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배낭여행 중 숙소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결혼한 지 3년이 넘도록 지상에 ‘우리 집’ 한 칸을 마련하지 않았다. 배낭을 메고 한국과 일본, 동남아를 떠돌던 부부는 마침내 지난해 9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최근 박씨는 9세 연상연하 커플의 무일푼 여행기 ‘글로벌 거지 부부’를 펴냈다.
“드디어 신혼집을 마련하셨네요.” 축하 인사를 겸해 기자가 던진 첫마디에 그는 “집이라기보다…그냥 ‘거처’를 마련한 거죠.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고 정정했다. 5평 남짓한 크기의 25만 원짜리 월세 집에 살면서 “지금 너무 좋고 행복하다”는 이 남자, 아니 이 부부가 사는 법이 궁금해졌다.
아홉 살 차 연상연하 커플
“우리나라 남성 평균 초혼 연령이 32세라는데 스물여섯 살에 결혼이라니, 좀 이르지 않았나요?” 속으론 ‘(나이가) 아깝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금이 너무 좋다”는 박씨의 말에 에둘러 표현했다. “태국 식당에서 ‘결혼할까?’ 했을 때 미키가 한술 더 떠 4개월 뒤 돌아오는 자기 생일에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어요. 그때 미키 나이를 처음 알았고, 제가 초등학생 때 이미 사회인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좀 받았죠. 하지만 저나 미키에게 나이는 아무 상관없었어요.”
3개월 뒤 한국에 들르겠다는 미키 씨를 남겨두고 그는 먼저 귀국했다. 한국 땅에 발을 디디자 여행에 취해 붕 떠 있던 마음도 현실로 돌아왔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보기 시작한 것. “그때 제 전 재산이 달랑 27만 원이었어요. 주변에선 우리 만남이 영화 같다고 했지만 막상 결혼하면 그 영화가 멜로물일지 호러물일지는 테이프를 돌려봐야 알 거 아니에요? 결혼해도 될 정도로 미키를 사랑하는지, 지금까지 내키는 대로 살아온 제가 가정을 돌볼 능력은 있는지, 혹시 미키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다면 어쩌나…. 이런저런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죠. 특히 제게 결혼은 은하계 너머 안드로메다에나 있던 개념이었거든요.”
미키 씨도 박씨의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다. 첫눈에 호감을 느낀 그녀의 마음을 떠보려는 잔꾀로 꺼낸 결혼 이야기지만 막상 미키 씨의 반응에 “난 가진 돈도, 집도, 직장도 없는 사회 부적응자”라고 솔직히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가 “내가 일본에 돌아가서 기숙사 딸린 직장을 구할 테니 둘만의 인생을 시작해보는 게 어때?”라고 태연히 말하지 않았다면 둘의 결혼은 현실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혀 있던 어느 날, 태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긴 태국 출입국관리사무소인데, 전화 받는 분이 미키 씨 남편 되시죠? 미키 씨가 오늘 렌털 바이크로 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서 유치장에 있습니다.” 40~50대 남자로 짐작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이어졌다. “지금 당장 태국으로 오셔서 합의를 봐주셔야만 미키 씨가 유치장에서 나갈 수 있습니다. 사정이 안 되면 제게 40만 원을 보내주십시오. 제가 보호자로 합의를 대신 봐드리겠습니다.”
돈 얘기에 의심이 갔지만 일단 상대가 불러주는 대로 계좌번호를 받아 적고 전화를 끊었다. 곧장 미키 씨에게 전화를 걸자 그녀가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니, 얼마 전 바에서 만난 한국 사람한테 제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과 결혼한다고 했더니 연락처를 묻더래요. 남 일인 줄만 알았던 일이 막상 저한테 벌어지니 헛웃음만 나왔어요. 사기꾼한테 전화를 걸어 살벌한 육두문자에 상소리를 엄청 퍼부어줬죠.” 그 일로 ‘미키의 남편’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
그녀가 한국에 들어올 날이 다가오자 또 다른 고민이 박씨를 괴롭혔다. 집안이 보수적인 데다 경상도(부산) 남자인 아버지 성격이 불같아서 그녀와 섣불리 대면시켰다간 자칫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었기 때문.
“고교 1학년 때 권위의식과 위계질서, 집단문화가 너무나 엄격한 학교에서 숨 쉴 공간이 없었어요. 어느 날 작심하고 혀에 피어싱을 하고 머리를 새빨갛게 염색한 뒤 등교했어요. 똑같은 교복에 똑같이 짧게 깎은 스포츠형 머리를 해야 하는 게 싫었고, 학업과 용모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어요. 선도부 선배, 선생님한테 엄청 맞았죠.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 대화하고 싶었지만 선생님도 아버지도 도저히 대화가 안 됐어요. 학교를 떠날 결심을 하고 ‘자퇴신청서’를 받아온 뒤 며칠간 무단결석을 했어요. 그 사이 학교에선 퇴학처리를 하고 아버지한테 통보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