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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연애보다 담배를 먼저 배웠다

정지용

  •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연애보다 담배를 먼저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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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는 고뇌의 증거다. 문인의 깊은 고뇌는 한 모금 담배연기와 함께 하늘로 흩어진다. 예술과 담배 사이에는 ‘건강’이라는 척도로 판단할 수 없는 모종의 관계가 있다. 시 ‘향수’ ‘유리창’ 등을 남긴 서정시인 정지용.
  • 그는 스물하나, 일본 유학 떠나던 길에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다고 고백했다.
연애보다 담배를 먼저 배웠다
다시 담배가 이슈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이 국내외 담배회사에 최대 3326억 원에 달하는 흡연피해 소송을 제기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대해 한국담배협회는 이번 소송이 궁극적으로는 담뱃값 인상만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마도 담뱃값 인상에 가장 민감한 것은 작가가 아닐까. 몇 해 전 담뱃값 인상안이 발표되자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는 “창작의 유일한 벗인 담뱃값을 올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작가들이 직접 나서서 ‘담배는 창작활동의 원동력이며 예술가들에게 담배는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라는 고정관념을 확인해준 사건이었다.

한국에서 이러한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공초(空超) 오상순이다. 하루에 담배를 10갑 이상 피웠을 정도로 니코틴 중독이었던 그는 ‘나와 시와 담배’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동곡(異音同曲)의 삼위일체



나와 내 시혼은

곤곤히 샘솟는 연기

끝없이 곡선의 선율을 타고

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刻刻) 물들어 스며든다.

-오상순, ‘나와 시와 담배’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상순의 시는 그저 니코틴 중독자의 변명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담배의 강렬한 유혹을 약물 중독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런 관점은 유독 예술가들이 담배에 중독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뇌과학’이 ‘시혼(詩魂)’과 같은 영역에는 아직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생물학적 진실은 인간의 정신활동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무력하다.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담배가 유럽에 전래된 이래, 문학과 담배는 서로 뗄 수 없게 밀접하다. 특히 작가들에게 담배는 그저 기호품에 그치지 않고 창작을 위한 도구이자 시적이고 신성한 대상으로 여겨져왔다.

또한 담배는 서로 갈등하는 여러 담론이 마주치는 지점이기도 했다. 최초에 약으로 소개됐던 담배는 ‘위생담론’과 ‘건강담론’이 파급되면서 점차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지목됐다. 옹호론과 비판론이 첨예하게 맞섰지만, 그럴수록 담배 소비는 늘었다. 담배가 현재로서는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신비로운 쾌락’을 제공하며, 근대적 합리성이나 과학기술의 논리와는 대치되는 ‘미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가 주는 신비로운 쾌락

연애보다 담배를 먼저 배웠다

시인 공초 오상순. 그의 오른손에 담배가 쥐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을 정도로 애연가였다.

프랑스문학 연구자인 리처드 클라인은 담배의 유혹을 미학적 측면에서 해명했다. 그는 담배가 조장하는 미(美)의 독특한 형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칸트가 말한 ‘숭고’라고 분석했다. 그는 담배의 심미적 매력, 즉 담배가 흡연가의 삶에 가져다주는 숭고하고도 어두운 미적 쾌락을 보장해주는 것은 ‘담배의 무익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담배는 이롭기 때문이 아니라 해롭기 때문에 오히려 강렬한 매혹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예술가들이 담배에 매혹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리처드 클라인은 보들레르를 예로 들어 근대 예술의 출발점이 된 ‘댄디즘’의 목표가 ‘진정한 흡연가’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 흡연은 마치 칸트적인 예술작품처럼, 어떤 목적성을 지니지 않으며 자신을 벗어나서는 아무런 목표도 없다. 또한 흡연은 예술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두 가지 모순된 상태를 창조해낸다. 즉 체념을 통해 자아가 강화되면서 ‘집중’하게 되고, 신비적 팽창 속에서 자아가 상실돼 ‘증발’의 상태가 된다는 것.

흔히 담배를 ‘백해무익’이라고 규정하지만, 리처드 클라인에 따르자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담배는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한다. 또한 여성의 손에 들린 담배가 그러하듯이, 때로 담배는 성적·정치적 자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표현한다. 오히려 리처드 클라인은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의 유일한 가치판단 기준인 ‘건강’에 부여된 가치는 무엇이냐고.

리처드 클라인은 건강을 모든 판단의 유일한 척도로 삼는 것을 비판하면서 ‘흡연의 효용성’을 주장한다.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흡연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술과 담배 사이에는 건강이라는 척도로 판단할 수 없는 모종의 관계가 있으며, 한국의 근대문학 또한 담배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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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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