 민족의 기둥을 혼자서 지탱해야 했던 이순신 장군의 쓸쓸한 심경을 헤아려봤다. 우리 시대는 무슨 생각으로 이순신을 앞세워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 이 책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우리 시대를 위해, 가짜와 일제의 잔재 속에 울고 있을지 모를 불운한 영웅 이순신을 위해 나는 한 편의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다. 그런 취지에서 이 책은 시대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살아갔던 고독한 영웅에게 바치는 참회의 눈물이다.
문득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겨진 글귀가 떠오른다.
一揮掃蕩 血染山河(일휘소탕 혈염산하 : 한칼에 쓸어버리니, 붉은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
문득 가슴이 뜨거워진다.
껍데기는 가라.
혜문│승려,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
New Books광기의 리더십 | 나시르 가에미 지음, 정주연 옮김미국 보스턴 터프츠 의대 교수이자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위기의 시대에는 정신적으로 정상인 지도자보다 정신질환이 있는 지도자가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 논거로 윈스턴 처칠, 에이브러햄 링컨, 마하트마 간디 등 세계적인 지도자 여덟 명의 인생과 업적을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처칠과 링컨은 위기에 처했을 때 남이 보지 못하는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을 냉철하게 간파했고,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며 진정으로 공감했다. “그들은 들떠 있기도 하고 가라앉아 있기도 하지만, 결코 아주 건강하지는 않다. 그러나 큰 재난이 닥쳤을 때 … 그들은 우리가 잠시 잃어버린 용기를 주고, 우리를 지켜줄 불굴의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의 약점이 바로 그들이 가진 힘의 비결이다” 같은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학고재, 432쪽, 1만8000원모두 변화한다 | 모옌 지음, 문현선 옮김 “어릴 적부터 나는 재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운이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일을 망치는 재주를 타고난 듯했다.”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 작가 모옌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 책은 모옌이 국제문학상을 받으러 이탈리아에 갔다가 만난 한 인도인 편집자의 요청을 받고 쓴 자전 에세이. 1969년 어느 오후, 학교에서 쫓겨난 외로운 열네 살짜리 사내아이였던 저자가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해방군에 입대하고, 1981년 ‘메마른 하천’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의 삶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1987년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인 장편소설 ‘홍가오량 가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된 뒤 2008년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담담하게 담았다. 모옌의 문학세계와 더불어 지난 30여 년간 중국에서 일어난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생각연구소, 168쪽, 1만2000원장칭 | 로스 테릴 지음, 양현수 옮김 ‘영웅 마오쩌둥을 타락시킨 창녀’ ‘사악한 여자’. 중국 문화혁명을 주도한 장칭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페어뱅크 동아시아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는 저자는 이런 평가를 부당하다고 여겼다. 그는 장칭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미국 유럽 등 여러 대륙을 오가며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그의 옛 지인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실인 이 평전은 1984년 첫 출간된 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며 화제를 모았다. 저자에 따르면 장칭은 마오쩌둥의 아내이자 가장 충직한 비서로 혁명과 전쟁의 마지막 시기를 함께 겪었다. 자신의 자아를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고, 타인에게 의지하는 나약함을 증오했으며, 세상 누구도 자신을 심판하도록 두지 않았다. 봉건적인 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려는 남성에 맞서 평생 투쟁했다.
교양인, 728쪽, 3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