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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이타미 준, 안도 타다오의 濟州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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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치유 공감

힐링이라고 했던가. 2012년의 키워드로 이 애틋한 단어를 꼽는 이가 많다. 치유 혹은 공감 그리고 힐링. 이러한 단어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반도의 삶이 너무 벅차고 너무 처절하고 너무 야박하고 너무 비인간적인, 그야말로 어떤 이유로든 집단 멘붕(멘탈붕괴)과 집단 힐링이 교차하는 그런 양상임을 말해준다.

그가 하루이틀 조바심을 낸 끝에 제주도로 훌쩍 떠난 것도 결국은 힐링 신드롬의 한자락이었다. 본디 심성이 그리 맑지 않고 실눈으로 세상사를 바라보기 일쑤였던 탓에 힐링이나 치유 같은 낱말에 대해서도 그저 새로운 감성상품 정도로 생각했던 터였지만, 벅찬 말들의 무게와 급변하는 시간 감각에 지친 끝에 결국 제주를 지향하기로 작정하고 만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신드롬 혹은 갈망은 2013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우선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여야의 어떤 후보를 선택했느냐를 떠나서 그 결론에 이르는 1년여의 정치적 시간은 많은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재·보궐선거나 지방선거가 있지만 다음 차례의 과잉된 정치적 열정은 총선이 열리는 3년 이후에나 일어날 일이 됐다.

강력한 정치적 이슈를 통해 저마다의 자존감을 확인하려는 열기는 당분간 주춤해질 것이다. 먼 곳을 바라보다가 자기 발밑을 내려다보게 되는 시간이 2013년이다. 커다란 정치적 변화를 겪은 뒤에는 대체로 자기 일상에 대한 관심이나 침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저마다의 각별한 취미와 관심이 성향이나 취향대로 개인적인 내면의 영토를 확장하는 경향이 역사 속에서 늘 반복돼왔거니와 특히 2013년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해 총선과 대선으로 가파르게 치달았던 사회적 열정이 어떤 식으로든 갈무리된 다음이므로 정치적 성향의 차이와 무관하게 대체로 일상 속 자기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는, 그런 관조와 힐링의 시간대가 될 것이다.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가는 지금의 시간 감각이란 박상륭이 ‘유리장’에서 묘사한 다음과 같은 정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태양이 마갈궁 뒤뜰, 잎진 가지 끝에, 고시레감처럼 매달려 있을 때이니, 눈잎이라도 내려야 되고 하다못해 찬이슬이라도 내려야 될 때였는데도, 이 고장엔 봄도 가을도 겨울도 없어 여름도 없으니, 그러니 말하자면 노란 세월과, 노란 하늘과 노란 땅이 맞닿아 있는 채, 아직 궁창이 나뉘지 않았고, 그래서 거기에는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것만 같았다.(박상륭, ‘유리장’에서)

이타미 준의 유산

뚱딴지같은 소리지만, 스티브 잡스도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스마트 열풍도 조금은 시들해진 추세다. 그야말로 획기적인 어떤 기술 혁신이 최근 2~3년 사이의 ‘스마트폰 혁명’을 대체할 정도로 벌어지지 않는다면, 일상 속에서 새로운 기기를 사고 그 사용설명서를 읽고 그것을 익히고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대면서 삶의 기반 자체가 틀림없이 달라진 듯한 신드롬도 당분간은 완만해질 공산이 크다.

가파른 신기술의 속도를 허덕대며 따라가는 양상에서 잠시 갓길로 빠져서 책도 읽고 소요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는, 그런 2013년의 일상이 짐작되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달리 일컫는다면 힐링이라는 말이 적절하다. 그리하여 2013년은 이전보다 더 치유와 공감과 힐링이 차분하게 일상화하는, 그런 정황을 예상할 수 있다.

기왕이면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그는 서둘러야 할 일을 급히 마무리하고 뒤로 미뤄도 좋을 일은 새해의 몫으로 넘기면서 하루를 단속하고 한나절을 앞당겨 다행히 2012년의 마지막 날 남쪽의 따스한 곳에 안착했다.

그는 남쪽 바다를 향해, 흡사 구원의 땅을 향해 마지막으로 출항하는 배처럼 근엄하게 서 있는 방주교회 앞에서 서성거렸다. 땅을 읽을 줄 알고 땅 위로 흐르는 공기의 결을 읽을 줄 아는 눈 밝은 건축가의 조촐한 걸작은, 이름 그대로, 최후의 순간의 초월적 약속을 준비한 듯한 겸손하면서도 경건한 자태였다.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이다. 방주교회는 설령 개신교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충분히 그 건물의 종교적 경건성을 존중하게 만드는 양상이다. 물이 있고, 또 그 물이 흐르고, 그 위에 구원의 방주가 출항 직전인 양 서 있다. 나무와 돌과 유리는 실제의 건축적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할 만큼 단아하고 간결하다.

설교와 강론과 위로를 담당하는 목회자를 위한 강대상(講臺床·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대)은 여느 큰 종교 공간의 거대한 권위와 달리 초등학교 책상 크기 정도다. 장식도 치장도 없다. 게다가 교인들과 시선을 교감할 수 있게끔 바닥에 놓여 있다. 목회자를 위한 강대상 뒤쪽으로, 그러니까 신자들이 물끄러미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의 바깥으로 물이 흐르고 있어 일종의 경건한 착시, 즉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목회자의 말씀을 되새기는 그런 순간순간마다 건물 하단으로 배치된 통유리 바깥으로, 물이 번져 있어서 마치 실제로 구원의 방주에 오른 듯한 느낌을 준다.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1면 방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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