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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기업 관리의 리더십으로 재조명

동북아 제왕학의 성전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기업 관리의 리더십으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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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한탄

춘추전국시대 약소국이었던 한나라 출신인 한비는 자신을 몰라주는 군왕과 세상에 대한 울분을 ‘한비자’에 담았다. 한비는 조국을 부강하게 하기 위해 여러 차례 왕에게 글로 간언했지만 발탁되지 못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작은 나라 피렌체 출신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것과 흡사하다. 한비는 말재주가 없었지만 문장력은 뛰어나 설화, 우화 같은 것을 두루 인용해 감동을 이끌어내는 책을 완성했다.

‘한비자’가 세상에 처음 나오자 가장 감명을 받은 이는 한나라 왕이 아니라 진나라 시황제였다. “아아! 과인이 이 사람과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중국 천하를 처음으로 통일하기 전 진시황은 ‘한비자’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한(漢)나라 때 철학자인 왕충(王充)은 ‘논형(論衡)’이라는 책에서 한비의 조국 한(韓)나라가 망하고 적국인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된 것은 한비 주장의 수용 여부에서 비롯된 차이라고 분석했다.

한비는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동문수학했던 친구 이사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독살됐다. 불운하게 삶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책은 역사를 바꾸어놓는다. ‘한비자’는 중국 최초의 중앙집권제 통일국가인 진나라의 탄생에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그 뒤를 이은 역대 중국 왕조의 현실정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갈공명이 죽으면서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반드시 숙독할 것을 권한 책이기도 하다. “난세에는 형벌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천명한 조조, “안정된 국가는 예로 통치하고, 혼란한 국가는 법으로 통치한다”고 말한 전진시대의 왕맹(王猛), “죄를 지은 자는 마땅히 벌한다”는 철학으로 통치한 북송의 포증(包拯)도 ‘한비자’를 따랐다. 청나라 건륭황제는 이 책을 탐독한 대표적인 군주다.

‘한비자’는 현대에 와서도 중국 지도자의 서가에서 빠지지 않는다. 마오쩌둥이 열독했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한비자’를 거푸 인용하며 법치주의 국정 운영방침을 내걸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보다 1800년이나 앞서 ‘한비자’가 표방한 법치주의는 유교의 덕치주의와 더불어 동북아시아를 움직여온 양대 정치사상이다.



법에 의한 통제

‘한비자’는 군주의 통치를 위한 것이다. ‘한비자’의 법치사상과 근대 서양의 법치주의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감이 존재한다. 한비의 사상은 ‘법에 의한 통치’라기보다 ‘법에 의한 통제’에 가깝다. 법으로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사상이 아니다. 서양의 법치사상은 왕권에 대항해 왕권을 약화하는 기능을 했다.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본질을 분석하고, 군주의 권력유지 방도를 제시해 제왕들의 대환영을 받은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고대 중국에선 한동안 ‘한비자’를 악의 책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한비자’는 오늘날 조직 관리의 리더십으로 확장된다. 피터 드러커도 현대 기업 관리에 ‘한비자’ 사상의 유용성을 높이 평가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도 ‘한비자’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병철 경영철학의 핵심인 사업보국과 인재제일주의는 ‘한비자’의 부국강병, 용인술과 맞닿는다. 이건희 회장이 임원 필독서로 ‘한비자’를 권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비는 삼류 지도자는 자기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지도자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 지도자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고 가르친다.

신동아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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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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