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로, 43년째 소주시장 1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인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국내 시장에서도 부동의 강자다. 한국주류산업협회와 주류업계에 따르면 참이슬은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489만1000상자가 출고돼 전체 소주시장 점유율 50.5%를 기록했다. 2011년 2월 이후 19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50% 고지를 다시 밟은 것이다. 참이슬과 참이슬의 전신인 ‘진로(眞露)’가 국내 소주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지는 이미 오래다. 진로는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래 43년째 한 차례도 정상을 내주지 않고 있다.

참이슬 CF 모델 문채원.
그 무렵만 해도 진로의 상표는 우리에게 친숙한 두꺼비가 아니라 원숭이였다. 서북지방에서는 원숭이가 복을 상징하는 영특한 동물로 통한 까닭에 이를 심벌로 썼다. 이 상표는 진로가 본사를 서울로 옮기며 전국으로 영업망을 확대하기 이전까지 쓰였다. 진로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는 부산에서 ‘금련(金蓮)’이라는 이름으로, 이듬해에는 ‘낙동강’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기도 했다.
진로가 두꺼비 상표를 사용하며 소주의 대명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54년 6월 본사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새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두꺼비 진로는 30년간 탄탄히 다져온 우수한 품질과 기민한 영업 수완을 바탕으로 판매량을 늘려나가며 전국구 소주로 성장했다.
두꺼비, 소주의 대명사 되다
주류업계에서 진로가 선두주자로 떠오른 데는 선진적인 광고판촉 활동이 주효했다. 진로는 1959년 말 국내 최초의 CM송인 ‘진로파라다이스’를 선보였다.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국내 광고 분야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물론 소비자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라디오와 TV를 통해 선보인 이 CM송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군부대나 직장의 체육대회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다.
당초 증류주를 만들던 진로가 희석 방식으로 소주를 만든 것은 1965년부터다. 알코올 함량이 95% 이상인 주정에 물을 섞어 만든 소주는 싼 가격 덕분에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진로는 소주시장에서 전국의 여러 업체 중 하나일 뿐이었다. 1967년까지 국내 소주시장은 호남에 터 잡은 삼학이 주도했다.
진로가 삼학을 제친 결정적 계기는 ‘왕관 회수작전’이라는 이벤트 마케팅이었다. 소주를 판매하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왕관처럼 생긴 진로 소주의 병뚜껑을 모아오면 보상을 해준 것이다. 이는 전국의 식당, 술집 주인들을 진로의 자발적인 판촉사원으로 끌어들이며 큰 성공을 거뒀다.
일반 소비자 대상 이벤트도 함께 벌였다. 두꺼비가 안쪽에 그려진 병뚜껑을 가져온 소비자에게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물건이던 재봉틀과 금두꺼비 등의 상품을 걸고 경품행사를 연 것이다. 주당들은 진로소주 뚜껑에서 두꺼비를 찾는 보물찾기에 열광했다. 진로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시장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쓴맛이 강한 진로는 단맛이 특징이던 삼학소주를 제치고 국내 소주시장을 기세 좋게 집어삼켰다.
나이 지긋한 세대에게 소주가 몇 도짜리 술이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25도’다. 진로는 1965년 희석 소주를 내놓으며 알코올 도수를 30도로 낮춘 데 이어 1974년 이를 다시 25도로 낮췄다. 이때부터 오랫동안 ‘소주 알코올 도수는 25도’에 맞춰졌다. 초창기 소주보다 알코올 도수를 10도나 낮췄지만 소주는 여성이나 술을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쓰고 독해서’ 부담스러운 술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정치 민주화의 영향으로, 학교나 직장의 술자리 문화도 독한 소주를 강권하지 않는 쪽으로 차츰 바뀌어갔다.
이 같은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낸 소주가 바로 ‘참이슬’이다. 진로는 1998년 참이슬을 내놓으면서 알코올 도수를 23도로 낮췄다. 2004년에는 아예 약한 술을 원하는 이들 겨냥해 알코올 도수 21도인 ‘참이슬 후레쉬’를 선보였고 이후 알코올 도수를 19.5도까지 낮췄다. 참이슬도 그사이 알코올 도수를 20.1도로 2.9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