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이타미 준, 안도 타다오의 濟州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3-01-21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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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링이 대세다.
    • 힐링을 열쇳말 삼은 방송 프로그램, 여행 상품, 책이 넘쳐난다.
    • 2013년에도 이 흐름은 이어질 듯하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때 진정으로 자기 삶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성찰과 힐링의 가치는 참으로 값지다. 인문학자 정윤수 씨가 매달 한반도의 그윽한 곳으로 독자 여러분을 안내한다.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그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 나는 너무 지쳐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그는 연말 특가로 스마트폰을 폭탄 세일한다는 어느 청년의 무지막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일순간 갖게 됐다.

    연말이었다. 연말 때문이었다. 번다한 회합에는 일절 나가지 않는 그는 어쩌다 그만 자기 나름대로 지켜온 일상의 작은 원칙, 곧 최다 5인 이상이 모이는 자리에는 나가지 않는다는 룰을 스스로 깨고 말았다. 아주 다정하고 친절한, 그것도 젊은 여인의 전화였기 때문에 그는 어느 송년 모임에 나가겠노라 언질했고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의 어수선한 마음을 수습이라도 하려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번잡한 섹션으로 급변해버린 홍대 앞의 어떤 목적지를 지향해 두 손을 점퍼 주머니 안에 꽂고 걷던 중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그의 눈에 휴대전화 가게가 보였고 별 탈 없이 잘 쓰고 있는 스마트폰이 왼손을 찔러둔 주머니 안에 얌전히 스탠바이 하고 있는데도, 주술에 걸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날렵하고 세련된 모양의 스마트폰을 보는 순간, 그는 괜히 들어왔다는 생각부터 하게 됐고 그로부터 5분 동안 판촉 청년의 설명을 듣는 시간은 고역이었다. 청년의 판촉 활동은 눈부셨다.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펙과 가격과 그 할인 정책이 정확하게 녹음된 기계음처럼 청년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직원의 속사포 같은 설명은 그가 지난 몇 해 동안 이 거대 도시에서 들어온 수많은 약속의 말을 연상시켰다.

    크게 세 차례의 선거가 연거푸 있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총선과 대선을 1년 안팎에 치렀다. 그러니 말이 넘쳤다. 말들이 말들을 공격하고 그 공격에 대응하는 말들 또한 최초의 일타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의 눈에 참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거짓은 너무나 또렷했다. 공직을 저 개인의 마지막 성공담으로 장식하려는 자들이 떨어져 나갔을 때는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다.



    말들의 시간, 그 후

    그러나저러나 1년여 동안 큰 말들을 듣고 지냈다. 그 시간은, 아울러 큰 기술 혁신의 버라이어티쇼이기도 했다. 스마트 열풍으로 인해 감각의 기관이 바뀌고 그 방식이 바뀌고 그리하여 만나고 헤어지는 관습도 바뀌어버렸다.

    그는 휴대전화를 두 번 바꿨다. 한 번은 스마트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 번은 더욱 화려하고 세련된 디바이스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 두 차례의 기기 변경 과정에서 사용설명서를 거듭 읽었고 데이터를 백업했으며 백업한 내용을 다시 로딩해야 했고 몇몇 애플리케이션도 이동시켰다. 자주 듣는 음악과 자주 가는 사이트를 스마트폰에 정렬하는 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었던가.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 해야만 했던 일들은 차라리 생략해도 좋겠다.

    아무튼, 그런 일들을 치르면서 그는 지쳐버린 것이다. 판촉 청년은, 구매 의사를 전혀 내비치지 않는 그의 표정을 읽고는 끝내 단념했다. 쓰던 거 그냥 쓰셔도 된다는 그 말은 어서 이 가게에서 나가달라는 사뭇 쌀쌀한 통고였다.

    거리로 나서면서, 그는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떠올렸다. 소설 속에서 구스타프 아센바흐는 뮌헨의 거리를 걷다가 무엇인가에 홀린 듯 정처를 잃고 헤매더니, 아 어디론가 떠나야겠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아센바흐는 바로 그 순간 더 이상 그 남자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는 울타리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남자를 잊어버렸다. 한데 그 기이한 사람의 모습에서 엿보인 방랑기가 아센바흐의 공상력을 자극한 건지 아니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떤 영향을 미친 때문인지 정말 놀랍게도 그는 자기 내면이 확장되는 듯한 기이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정처 없는 마음의 동요나 젊은 시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목마른 갈망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생명력 넘치고 신선한 것이지만 이미 오래전에 떨쳐버려서 잊힌 것이었다. 그는 손을 뒷짐 지고 시선을 땅바닥에 고정시킨 채 그런 느낌의 본질과 목표하는 바가 뭔지를 알아내기 위해 제자리에 붙박인 듯 멈춰 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에 다름 아니었다. 사실 어떤 생각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열렬해져서 격정이 되기도 하고 정말이지 환각을 일으킬 정도로까지 고조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의 갈망은 뚜렷해져갔다. (토마스 만,‘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힐링 치유 공감

    힐링이라고 했던가. 2012년의 키워드로 이 애틋한 단어를 꼽는 이가 많다. 치유 혹은 공감 그리고 힐링. 이러한 단어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반도의 삶이 너무 벅차고 너무 처절하고 너무 야박하고 너무 비인간적인, 그야말로 어떤 이유로든 집단 멘붕(멘탈붕괴)과 집단 힐링이 교차하는 그런 양상임을 말해준다.

    그가 하루이틀 조바심을 낸 끝에 제주도로 훌쩍 떠난 것도 결국은 힐링 신드롬의 한자락이었다. 본디 심성이 그리 맑지 않고 실눈으로 세상사를 바라보기 일쑤였던 탓에 힐링이나 치유 같은 낱말에 대해서도 그저 새로운 감성상품 정도로 생각했던 터였지만, 벅찬 말들의 무게와 급변하는 시간 감각에 지친 끝에 결국 제주를 지향하기로 작정하고 만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신드롬 혹은 갈망은 2013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우선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여야의 어떤 후보를 선택했느냐를 떠나서 그 결론에 이르는 1년여의 정치적 시간은 많은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재·보궐선거나 지방선거가 있지만 다음 차례의 과잉된 정치적 열정은 총선이 열리는 3년 이후에나 일어날 일이 됐다.

    강력한 정치적 이슈를 통해 저마다의 자존감을 확인하려는 열기는 당분간 주춤해질 것이다. 먼 곳을 바라보다가 자기 발밑을 내려다보게 되는 시간이 2013년이다. 커다란 정치적 변화를 겪은 뒤에는 대체로 자기 일상에 대한 관심이나 침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저마다의 각별한 취미와 관심이 성향이나 취향대로 개인적인 내면의 영토를 확장하는 경향이 역사 속에서 늘 반복돼왔거니와 특히 2013년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해 총선과 대선으로 가파르게 치달았던 사회적 열정이 어떤 식으로든 갈무리된 다음이므로 정치적 성향의 차이와 무관하게 대체로 일상 속 자기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는, 그런 관조와 힐링의 시간대가 될 것이다.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가는 지금의 시간 감각이란 박상륭이 ‘유리장’에서 묘사한 다음과 같은 정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태양이 마갈궁 뒤뜰, 잎진 가지 끝에, 고시레감처럼 매달려 있을 때이니, 눈잎이라도 내려야 되고 하다못해 찬이슬이라도 내려야 될 때였는데도, 이 고장엔 봄도 가을도 겨울도 없어 여름도 없으니, 그러니 말하자면 노란 세월과, 노란 하늘과 노란 땅이 맞닿아 있는 채, 아직 궁창이 나뉘지 않았고, 그래서 거기에는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것만 같았다.(박상륭, ‘유리장’에서)

    이타미 준의 유산

    뚱딴지같은 소리지만, 스티브 잡스도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스마트 열풍도 조금은 시들해진 추세다. 그야말로 획기적인 어떤 기술 혁신이 최근 2~3년 사이의 ‘스마트폰 혁명’을 대체할 정도로 벌어지지 않는다면, 일상 속에서 새로운 기기를 사고 그 사용설명서를 읽고 그것을 익히고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대면서 삶의 기반 자체가 틀림없이 달라진 듯한 신드롬도 당분간은 완만해질 공산이 크다.

    가파른 신기술의 속도를 허덕대며 따라가는 양상에서 잠시 갓길로 빠져서 책도 읽고 소요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는, 그런 2013년의 일상이 짐작되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달리 일컫는다면 힐링이라는 말이 적절하다. 그리하여 2013년은 이전보다 더 치유와 공감과 힐링이 차분하게 일상화하는, 그런 정황을 예상할 수 있다.

    기왕이면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그는 서둘러야 할 일을 급히 마무리하고 뒤로 미뤄도 좋을 일은 새해의 몫으로 넘기면서 하루를 단속하고 한나절을 앞당겨 다행히 2012년의 마지막 날 남쪽의 따스한 곳에 안착했다.

    그는 남쪽 바다를 향해, 흡사 구원의 땅을 향해 마지막으로 출항하는 배처럼 근엄하게 서 있는 방주교회 앞에서 서성거렸다. 땅을 읽을 줄 알고 땅 위로 흐르는 공기의 결을 읽을 줄 아는 눈 밝은 건축가의 조촐한 걸작은, 이름 그대로, 최후의 순간의 초월적 약속을 준비한 듯한 겸손하면서도 경건한 자태였다.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이다. 방주교회는 설령 개신교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충분히 그 건물의 종교적 경건성을 존중하게 만드는 양상이다. 물이 있고, 또 그 물이 흐르고, 그 위에 구원의 방주가 출항 직전인 양 서 있다. 나무와 돌과 유리는 실제의 건축적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할 만큼 단아하고 간결하다.

    설교와 강론과 위로를 담당하는 목회자를 위한 강대상(講臺床·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대)은 여느 큰 종교 공간의 거대한 권위와 달리 초등학교 책상 크기 정도다. 장식도 치장도 없다. 게다가 교인들과 시선을 교감할 수 있게끔 바닥에 놓여 있다. 목회자를 위한 강대상 뒤쪽으로, 그러니까 신자들이 물끄러미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의 바깥으로 물이 흐르고 있어 일종의 경건한 착시, 즉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목회자의 말씀을 되새기는 그런 순간순간마다 건물 하단으로 배치된 통유리 바깥으로, 물이 번져 있어서 마치 실제로 구원의 방주에 오른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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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서귀포시 안덕1면 방주교회.



    그는 이타미 준의 또 다른 걸작인 포도호텔로 발길을 옮겼다. 신자도 아니면서 방주교회 안팎에 꽤 오래 머물렀으므로 이미 저녁 시간마저 다 넘겨 야음이 세상에 드리워진 다음이라 한라산 중턱의 포도호텔을 찾기란, 내비게이션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타미 준은 이 호텔을 여느 관광지 호텔처럼 우악스럽게 주변을 압도하는 양상으로 짓지 않았다. 만약 그러했더라면 호텔을 찾기가 쉬웠을지 모른다. 야밤에도 경광등처럼 네온사인이 번쩍거린다든지 고층의 숙소마다 켜놓은 불빛이 한순간에 제 위치를 일러줬을 테니까.

    그러나 포도호텔은 한라산의 중턱에, 그 산의 부드러운 곡선에 그대로 잇닿아서, 그저 조금의 땅을 슬쩍 빌려서 살며시 들어앉힌 듯, 낮은 지붕의 단층으로 지어진 덕분에, 찾기는 쉽지 않았어도 들어설 때는 오래 떠나온 고향의 옛집에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이타미 준의 섬세한 지시에 따라 내부의 배치나 장식이나 조명도 결코 호사스럽지 않다.

    이튿날, 그러니까 2013년의 첫 아침에 숙소를 나와 그곳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채,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며 숙소의 안팎을 소요하면서 그는 깊은 밤에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이타미 준의 ‘디테일’을 새삼 확인했다. 중산간의 억새마저 이 인공의 건축물과 제격인 듯 어우러지니 이 지역의 독특한 산세와 그 색깔들, 그리고 지천으로 널려 있는 현무암과 숙소는 스스럼없이 조화를 이뤘다.

    이런 공간 자체가 힐링을 준다고 하면, 엄살일 것이다. 힐링이 그렇게 가볍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비행기를 타고 돈과 시간을 써가며 멀리 떠나고 돌아오는 번거로움을 가질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박했던 대도시에서의 시공간 감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의 산책은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들만큼이나 애틋했던 시간을 가만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든다. 힐링 그 자체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작은 되는 공간이다. 제주의 지세와 기세를 거스르지 않았던 건축가 이타미 준은 2011년 6월 26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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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피닉스아일랜드의 아고라.

    안도 타다오의 치유 방식

    제주의 남서쪽에 이타미 준의 유산이 있다면 동남쪽에는 안도 타다오의 쾌작이 있다. 섭지코지의 피닉스아일랜드 부지 안에 위치한 안도 타다오의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가 그것이다. 자연을 압도하지 않고 자연의 성질과 흐름과 빛에 조응하려 한 건축물이다. 이러한 설명 자체가 이제는 다소 진부한 감이 있는데, 그럼에도 이 명상의 공간을 설명할 다른 언어는 불필요하다.

    외관은 노출 콘크리트다. 언뜻 보기에 차갑다. 그러나 만약 그런 건물의 외관을 색색의 페인트로 칠해버린다면 오히려 구차한 장식이 되고 만다. 마치 무위의 자연적 공간을 조심스럽게 구분해 그 안쪽의 일부를 인위로 사용하겠다는 정도의 최소한의 목적으로 무채색의 노출 콘크리트가 작동하는 것이다. 직선으로 뚝뚝 절연해 공간, 그 안쪽으로 들어서면 왜 이곳을 ‘지니어스 로사이’라고 명명했는지 금세 느끼게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제주의 상징인 현무암이 곳곳에 놓여 있다. 거대한 무덤이나 비의적인 모뉴멘트처럼 군집을 이루기도 하고 작은 이정표처럼 군데군데 흩어져 있기도 하고 주의 표지판처럼 방문자의 동선을 유도하기 위해 놓여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현무암의 정원이다. 그런 정원의 사방으로 단지 공간을 구획하기 위해서라는 듯 무뚝뚝하게 노출 콘크리트가 담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담 언저리로 억새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알려주려는 듯 흔들리고 있다.

    건축가는 방문자들에게 바람과 물과 성산의 일출봉을 보여준다. 아, 물론 그것들은 꼭 ‘지니어스 로사이’가 아니더라도 제주 어디에서나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재구성하고 재배치하고 재편집하면 더욱 각별해진다. 제주의 현무암과 억새와 물을 느끼면서 건축가가 공들여 배치한 동선을 따라 들어가면 긴 직사각형의 프레임을 만나는데, 그 프레임 안에 성산 일출봉이 담겨 있다. 노출 콘크리트 벽에 파놓은 긴 직사각형이 하나의 미술품 액자 혹은 카메라 렌즈 프레임의 역할을 하고 그 인위의 시각적 틀로 성산 일출봉을 ‘새롭게’ 보게 된다.

    피닉스 아일랜드라든지 그것이 위치해 있는 섭지코지로 이동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아니 그럴 것도 없이, 이 한반도의 해맞이 터로 유명해서 직접 순례했거나 텔레비전의 송년 영상이나 ‘애국가’ 영상으로도 수십 번씩은 보았을 바로 그 성산 일출봉을 노출 콘크리트의 직사각 프레임을 통해 다시 볼 때, 성산 일출봉은 새롭게 보인다. 아, 저곳이 제주의 영기가 서린 성산 일출봉이구나 하는 감각적인 탄성 말이다.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안도 타다오의 쾌작 ‘지니어스 로사이’.



    그 안으로 더 들어가면 빛이 흐려지고, 오직 외부의 빛만으로 안을 희미하게 밝히는, 침잠의 조명을 따라 이른바 명상의 공간이 나온다.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이 구성한 내부의 전시 공간은 크게 세 가지의 시간 축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작품 ‘다이어리(Diary)’를 만나게 된다. 나무가 있다. 그 나무에 가지가 자라고 앙상했던 가지 위로 꽃이 피어나고 이윽고 꽃잎은 바람결을 따라 흩날리며 마침내 지고 만다. 삶에 온축한 생장소멸의 은유적 작품이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흐르는 것이다.

    다음은 ‘어제의 하늘’. 건물의 바닥에 우주적 풍경이 흐른다. 이곳과 저곳, 현실과 초현실, 오늘과 내일, 나와 너, 이승과 저승을 은유하는 상징물이 바닥을 적신다. 그 위를 걸으면서 잠시나마 먼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 아니 그렇게 거창할 것도 없이, 지금 이 순간의 찰나적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마지막 작품은 ‘오늘의 풍경’. 건물 바깥에 설치된 카메라가 성산 일출봉의 하루를 온전히 담는다. 해가 뜨고 지고 그 앞으로 배들이 오가는 매일의 풍경이 찍히고 그것이 지하예배소 같은 컴컴한 전시실 벽으로 투사된다.

    희미하게 유도되는 빛을 따라 밖으로 나오면, 조금 전 화면으로 보았던 성산 일출봉이 다시 직사각형의 프레임을 통해 보이고 거기서 좀 더 벗어나면 완연하게 시야를 가릴 게 하나 없는 상태에서 성산 일출봉을 또 한 번 온전히 보게 된다.

    그렇게 여러 겹으로 세상을 보고 또 보게 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마다 마음에서 일어났던 작은 공명들, 너무 미세해서 그 작은 기미를 눈치 채기도 어려웠던 일렁거림을 마침내 거듭 확인하게 된다. 혹시 내가 본 것은 여러 겹의 성산 일출봉이 아니라 태고 이래로 한 축도 어긋나지 않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성산 일출봉의 몇 겹의 시선으로 보고 또 보았던, 그렇게 다른 시선으로 외부의 세계를 보고자 했던, 어떤 시선이 아닐까,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런 점에 비해 같은 건축가가 끄트머리에 지어놓은 기하학적 형태의 글라스하우스는, 과잉이었다.

    제주에 뿌리 내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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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조랑말박물관의 지금종 씨(오른쪽)와 권순범 씨.

    “힐링을 체험한다든지 또 무슨 그런 것을 둘러본다든지 할 게 아니라 진짜 힐링의 생활을 아예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낫지 않소?”

    지금종 씨의 말이다. 마지막 날 묵은 표선면 가시리 조랑말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힐링’이라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오랫동안 서울에서 문화운동의 네트워크와 정책과 방향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의 일을 다 접고, 솔가해, 제주로 떠났다. 떠나서, 다만 그곳에 한 점처럼 머물렀던가. 그렇지는 않다. 그는 서울에서 ‘크게’ 도모하던 일에 비해 외양으로는 ‘소박’하지만 그 뜻으로는 ‘더 크게’ 보이는 일에 몸을 던졌다.

    지금 제주에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더러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일상의 처소를 찾아 깃든 이도 있고, 더러는 게스트하우스를 말끔하게 빚어 생계와 생활을 도모하기도 하고, 더러는 마을 문화 사업을 목표로 해 새로운 문화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물론 이 셋은 엄격히 구분되기보다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서로 뒤섞여 있어 당사자들로서는 굳이 구분하기 어렵고, 구분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조랑말을 주제로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지역민과 더불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한편 신진 예술가들이 놀라운 착상으로 새로운 예술까지 펼쳐내는 공간으로 차분하게 안착”시켜내는 것이 지금종 씨의 목표다.

    그것을 위해 그는 조선시대 최고의 목마장으로 알려진 표선면 가시리의 갑마장 터에 조랑말을 테마로 한 박물관을 만들었다. 마을 공동목장 6만6000㎡ 상당의 부지에 조성했다. 조랑말에 대한 기억이나 잔재만으로 엉성하게 급히 차린 것이 아니라 제주 조랑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콘텐츠와 그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승마장과 더불어 삶을 새롭게 가꿔가기 위한 캠프와 레지던시와 사람들이 어울린 곳이다. 해외에서 찾아온 참여 작가까지 포함해 모두 6명의 미술 작가가 제주의 역사와 가시리의 문화와 조랑말의 아이콘으로 작업성과를 내놓았다.

    “누군가에게는 아늑한 여행지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잠시 둘러볼 만한 힐링 장소가 될 텐데, 그러나 제주에서의 삶은 역시 엄연한 삶이죠. 사람들끼리 부대껴야 하고 대화해야 하고 서로 존중해야 하고. 그렇게 차근차근 시작해서 관광 온 사람들 쳐다 보는 삶이 아니라 삶이 녹아 있고 삶이 재생되고 삶이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마을로 조금씩 가꿔가는 것, 그게 여기 일이죠. 힐링이라면, 삶의 근거지를 다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종 씨와 함께 이 일을 도모하고 있는 권순범 씨의 말이다. 그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출판사를 경영했던 사람이다. 어느 날, 불현듯 깨친 바가 있어 조각을 전공하는 아내와 함께 제주로 떠나왔다.

    이곳의 젊은 이주민들이 그렇듯이 권순범 씨 역시 제주와 특별한 연고도 없는 사람이다. 과거의 어느 한때, 남들처럼 그저 바람이나 쐬려고 제주를 몇 차례 ‘관광’했으나 이렇게 이주를 감행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물론 서울에서의 버거운 삶이 얼마쯤은 그를 이곳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그가 육지의 다른 곳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뜻한 바를 결행할 때 곧바로 제주를 지향한 것은, 제주의 아늑한 산세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다랑쉬오름을 소요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완만하고 부드러운 오름들이 펼쳐져 있고 그 남쪽 아래로 바다가 보이고 그 반대편으로 한라산의 자락 하나가 드리워져 있었다. 만약 ‘힐링’을 체험할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힐링에 부합하는 신생(新生)의 삶을 도모한다면, 역시 제주가 그 1번지로 꼽힐 만하다는 것을, 다랑쉬오름은 의연하게 증명하고 서 있었다.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오름에 올라 내려다 본 제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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