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5월 ‘대·중소기업 상생 에너지 동행 협약식’에 참가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지경부는 정부 조직개편 공약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기존 정부의 공보다는 과를 드러내야 하는 대선전에서 지경부는 여야를 막론하고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반복되는 실물산업 부처의 개편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지만,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새 정부 인수위원회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전을 치르면서 ‘지경부를 어찌하겠다’는 말을 직접 내비치지는 않았다. 지경부가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 중소기업부 신설 문제에 관해서도 유보적인 견해를 밝혔다. 2012년 10월 19일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 당선인은 “이것(중소기업부 신설)을 말로 하면 지켜야 하는데, 여러 행정조직이 걸려 있어 쉽지 않다”며 “중소기업청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설립을 공약으로 채택했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보다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라 하겠다.
왜 지경부는 중기부 신설에 거부감을 드러낼까? 지경부는 정통부 및 과기부 부활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중기부 신설에 강한 반발을 드러낸다. 경제부처 1급 관계자는 이렇게 전한다. “지경부의 본질은 결국 산업 진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의 위상은 ‘진흥’이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높아졌다. 앞으로의 정부 산업정책은 대기업 규제와 중소기업 진흥이라는 두 개의 트랙으로 가야 한다. 대기업 규제는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국세청 등이 맡고 있다. 지경부는 태생적으로 기업 규제와는 상극인 조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기부를 만든다는 건 지경부의 정체성을 통째로 흔드는 일이다. 부처 자체가 와해될 수도 있다.”
“뚜렷한 성과 없다” 비판 직면
지경부로서는 어떻게든 중기부 신설만은 막아야 할 처지다. 내부적으로는 자신감이 있다. 중기부 신설은 이미 과거 정치권에서 약속했던 공약인 만큼, 이를 막아낼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충분하다. 지경부가 지난해 중견기업국을 신설하며 잇따라 중견기업 육성책을 내놓은 것도 ‘지경부는 중견·중소기업 지원부처’라는 정체성을 다지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중기부 신설보다는 박 당선인이 약속한 ‘미래창조과학부’(가칭) 신설이 더 치명타일 수 있다. 박 당선인은 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과기부 기능을 분리한 뒤 여기에 과거 정통부 기능을 합쳐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되면 당장 지경부 내 일부 조직은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산업기술정책국과 신산업정책국 일부, 정보통신산업정책국 등이 그 대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국 3개가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다. 당선자의 ‘철학’이 반영된 신설 부처에 살점을 떼주고 나면 이후 남은 조직의 위상이 어떻게 될지는 능히 추측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서 ‘대기업 진흥’이 주력(主力)인 지경부는 그 위상이 일정 부분 떨어질 수 있다. 과거 산자부보다도 힘이 약해질 가능성도 크다. 과거 산자부와 번번이 업무중복 갈등을 일으켰던 정통부와 과기부가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돼 새 정부의 실세 부처로 거듭난다면, 지경부의 역할과 파워는 미래창조과학부의 그것과 반비례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과학기술과 정보기술 영역만을 담당한다고 해도, 갈수록 모든 산업이 과학기술화, IT화되는 마당에 이른바 자동차, 철강 등으로 대표되는 ‘굴뚝산업’과 정확히 경계선을 긋기도 쉽지 않다.
지경부 모 국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산자부 초기, 우리는 정말 힘들었다. 대기업들은 더 이상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중소기업에겐 뭘 해줘야 할지 몰랐다. 주요 업무였던 통상은 외교부에 넘겼으면서 정작 내부에선 상공부 출신과 동력자원부 출신끼리 자리를 놓고 정치싸움을 벌였다. 인사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당장 우리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정체성이 약해지는 딜레마는 우리가 풀어야 할 큰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