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 금오공과대학은 이런 ‘박정희’ ‘구미공단’과 불가분의 관계다. 박 전 대통령은, 마치 공장에 물을 대듯 구미공단에 전문성을 가진 고급 기술 인력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공단 인근에 학교를 만들었다. 이것이 금오공대와 금오공고였다.
‘각하의 지시’로 탄생
금오공대는 설립 당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로 통했다. 개교한 지 34년이 지난 요즘 이 학교는 교명에 ‘KIT’(Kumoh National Institute of Technology)를 병기한다. 서울의 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만난 김영식(55) 금오공대 총장은 “외국에 나가 KIT(금오공대의 영문명)를 ‘한국의 MIT’로 소개한다”며 “새로 도약한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와 포스텍과는 성격이 다른, 제3의 명문 공대가 지방에서 성장해야 하는데 KIT 금오공대가 그렇게 나아간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대통령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이기도 해 서울을 자주 찾는다. 그는 이 학교의 역사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고 성장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끌림이 있었다. 그에게 나중에 한번 학교를 찾아가보겠다고 했다.
몇 주 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미로 향했다. KTX로 서울에서 김천(구미)역까지 90분. 역사를 나서자 허허벌판에 거대한 공사판이 펼쳐졌다. 한국도로공사가 7월 이전하는 등 공기업들이 이 역 주변 김천혁신도시로 곧 기반을 옮긴다. 빌딩들, 아파트 단지들, 기반시설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차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달려 구미 양호동 금오공대에 도착했다.
20여만 평 넉넉한 땅에 20여 채 건물이 오밀조밀 배치돼 있다. 높은 층에선 금오산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보인다. 2005년 이전해 새로 지은 학교여서 모든 건물이 현대식으로 산뜻하다. 7000여 명의 재학생이 여유롭고 쾌적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듯했다.
본관 총장실에서 김 총장을 만났다. 그는 대구 출신으로 영남대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기계공학)를 받고 1993년부터 이 대학 교수로 재직해왔다. 대구에 자택이 있는 그는 학교 일로 바쁘다보니 관사에서 혼자 지낸다고 한다. 부인과 딸은 모두 약대를 나와 대구에서 약국을 함께 운영한다. 그는 “수요일엔 아내가 찬거리 등을 갖고 구미로 오고 금요일 오후엔 내가 대구로 퇴근해 가족과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 아침에 구미로 출근한다. 주말부부는 아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지는 그와의 대화 내용이다.
▼ 금오공대만의 특색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기초학문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면 금오공대는 실용연구 분야에서 전국 최고를 지향합니다.”
카이스트와 포스텍에 없는…
▼ 실용연구가 무엇인가요?
“산업현장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고급기술을 연구하는 것이죠. 구미공단을 지원하기 위해 금오공대를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취지대로 학교가 특화되는 것이죠.”
금오공대엔 에너지융합소재공학부, 지능기계공학과, 컴퓨터소프트웨어공학과, 메디컬IT융합공학과 등 14개 학과가 있다. 이들 학과의 이름에서 ‘융합’ ‘신기술’ ‘실용성’을 지향하는 점이 읽히기는 한다.
▼ 요즘 대학에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취업률이더라고요. ‘청년실업’이 화두인 시대다보니 말이죠. 그러나 최근엔 공대 출신이 취업이 잘된다는 소식도 들려오더군요. 금오공대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어떻게 되는가요?
“그 점이 우리 학교가 자랑할만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졸업생 취업률이 뚜렷이 높아요. 특히 유지취업률과 국내 10대 그룹 취업률이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이 학교 정재훈 홍보팀장이 교육부 자료 등을 근거로 보충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2013년 전국 대학 평균 취업률은 55.9%인데 금오공대 취업률은 70.0%로 14.1%포인트나 높았다. 이 학교는 ‘취업률 우수대학’에 선정됐다. 입사 6개월 이후에도 계속 직장을 다니는 비율인 유지취업률은 취업률의 허수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유지취업률이 높을수록 양질의 직장에 취업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금오공대는 96.0%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