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시 공지천에 어스름이 깔렸다.
경춘선은 1939년 7월 22일 개통됐다. 사설 철도회사인 경춘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성동역(城東驛)에서 춘천 사이 87.3㎞가 완공되어 그 정식 운행을 앞두고 그해 7월 22일 개통식을 한 것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성동역에서 기차가 출발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춘선 기차가 성북역에서 출발했다. 성북역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쯤 걸려서 대성리역이나 청평역에 이르고 거기서 더 가면 강경역 지나 춘천으로 들어간다. 90㎞도 채 안되는 거리지만, 그 사이의 강과 산으로 인해 경춘선은 저 경부선이나 호남선에 밑지지 않는 문화의 퇴적층을 이룬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는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하는 장려한 소멸의식을 남겼다.
그뿐인가. 수많은 시인이 이 강을 노래했고 수많은 젊은이가 이 강변에서 성년식을 치렀으며 수많은 연인이 애틋하든 불륜이든 낮이든 밤이든 이 강변의 컴컴한 방에 몇 시간쯤 머물렀다. 아, 무엇보다 경춘가도는 한 줌의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릴, 그런 사랑의 장소였다.
춘천, 안개 도시

상상마당은 문화예술 인큐베이터를 지향한다.
숙소는 상상마당의 숙박시설 ‘스테이’, 그곳의 4층이었고 창밖으로 공지천이 보였으며 그 위로 춘천을 굽어보는 산들과 또 그 위로 눈썹달이 떠올라 있었다. 몇 가지 생각이 두서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안개 도시 춘천, 상상마당, 소양호, 이 지역을 배경으로 애틋한 시를 쓴 시인 최승호, 단편 ‘안개 시정거리’로 춘천의 여린 속살을 그린 한수산, 그리고 내일 해야 할 강의 주제, 곧 인문학과 상상력 같은 말들이 어수선하게 머릿속에 들어앉았다가 다른 말들에 밀려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물. 여지없이 물이 떠올랐다.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무겁게 내려앉은 물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춘천, 물의 도시, 그리하여 곧 안개의 도시이기도 하다. 소양호와 의암호에서 안개가 늘 피어오르고 공지천 일대를 안개가 완전히 장악하는 날도 많다. 1967년 북한강 줄기의 신연강을 막아 의암댐이 생겨났는데, 이때부터 안개가 짙어졌고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되면서 사시사철 안개가 압도하는 도시가 됐다.
춘천 사람들에게는 이 안개는 답답하고 짜증나는 기후 현상일 수도 있는데, 타지 사람들에게 안개는 몽환적인 서정과 낭만적인 우울의 표상이었다. 꽤 많은 사람이 안개를 보러 춘천을 찾기도 했고 그런 문화적 여정이 안개사진 전시회 같은 것으로 집약되기도 했다. 춘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소설가 한수산과 시인 최승호가 안개를 소재로 하여 숨 막힐 듯한 청춘의 한 시기를 작품으로 남긴 것도 각별히 기억할 만한 일이다. 춘천을 대표하는 소설가 전상국의 작품 중 ‘썩지 아니할 씨’가 있는데, 그 작품에서 전상국은 춘천에서 화천으로 이어지는 높은 고개 배후령을 묘사하면서, 춘천의 안개를 더불어 그린 바 있다.