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성과 로빈 판 페르시. 박지성이 맨유 경기에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그는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다. 과연 판 페르시가 없었다면 맨유는 중하위권으로 떨어졌을까?
생각해보니 국가대표 경기는 꽤 본 듯한데, 막상 EPL 경기는 하이라이트 빼곤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얼마 전 아스날 경기를 본 적이 있는데, 90분이 휙 지나갔다. 잠시 눈 돌릴 틈도 없이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런 상투적인 표현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영화 한 편을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당시 박주영 선수가 스타팅 멤버에 들어있지 않아 아쉬웠지만, 한편으로 ‘아, 저렇게 뛰어야 한다면 주전 자리를 꿰차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새삼 맨유에서 7년을 뛴 박지성 선수가 얼마나 높은 경기력을 가졌던 것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사실 박지성이 이적하고 난 뒤 맨유 경기는 하이라이트로도 잘 보지 않는다. 들어보니 현재 맨유는 17승1무3패(승점 52점)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승률이 81%다. 박지성이 없으면 좀 못해야 하는데…. 아스날에서 이적해온 판 페르시는 16골을 터뜨렸고, 어시스트도 6개란다. 맨유는 2위 맨체스터 시티(승점 45점)에 승점 7점 앞서 있다.
이순신 장군과 판 페르시
영국의 대중지 ‘더선’은 “하지만 판 페르시 없는 맨유는 승률이 23.8%밖에 되지 않는다. 승점도 절반인 26점으로 뚝 떨어진다. 이는 11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같은 승점이다”고 말한다. “판 페르시가 없었으면 맨유는 중위권이다”라는 말이다. 실제 ‘더선’지(紙)는 1월 8일자 기사에서 “맨유에 판 페르시가 없었다면 프리미어리그(EPL) 중위권에 머물렀을 것이다”라고 했다. “작년 여름 아스날에서 판 페르시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21라운드까지 5경기밖에 승리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영국 네티즌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멍청한 기사다. 판 페르시가 없었다면 다른 공격수가 넣었을 것” “다른 10명은 무시하는 건가?” “판 페르시가 없을 때도 맨유는 중위권에 처진 적이 없다” 등등.
네티즌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왜 아니겠는가. 루니 같은 다른 공격수는 보릿자루이며, 나머지 선수는 뭐냐, 박지성 선수가 있었을 때인 재작년에 거둔 성과는 어떻게 설명할 거냐…등등의 의미가 담긴 항변이다.
지난 1월호의 논의에 이어 ‘더선’지의 기사를 비판하면 이는 ‘허구 질문의 오류’에 속한다.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면(History Rewritten)’이라고 말하는 사례다. ‘나폴레옹이 미국으로 도망쳤다면’ ‘임진왜란 때 조선이 망했다면’ 등과 같은 질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판 페르시가 ‘없었다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은, 우습게도 판 페르시가 경기장에서 ‘실제로 뛰는 조건’에서 뽑아낸 것이다. 판 페르시가 없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판 페르시가 ‘있는=뛰는’ 상황에서 산출해낸 결과, 즉 당초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증명이 성립할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추론을 한 셈이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태종과 원경왕후의 헌릉(獻陵). 태종은 과연 전제정치를 펼쳤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전제정치’가 무엇이냐는 논란부터 종식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